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삶의 변화의 순간들: 이혼과 이민

09/22/2023

by 눈보라콘

평범하고 소박한 가정에서 자랐다. 근면성실하신 부모님, 모범생으로 반듯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결혼해 각자의 가정을 꾸려 화목하게 살고 있는 언니들. 그리고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던 나.

사회에서 정해놓은 일반적인 틀(?)에 따라 공부를 열심히 했고 명문대라고 하는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했고, 안정적인 직장에서 나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며 늦지 않은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를 하나 낳았다. 말 그대로 남들의 시선을 끌 일 없이 겉보기에 평범한, 평온한 인생을 살아왔다.


이런 내 삶에 또 한 번의 변곡점이 된 건 서른 후반에 내린 이혼이란 결정이었다. 이혼의 사유야 각자의 입장이 있고 상황은 모두 다른 것이니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난 행복하고 싶어 결혼을 했었고, 다시 행복하기 위해 이혼을 했다.

내 이혼은 평범한 친정 가족들에게도 충격이었고 엄마는 아직도 외가나 친가에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계신다. 허물이라 생각하시고 불편한 마음을 갖고 계신 걸로 알고 있다. 그건 엄마의 생각이고 마음이니 나도 무어라 말씀드리진 않고 그냥 모른척한다.


이혼 결정과 동시에 이민을 결심했고, 미국 본사에 자리를 알아봐 이혼 확정 후 2개월 만에 미국으로 거주를 옮겼다. 이혼의 과정은 힘겨웠고 내가 원해서 한 결정이었지만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전남편에 대한 안쓰러움이 오래 남아있었다. 미국으로 이민을 결심한 데는 이혼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라는 꼬리표에 대한 반감이 큰 요인이었다. 거기에 더해 타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 한국에서-나 역시 한국인이고 모두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사회적 분위기란 생각을 한다. 물론, 내 선입견일수도.-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에 대한 걱정이 컸다. 아마도 남들과 다르다는, 평범하지 않다는 생각을 나 스스로도 했던 거 같다. 여기에 기인한 두려움이 의지할 데 없는 미국에서 유치원생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보다 더 컸던 거 같다.


아이와 둘이 시작한 미국생활은 쉽지 않았다.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아이를 아침마다 데이케어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면서 거의 매일 울었다. 잠들기 전 데이케어 가기 싫다는 아이와 실랑이하며 울었고 아직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일을 해야 한다는 거, 그래서 데이케어에 가야 한다는 걸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그 아이가 벌써 대입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 탓에 독립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아이로 성장했다. 어릴 때부터 해야 할 일들을 먼저 하고 놀아야 한다고 가르쳤고 통제보단 방임에 가깝게 키웠다. 덕분에 지금도 학교 공부나 아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내가 크게 신경 쓸 부분은 없다. 아이와 나의 관계는 적당히 분리되어 있고, 아이의 삶과 내 삶은 별개라는 걸, 서로 인지하고 있다. 엄마로 해야 하는 역할엔 충실하려 노력하고 아이의 독립성은 지켜주는 방향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미국으로 이주 후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의지할 곳도 없고 양육비 한 푼 받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 생계를 짊어졌다. 다행히 그간 쌓아온 커리어로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생활했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주 양육자로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부러 한인 커뮤니티를 찾지 않았고 친구를 사귀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외로움에 익숙해졌고 외롭다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거기엔 사실 자연스레 가까워져 생활동반자가 된 그의 영향도 크다. 우리끼리의 삶에 크게 외롭다고 느끼지 않고 우리 또는 각자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 혼자여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같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아이에게도 그렇게 말한다.


이혼, 이민이라는 큰 변화를 겪게 되면서 내 삶은 많이 달라졌을 거다. 비교치가 없어 알 수는 없지만 힘든 시기를 지나며 나 역시 더 단단해졌을 거고 그래서 지금까지 잘 살아오고 있는 걸거라 믿는다.

지나온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의 내 삶은 그 변화의 순간들로 지금의 모습을 찾은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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