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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Apr 11. 2018

물 싫어

<100일 글쓰기 84/100>


물에서 숨을 견디는 법을 모른다. 원체 호흡이 짧기도 하고, 어린 시절 심하게 건조한 피부 때문에 수영 같은 건 배울 생각을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기억에 아마 열 한 살인가 그 쯤 됐을 때였던 것 같다. 폭우가 쏟아지던 장마철의 어느 날, 길을 걷다 물 웅덩이에 빠졌던 적이 있다. 친구와 영어 과외 선생님의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4차선 도로변에 제대로 된 보도가 깔리지 않아 아스팔트 차로 변의 흙길을 걸어야했다. 단 시간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반바지도 전부 젖고, 티셔츠 등도 반쯤 젖은 상태였다. 발목 복숭아뼈까지 흙탕물이 차올라 한 걸음 내딛기가 어려웠다. 각자 커다란 골프 우산을 쓰고 친구가 앞장 서서 위험 천만하게 길을 걸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친구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고 나도 앗-할 틈도 없이 넘어졌다. 빨려 들어간 곳은 우리 둘이 푹 잠길 정도로 깊은 수로 끝 웅덩이였다. 순식간에 꼬르륵하고 눈 앞이 물로 가득 차 울렁거렸다. 친구는 넘어지면서 흙바닥에 박힌 우산을 붙잡고 겨우 빠져나갔고, 나도 허우적거리다 어찌저찌 밖으로 나왔다. 삼선슬리퍼를 신고 있던 친구는 슬리퍼 한쪽을 잃어버렸다. 머리끝까지 흙탕물을 뒤집어 쓰고 너무 놀라 둘 다 엉엉 울면서 선생님의 집까지 걸었다.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애매한, 딱 중간 지점에서 그런 일을 겪었으므로.

무력감과 공포에 잔뜩 질린 채 벌벌 떨었다. 이후에도 가슴 높이보다 깊은 물에 들어가는 걸 두려워한다. 캐리비안 베이의 파도풀에 갔을 때도 구명조끼를 입은 채 파도에 휩쓸려 다니며 발발 떨고 있으면 수영 잘 하는 친구들이 조끼를 붙잡고 얕은 곳으로 끌어주었다. 애초에 그들이 없었다면 들어갈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장난으로라도 물놀이를 하다 물 속에 몇 번 머리가 쳐박힌 후에는 입술이 파랗게 질려 바둥거리고 만다. 공포를 극복하지 못 했으므로 수영을 배울 엄두조차 내지 못 한다.

가끔 상상한다. 타고 가던 비행기가 해상에 추락하면 난 어떡하지. 그냥 죽으면 되나, 하고. <1987>과 같은 영화를 봐도 물고문 장면이 연상시키는 모든 숨 막히는 순간들에 같이 발발 떨게 된다. 생존용 수영을 필수로 가르치는 곳도 있다던데, 그런 차원에서 맨 몸뚱이의 나는 그 무엇도 아니다. 살아날 방법이 없다. 그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니 새삼 왜 이리 초라한지.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 외가댁 뒤 공원 너머에 폭이 넓은 강 하나가 흘렀다. 마찬가지로 장마철이었고, 불어난 수위 때문에 주변 농가의 소와 돼지들이 물에 떠내려갔다. 아마도 나 또한 그 소, 돼지 친구들처럼 무력하게 떠내려가다가 꼬르륵 하고 죽으려나. 아우, 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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