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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Apr 08. 2018

부산 1

<100일 글쓰기 81/100>

전철역에 내려서 SRT 수서역으로 이동하는 길에 삼송빵집에서 빵 2개를 샀다. 편의점에서 물도 한 병 사고. 손목에 봉지를 걸고 달랑달랑 기다리다 제이미를 만났다. SRT는 저번에도 느꼈지만 색감 때문인지 고속열차보다는 교토 등지로 철커덕철커덕 소리를 내며 천천히 갈 것 같은 빈티지한 느낌이 난다. 내부는 말도 못 하게 현대적이고 쾌적하게 꾸며져 있지만 말이다. 그 괴리감이 주는 묘한 감상을 저번에도, 이번에도 느꼈다.
부산역까지 가는 내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회사 이야기, 개인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대한 이야기 등등. 반씩 나눠먹은 빵은 둘 다 소보로 부분이 옷과 다리 위에 후두둑 떨어져서 모아서 치우느라 허둥거렸다.
강풍주의보가 내릴 정도이니 역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닷바람이 몰아쳤다. 아이고, 춥다- 하면서도 벌써부터 바다가 보여요! 진짜 부산이다! 하면서 대흥분. 아침 댓바람부터 두 시간 반 내내 수다 떨다 내린 사람들 치고 흥분이 넘쳤다. 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전포동으로 향하는 43번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종교 설문 요청 1회, 길 묻는 거 2회를 겪었다. 대답하는 억양이 이상했던 것은 어릴 때 잘못 든 습관 때문이다. 재수 없게 서울말 쓴다고 외면 당했던 시절의 습관.
43번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가지도 않는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운전 스타일들이 터프한 사람이 많은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이쿠 부딪히겠네 싶을 정도가 되어야 한쪽이 급하게 속도를 줄이고 그런 게. 아직 꽃 붙어있는데요? 하면서 깔깔거리며 부전도서관 정류장에 내려 꼽아뒀던 스시집으로 갔다.


도쿄맨션


보기에 예쁜 게 먹기도 좋다-는 플라시보 효과 같은 말을 소리내어 하고 싶은 집이었다. 색색으로 예쁘게 장식된 열 두 피스짜리 모자이크 초밥을 2인분에 새우 튀김 두 개가 올라간 가쓰오 우동, 아사히 맥주 작은 병을 시켰다. 주된 대화거리는 가족에 관한 것. 아직 미성년인 동생을 걱정하는 첫째 제이미의 고민을 어떻게 해야 덜어줄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감하는데, 제이미의 가족을 설득해야해...! 어떻게...? 라는 지점에서 막힌 게 혼자 아쉬웠다.
둘이 3인분을 깨끗이 비우고도 배는 넘치게 부르지 않아서 좋았다. 스무발쯤 전포 카페거리 길을 따라 올라가면 제이미가 골라뒀던 카페가 보였다. 청계천 주변의 전포상, 공구상 같은 가게들 사이에 덜렁 색이 튀는 곳이었다. 협소하지만 그만큼 간결한 구성에 묘하게 앤틱한 무드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밤에 오면 더 근사하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1박 2일은 역시 짧구나 싶었다. 인근에는 그 카페 주인이 소유하고 있는 다른 카페가 두 개 더 있다. 각자 라떼와 에이드를 마시면서 와, 왠지 부러워-라는 말을 한 번씩 했다.


카페 미드나잇


서면역은 부산 지하철 1호선과 2호선 간 환승이 가능한 곳이다. 환승 동선 설계가 엉망이었다. 며칠 전 제이미가 보여줬던 영상에 부산 지하철역에서 헤매고 있던 사람들의 심정이 단박에 이해됐다. 역사에서 헤매는 동안 워너원 우진의 생일 광고판을 두 번 지나갔다. (나중에 알았지만 서면 출신이라고.)
그래도 2호선 안 타고 1호선 방향 잘 맞게 타서 토정역에 내린 후,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감천문화마을까지 잘 도달했다. 이른 시간부터 움직이고 한참 수다 떨고 평소보다 많이 걸었더니 피로한데도 모든 게 너무 순조로워서 둘 다 날은 날인가보다 했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는 마을버스가 미끄러져 내려가는 건 아닐까 덜덜 떨었다.


감천 문화마을


안 미끄러지고 잘 올라가서 사람들 다 내릴 때 같이 내려보니 색색이 예쁜 마을이 눈 앞에 짜잔. 제이미는 통영보다 근사하다고 했고, 나도 흰여울보다 더 임팩트가 있다고 했다. 지도앱이 안내하는 최단 거리를 따라 헤매다 엄청난 경사의 계단을 가로질러 가게 되었다. 아무도 지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이었다. 둘러 가든 질러 가든 찍어뒀던 목적지에 다다랐고, 너머의 산에 벚꽃나무가 잔뜩 있는 것과 그 뒤로 바다가 보이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한참 사진 찍고 오들오들 떨다보니 제이미의 아이폰은 배터리가 픽 나가 꺼지고, 우린 또 오들오들 떨면서 언덕을 한참 걸어내려갔다.


갈매기 맨션 앞 버스정류장


종점에서 탄 17번 버스, 얼마 안 가 갈매기맨션 앞에서 갈아탄 1011 급행버스. 부산은 넓고 오래된 도시인만큼 색도 다양하고 면도 많다. 1011 노선을 따라 송도-영도-남구-해운대까지 가면 그 스펙트럼을 느낄 수 있다. 10년 전 혼자 씩씩하게 내일로 여행을 다녔던 이야기를 해주던 제이미는 용호동에 걸고 싶은 플랭카드가 있다고 했다. 듣자마자 정말 진지하게 속으로 어느 지점에 달아야 효과적일까 고민했다.


부산항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게 너무 추워서 버스 안에 히터가 나오기 시작할 땐 아이 좋아, 였는데 광안대교를 건널 즈음에는 발목이 타들어가는 듯 해 내리고 싶었고, 해운대에 내리자마자 너무 추워서 종종 걸음으로 고깃집까지 갔다. 저번 부산 여행 때도 들렀던 곳이라 익숙하게 들어가 자리를 안내 받았다. 호쾌하게 3인분짜리 스페셜을 시킨 제이미 덕분에 소고기를 부위별로 골고루 맛봤다. 피로탓인지 맥주 한 병을 나눠마시고도 취기가 물렁물렁하게 올라왔다.


일품한우


종일 모든 게 순조로웠는데 끊이지 않는 대화 때문인지 시간이 술술 잘 갔다. 체크인 몇 시 예정이냐는 숙소 쪽 전화를 받은 게 아홉시였다. 숙소방은 '오션뷰'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게 해운대 바다가 바로 보이고, 웨스턴조선 호텔, 광안대교까지 쭈욱 펼쳐진 고층방이었다. 신나서 방방거리다가 잠시 쉬고 밤바다로 나가 새까만 밤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찍어도 주고 하다 보니 불꽃놀이를 하는 게 보였다. 보통 바닷가에서 개인이 구할 수 있는 폭죽이라 함은 피유우웅-하고 팡 터지거나, 치지지지 하면서 끝에서 타들어가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꽤 스케일 큰 불꽃이 화려하게 터져서 넋놓고 구경했다. 우린 정말로 운이 좋다고 몇 번을 말했다.


해운대 해수욕장


맥주에 안주를 잔뜩 사들고 돌와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버젓이 각자의 애인을 두고도 외롭게 만드는 드라마다. 술기운이 거나하게 올라서 야경을 곁에 두고 또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2시 반 넘어 자려니 1년 넘게 우릴 괴롭힌 <프로듀스 101 시즌 2> 최종화가 시작되더라. 괴로워하다 씻고 잠든 게 3시, 그리고 술이 깨는 바람에 불쑥 깬 것이 8시 반. 퉁퉁 부어서 볼에 베개자국이 아직도 사라지질 않는다.


오늘도 날이 좋아 파도치는 물빛이 근사하다. 탁월한 오션뷰. 여전히 바람은 어마무시하다. 그 유명한 엘시티를 배경으로 사진 찍고 아점 먹으러 가야지. 여행 이틀차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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