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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Mar 28. 2018

점심시간

<100일 글쓰기 70/100>


혼자 밥 먹는 걸 좋아한다. 오롯이 식사 행위에 집중할 수 있으므로. 급하게 먹을 필요도 없고 양 조절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니 더없이 편안하다. 낯선 타인들이 힐끔 쳐다보는 것 또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주위를 신경쓰지 않고, 주눅들지 않고, 한없이 느긋하게 군다.

그런데 이상하게 회사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을 때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긴장하게 된다. 마음의 준비를, 어마무시하게 하게 되는 것이다. 점심 약속이 취소되어 아침에 급하게 도시락을 챙겨 출근했다. 항상 같이 드시던 분은 휴가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간혹 합류하는 분도 밖에서 드신다고 해서 일찍부터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다. 배가 충분히 고파지면 여유롭게 먹어야겠다, 라디오 천국 오디오 파일 들으면서 오늘의 글쓰기 주제에 대해 생각해야지-하고.

하필 주제가 '아재 개그'다. 떠오르는 아재 개그가 있을리가 없다. 아무리 짱구를 굴려봐도 생각나는 게 없었다. 넋놓고 느리게 밥알을 씹었다. 2009년 6월 27일자 라디오 천국에선 이동진님이 <트랜스포머 2>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 맞아, 그 영화 그랬었지-하고 혼자 끄덕끄덕하면서 메추리알 장조림을 콕 찍어 입에 넣었다.

에어팟을 쓰기 시작한 후로 끼고 있어도 주위에서 알아보질 못 한다.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귀를 덮은 탓이다. 조급해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며 이동진님과 유희열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지나가던 클라우드가 아는 체를 했다. 생각할 게 있어서-아재개그-일부러 다른 도시락 무리에 끼지 않았다고 답을 하고 다시 에어팟을 꼈다. 잘 먹어놓고 희안하게 체할 것 같은 상태가 되어 빈 반찬통을 닫는데 이번에는 사내 카페에서 커피를 뽑아온 그렌이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 그러냐' 하고 왔다가 파장 중인 것을 보고 머쓱하게 멀어져갔다. 매번 에어팟 한쪽을 빼고 대답을 하면서도 왠지 민망해졌다.

이건 마치, 학교 급식실에 혼자 밥 먹으러 가는 그런 느낌이겠지. 미국 하이틴 영화나 드라마에서 같이 밥 먹을 친구가 없어서 식판 들고 화장실 가서 먹는 등장인물들이 생각났다. 아재 개그는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소식이 없다. 오늘 뭔가 안 풀리는 느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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