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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Apr 14. 2018

"우린 이제 혼자네."

<100일 글쓰기 87/100>


엘린이 회사를 떠나기 전 빌려주었던 책이 있다. 팀원 몇 명과 함께 갖고 있는 책을 돌려 읽는 모임을 하다가 왠지 나도 좋아할 것 같다며 빌려준 것이다. <쇼코의 미소>라는, 엷은 보라빛이 도는 분홍색 배경에 긴 머리칼의 소녀가 등을 보이고 있는 표지의 책이었다. 서점 매대와 인터넷 서점 첫 화면에서 몇 차례 본 기억이 있어서 좋다고 받아두고는 결국 엘린이 떠날 때까지 읽지 않아 여즉 돌려주지 못 했다.

여차하면 합정에서 만나기로 이야기를 했던터라, 오늘 점심 약속 및 저녁 약속 장소가 모두 합정인지라 생각난 김에 사이 시간에 읽으려고 책을 챙겼다. 오래된 친구와 1분기 동안 쌓인 회포를 풀고 인사를 나눈 후 혼자 남아 책을 펼쳤다. 여러 개의 단편 소설로 구성된 책이었고, 그 중 첫 번째 작품이 '쇼코의 미소'였다. 주인공인 '소유' 그리고 소유의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일본의 학교에서 온 '쇼코'가 홈스테이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어쩐지 웃는 얼굴이 성숙하고 묘한 우월감을 드러내는 것 같던 쇼코는 소유와 닮은 구석이 많다. 주 양육자가 할아버지라는 것도, 감수성이 예민하고 꿈꾸는 미래가 있다는 것도. 끝내는 둘 다 꿈꾸던 미래와는 다소 먼 삶을 살기 시작하고, 부정하고 멀리하고 싶어도 마지막에는 자신의 버팀목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던 각자의 할아버지를 잃는다. 그 후에야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재회한 둘 사이의 대화는 아래와 같다.


"소유야."
"응."
"우린 이제 혼자네."
- 최은영, <쇼코의 미소>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임에도 한없이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한 말이 시리고 아파서 한참 울었다. 사람들로 그득한 카페 가운데 테이블에 앉아서, 읽는 도중에도 몇 번을 멈추고 울다 숨을 고르고 조금 읽고를 반복하다가, 후반부의 그 대화에서 주체하지 못 하고 끕끕거리며 울었다.


요즘의 나는 이상하다. 야생의 동물들의 일과를 지켜보며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흥분하고 싱글싱글 웃는다. 그러기를 이틀을 하고 나니 이제는 툭 치면 눈물이 주륵 나온다. 설명하기도, 스스로 이해하기도 어려운 일이라 애인 또한 난감해한다. 이해 받을 수 없다는, 닿아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 또 '혼자' 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혼자. 혼자. 고통은 각자의 몫. 혼자 감내해야 하는 것. 혼자 사는 사람. 밀려오는 것은 쓰고 눅눅하다. 헤엄치는 방법을 모르는 나는 그저 그 파도에 휩쓸려 버둥거리다 숨 막혀할 뿐이다.

비가 내린 후라 그런지 밤공기가 차다. 눈물을 닦아주고 집앞까지 데려다줬던 애인이 간 후에는 오랜만에 엄마를 만났다. 요즘 난방을 안 하고 살았다고 하니 엄마는 그래도 자기 전에는 데워놓고 자야 몸이 안 곱는다며 보일러를 틀어두고 방에 들어가셨다. 방문이 닫히고, 또 혼자다.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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