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88/100>
아주 오랜만에 엄마와 카페에 단 둘이 나왔다. 전면이 유리창으로 된 높은 테이블에 앉아 나는 랩톱을 펼쳤다. 기온이 부쩍 올라간데다 햇빛이 잘 들어서 몸이 더웠다. 코를 훌쩍거리면서 며칠간 썼던 글을 문서 파일에 옮기고 정리하는 동안 어렸을 때 생각이 났다.
그때가 아홉 살이었을 것이다. 아홉 살 꼬맹이 시절에도 나는 그 때의 생활이 감정적으로 버겁다고 생각했다. 학교 끝나자마자 피아노 학원에 바이올린 학원에 바둑 학원까지 매일 다녔으니 아마 몸도 힘들었을 것이다. 매일 일기를 쓰고 담임선생님에게 검사를 받아야 했던 때다. 어느 날 ‘아, 다 너무 힘든데?’ 하는 생각을 하다 살기 힘들다, 살고 싶지 않다, 이런 류의 일기를 쓴 날이었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기보다는 그 때 나의 버거움에 대한 투박한 표현이었다. 섬세하지 못한, 너무나 단순한 그 표현들을 밤 늦은 시각 몰래 확인했던 엄마는 깊게 잠들어 있던 나를 깨워 붙잡고 소리 지르고 우셨다. 잠에서 덜 깨어 대체 무슨 일인지 감도 못 잡은 채 나를 붙들고 성내고 우는 엄마를 그 순간에는 이해하지 못 했다. 나이를 먹고, 경험과 생각이 많아지고, 조금 더 복잡다단한 삶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 후로는 그게 나보다 수 십 년을 더 살았던 내 엄마의 반응을 아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말아야지, 위험해, 그 정돈 아니잖아 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더 견딜 수 있다고 믿고 나를 키우고 있으니까.
엄마에게 물었다. 어렸을 때 쓴 일기를 그렇게 매일 보신 거냐고. 그 목적이나 심리는 대체 무엇이냐고. 엄마는 “선생님도 검사하는데 엄마도 봐야지.” 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셨다. 아니, 예상 독자에 엄마 아빠는 없었다니까요-라고 항변해도 엄마는 그저 웃고 만다. 평소 엄마가 내 사생활을 존중해주는 정도를 고려하면 정말로 몰래 쓴 일기는 안 보셨겠지 싶지만.
그 시절 썼던 일기장이 아직 남아있다고 한다. 나중에 내게 주려고 보관하고 계셨다고. 20년 넘게 댓 번 넘게 이사를 하는 동안 잃어버리지 않게 챙겼을 엄마를 생각하니 이상하게 왈칵 눈물이 날 것 같다.
애인은 100일간 써낸 기록을 우리 엄마 아빠도 보시면 굉장히 좋아하실 거라고 했다. 절대 안돼, 라고 대답했지만 괜히 마음이 물러져서 다시금 괜찮을는지 생각해본다. 하지만 역시 안되겠어. 안되겠어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