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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Mar 29. 2018

마을버스

<100일 글쓰기 71/100>

밤새 잠을 자지 못한 날이었다. 많이 울었고, 종일 정신 없을 것을 고려해 미리 글을 썼다. 전철 첫 차를 타야했으므로 어차피 얼마 자지 못할 것이었다. 한참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피로감, 두통에 시달렸고 눈앞이 점점 더 뿌얘졌다. 샤워를 하고 머리카락이 얼지 않도록 잘 말린 후에 옷을 단단히 껴입었다. 맥북을 포함해 이런저런 필요한 것들을 채워넣은 백팩이 무거워 몸이 휘청 넘어갈 것 같았다.

어둠이 그득한 새벽은 안개가 축축하게 깔려있었다. 출근 때면 전철역까지 타고 가는 마을버스가 운행을 하기 전이라 허연 입김을 뿜어내며 천천히 걸었다. 좌우로 조금씩 휘어지는 좁은 언덕길을 내려가다 보니 멀리 노란 헤드라이트 두 개가 비춰왔다. 안개에 부옇게 번진 불빛이 여느 승용차보다 높아서 뭘까, 싶었는데 마을버스였다. 그 뒤로, 또 그 뒤로- 연달아 열 대 가랑이 줄지어 달려왔다. 실내에는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거리에 보이는 것은 노란 헤드라이트, 그리고 모서리가 둥근 녹색 마을버스들이었다. 뻑뻑한 눈을 꿈벅꿈벅 감았다 떠봐도 그것은 전부 마을버스가 맞았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어두워 보이지 않고, 꼭 마을버스들이 알아서 종점에 있는 제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안개와 어우러져 현실감 없는 장면들이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저녁 어스름이 되면 하나둘 불 켜지는 상점과 줄지어 온천으로 향하는 각양각색의 신들과 닮아서 잠시 멍하니 멈춰서서 지켜봤었다.

본가로 돌아가 sis에게 '아, 맞다. 내가 희안한 얘기 해줄까? 우리 동네에 그 마을버스 있잖아-'하면서 말을 하자 말도 안된다며 꿈을 꾼 게 아니냐고 물었다. 분명 운행이 끝난 마을버스들은 종점에 잘 맞춰둔 블록처럼 착착 주차되고, 막차가 들어오면 자리가 부족해 다른 버스들과 수직으로 세우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다른 기사님들이 우르르 몰려와 바퀴 앞에 벽돌을 대주곤 사이 좋게들 퇴근하셨으니까. 마을버스들은 으레 그곳에 있는 것이 맞는데. 그 새벽에 마을버스들은 어디를 다녀온 걸까 싶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희안하고 재밌는 광경이었다. 아침 비행기 때문에 새벽에 나가던 몇몇 날에도 본 적이 없는 아주 드물고 재밌는 광경.

술에 취해 전철역 근처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코너를 돌아 오는 다른 녹색 지선버스들 뒤로 훨씬 작은 마을버스가 타요 얼굴을 달고 붕붕 달려왔다. 문득 잊고 있던 새벽의 묘한 장면이 떠올라 작게 웃었다. 그날 마을버스들, 기사님이 운전하신 건 맞겠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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