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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Mar 21. 2018

읽는 사람

<100일 글쓰기 63/100>

아주 오래 전에 티스토리 블로그를 쓸 때도, 그리고 브런치를 쓰기 시작한 후로도 줄곧 모든 글은 독자를 고려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통계 페이지에서 어떤 구독자들이 새 글 알림을 받겠다는 생각이나 어떤 검색 키워드를 통해 얼마만큼 유입이 되었구나, 어떻게 읽히고 있구나 같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목적성 없이 그때 그때 내키는대로 배설하듯 쏟아낸 어설픈 문장들이라 더더욱 그럴 것이다. 주제나 소재의 일관성을 찾을 수 없어 중구난방이고, 수준 또한 일관되지 못한 불완전하고, 읽는 사람의 배경 지식 같은 건 일절 생각하지 않은 것 말이다.

애인이나 몇몇 지인이 본다고 해도 일과는 별개의 일이니 크게 상관은 없었다. 가족만 아니라면 말이다. (가족이 본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다.) 직장 동료들이 몇 구독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실상 그들이 관심 있어 하거나 눈 여겨 볼만한 글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의 글은 지나가는 익명 n의 사람 일부가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것이다. 누굴 고려하지 않은 만큼 눈치를 볼 일도 없었다. 그러니까, 실마리가 잡히면 봇물 터지듯, 가감없이 써내렸었다. 실제론 공개된 공간에 게재하고 읽는 사람이 하나라도 생기는 순간부터 글은 혼자만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00일 글쓰기를 시작한 후로는 달라졌다. 스무명 가량의 사람들이, 그것도 같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과 매일 같은 주제 또는 각자의 주제로 글을 쓴다. 읽는 경위는, 나처럼 글을 모으는 공간의 새 글 알림을 받거나, 아니면 글을 올린 김에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궁금해서, 아니면 오늘은 내가 매니저니까 돌아볼까 하는 생각에 들어가서 등등 다양할 것이다. 누구에게 보이는 상황을 고려하고 쓴 것들이 아니기에 혼자만의 글이었던 것이 이제는 적게나마 눈에 보이는 '읽은 흔적'이 생기고, 간혹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심지어 얼굴과 이름이 매칭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니 그 묘한 낯가림과 무의식 중에 순화해서 쓰게 된다. 초반에는 정말 뭐지, 뭐지 하면서 매우 부끄럽고 어쩔 줄 몰라했다. 익명 n들이 아닌 진짜 사람 독자-라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글을 발행해놓고 오타나 비문이 보이면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수치스럽다. 애매하게 아는 관계, 어쩌면 일적으로 엮일 수도 있는, 심지어 맡은 업무까지 글을 떼어놓고 보기 어려운 쪽이니 알게 모르게 스스로 쪼그라드는 게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익숙해졌는지 아니면 포기한 건지 그런 류의 부정적인 생각은 많이 덜어냈지만.

혼자 쓰는 글이라도 조금 더 친절하게 공들여 써야겠다 싶다. 나이가 들어도 가치관이나 문체가 많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아주 먼 미래의 내가 봐도 '아하' 할 정도로는 읽힐 수 있도록. 익명 n의 사람들도 '아, 그래?' 정도로 읽고 넘어갈 수 있도록.


어제 회식 자리에서 노아가 '나 맨날 읽는데?' 라고 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제이미나 최언니가 읽을 때는 안 부끄러운데. 아직 멀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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