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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Mar 31. 2018

최후의 한 끼

<100일 글쓰기 73/100>


다음 주 주말에 제이미와 1박 2일로 부산에 다녀올 예정이다. 밥집과 카페를 잔뜩 리스트업해놓고 지난 여행 때도 몇 군데 가지 못 했었다. 이번에는 그간 늘어난 스팟과 더불어 제이미가 아끼는 부산 출신 아티스트들의 흔적을 찾아 들를 곳이 더 늘었다. 첫날 점심 식사부터 다음날 이른 저녁까지 치면 끼니로는 다섯끼, 사이사이 티타임나 야식의 기회는 최대로 잡아도 네 번쯤 될 것이다. 어림 잡아도 서른 곳이 넘는데 고르려니 머리가 아프다. 다른 곳도 아니고 부산이니 나중에 또 가면 되는 일인데 이렇게 어렵다니.

당장 마지막 한 끼라면 무엇이 좋을까 고민했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으며 어떤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을까 하고. 가장 익숙하고 좋아하는 루트는 아무래도 스패니쉬 레스토랑에 가는 거다. 광화문의 청계천 바로 옆에 있는 오피스 건물 지하 2층에 있는 스패니쉬 레스토랑은 새우 까수엘라와 가지구이가 놀랍도록 맛있다. 테이블간 간격이 넓고, 까만 유니폼과 긴 하프 에이프런을 두른 스탭들은 젠틀하다. 검은 필름이 붙어있는 유리창 너머의 키친에 불길이 솟아 오르는 걸 보면서 먼저 나온 에스트렐라 담 생맥주를 마신다.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적당한 음악과 다른 테이블에서부터 들리는 조근조근한 대화의 소음을 들으며 흥얼흥얼거린다. 천천히 식사를 하다보면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맞은 편 디저트 전문점에서 까눌레에 진한 라떼 한 잔을 마신다. 기온이 적당하다면 불 켜진 광화문을 바라보며 집까지 걸어도 좋다. 한 주 중 가장 행복한 토요일을 완벽하게 보내는 최상의 루트다.

익숙하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 언제든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혼자 겪어야 하는 마지막이라면 불확실하고 화려한 여러 선택지 안에서 고민하는 것보단 그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오, 이제 진짜 여행 루트 짜야 한다. 더이상 미룰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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