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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Mar 26. 2018

알러지

<100일 글쓰기 68/100>


몸이 따뜻한 편은 아닌데 자주 열이 오른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럴 때도 있고 회의실에 오래 있어서 그럴 때도 있다.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지면 오른쪽 뺨에 턱에서 손가락 한 마디 반 정도 위에 있는 지점에 벌레 물린 것처럼 빨갛게 올라온다. 미간이 볼록해질 때도 있고, 입술선이 부어서 따끔거릴 때도 있다.

오늘은 왼쪽 손목 아래와 왼쪽 발목 위가 못 견디게 간지럽고 따가웠다. 보기에는 멀쩡한데 참지 못하고 손가락 지문 있는 곳으로 슥슥 문지르니까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그래도 오돌토돌하게 수포가 올라오진 않으니 다행이다 싶다가 작년에 몇 개월쯤 갖고 있던 홉 알러지가 생각났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더운 여름날이었고, 맥주 500ml 한 캔을 들이키고 불을 끄고 누운 참이었다. 열대야에 잠 못 드는 시간이 길어지던 차에 귓가에 위이잉 하는 모기 소리가 들렸다. 벌떡 일어나서 불을 켜고 타이밍을 기다리다 결국 잡았다. 피를 빨린 후는 아니었는지 사체에 붉은기는 없었다.

손을 닦고 다시 불을 끄고 누웠는데 이상하게 손목 즈음부터 팔꿈치 아래까지가 화끈화끈거렸다. 눈이 다시 어둠에 적응하기 전이라 더듬더듬 뜨거운 팔을 만져보니 둔하게 부은 살갗 위로 소름이 돋은 것처럼 올록볼록한 무언가들이 자잘하게 올라온 게 느껴졌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건데. 순간 등줄기에 진짜 소름이 쫙 돋으면서 다시 불을 켜고 봤더니 빨갛게 열이 올라 죄다 징그럽게 알러지가 올라와있었다.

비누 거품을 내 찬물로 씻고 얼음 찜질을 해도 제대로 가라앉지를 않아서 다음날 피부과에 가보니 원인불명이라고. 무엇을 했느뇨, 하는 질문에 뾰족하게 답할 거리가 없었다. 소매가 긴 새 옷을 입었느냐, 아니요 완전 반팔이었는데요. 원래 음식에 알러지가 있느냐, 복숭아 같은 걸 먹으면 좀 그러지만 어젠 먹지 않았어요. 음, 이상하네, 맥주를 마시긴 했는데요. 제대로 된 원인은 찾지 못 했고, 처방 받아온 연고를 몇 차례 바르니 가라앉았다.

아빠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홉 알러지네. 너 맥주 마시면 안되겠다.' 하고 진단을 내려주셨다. 이후에도 맥주를 조금 마셨다 하면 다시 알러지가 올라왔다. 엄마는 이참에 제발 술을 끊으면 안되겠냐고 하셨지만 안 마시고 배길 수 없는 날에는 조금 마시고 다시 알러지가 도진 팔에 냉장고에 넣어뒀던 연고를 꺼내 발랐다.


알러지도 결국은 면역력의 문제라, '맥주만 마시면 도지는' 홉 알러지도 몇 달 전부터는 자취를 감췄다. 어느 순간부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 해 전에 진단 받은 복숭아 알러지는 이제 껍질을 벗긴 복숭아나 천도 복숭아 정도로는 괜찮은 것 같지만 대신 체리를 많이 먹거나, 진한 두유를 마시면 목이 깔깔해지고 입술이 부어 오른다.

팔 다리는 물론 얼굴 이곳 저곳에도 알러지 반응이 있었던 오늘은 사과 반쪽을 먹고도 난데없이 목구멍이 깔깔해졌다. 사과에 알러지가 난 적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미세 먼지 탓일까 싶다. 아침에 sis가 캡쳐해서 보내준 우리 동네 대기 상태 안내에선 '최악. 절대 나가지 마세요!!!' 라고 나왔다. 제대로 된 마스크도 없어서 일반 마스크만 덜렁 끼고 희뿌연 갈색 공기를 잔뜩 마시면서 출퇴근을 했다. 내일은 더 심하다는데, 먹는 거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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