09/09/2023
P군을 처음 알게 된 건 면접에서다. 15년 전쯤 일까, 내가 팀장을 맡고 있던 팀의 신입 사원 채용에 P군이 지원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이었고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에 대답할 땐 긴장감이 그대로 전해졌었다. 꾸밈없어 보였고 성실한 태도에 믿음이 가서 그 친구를 채용했고 잘 가르쳐봐야겠다고 생각했다.
P군의 장점은 성실함과 꾸준함, 그리고 신뢰를 주는 예의 바른 태도였다. 흔히 말하는 대단한 스펙은 없었다. 나의 채용 기준에 좋은 학벌이나 토익 점수, 자격증… 등등은 없었고 그런 것들이 그 사람의 학창 시절의 노력과 성실성을 대변할 수는 있으나 그게 다는 아니라는 나름의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던 거 같다. 과거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니까. 상대적으로 조금은 느리기도 했지만 한 번 익힌 일에선 실수가 없었고 맡겨진 일은 어떻게든 해 내려는 노력이 P군에겐 있었다. 간혹 P군의 속도가 느리게 느껴져 다그치기도 했지만 언젠가부터 그만의 속도를 이해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른 만큼, 그리고 P군의 변치 않는 노력만큼, P군도 성장해 알만한 기업의 한 실을 책임지는 중간 매니저가 되어있다. 걱정스러운 건 한국의 기업문화 속에서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거기에 더해 여전한 성실함과 노력으로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 많이 뒤로 밀려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만났던 P군은 많이 힘들어 보였다. 안색도 좋지 않고 잦은 회식, 야근 거기에 더해진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음주/흡연/야식으로 체중도 많이 는 것 같았다. 성인병을 걱정하고 복용하는 약도 생겼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좋아했던 P군의 장점들이 어느새 P군의 건강을 갉아먹는 약점이 된 건 아닌가 싶었다. 거절 못하고 어떻게든 넘어온 이늘 처리하고 조직 구성원을 돌보는 일까지 하다 보니 P군은 많이 지쳐 보였다.
진심으로 걱정과 우려의 말을 건넸다. 아끼는 부하직원에서 이젠 가까운 동생이 된 P군의 현재 상태가 걱정스러웠다. 어느 정도 업무를 조절하고 생활의 균형감을 찾았음 한다. 와이프와 아이들, 행복한 가정에 일원으로 경제적 보상보다 더 필요한 것들이 있음을 알기에…P군의 어깨에 놓인 고민을 듣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카톡을 받았다. 상사와 의논해 몇 가지 업무를 덜어내기로 했단다. 사이클도 다시 시작했다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잘했다고 다행이라고 했다.
직장생활이 주인 시기가 있지만, 전부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애와 마찬가지인 거 같다. 전부가 되어버리고 나면 연애 중에 지나친 몰입과 집착에 힘들어질 수 있고 나를 잃을 수도 있으니까. 거기에 더해 이별 후에 다시 나를 찾기까지 너무 힘겨울 수 있으니까.
P군,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