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파랑 Apr 13. 2018

크고 단단하게

<100일 글쓰기 86/100>


며칠 전 거울 앞에 서서 상체를 비틀다가 등살이 꽤 두툼하게 접히는 것을 발견하고 당황했다. 등에 찐 살이 제일 빼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던 것 같은데, 그간 얼굴 빵실빵실해지고 옆구리 라인이 느슨해지고 배꼽 주위 머핀톱이 부푸는 것만 생각했지 등 쪽은 살펴본 적이 없다. 이러다 크게 후회하겠지 싶었다. 미래의 나에게 폐가 되면 안되는데, 이 또한 큰 폐가 아닌가 하고. 만 30이 되기 전에 키운 근육으로 죽을 때까지 먹고 사는 거란 소리도 들은 적이 있다. 십대 때부터 한 달 신나게 몸 키워도 2-3년씩 닳을 때까지 쓰곤 했는데 이젠 감가상각이 너무 심하다. 주어진 데드라인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급한대로 간단한 맨손 운동을 이틀 했다. 그런데도 아침에 전철역에서 계단을 오르는데 둔부 아래쪽 근육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회전근을 최대한으로 풀고 당기고 하는 걸 몇 번 했더니 날개뼈는 얼얼하고, 옆구리 좀 쭉쭉 당겼다고 멍든 것처럼 아프다. 이쯤되면 100일 글쓰기가 아니라 100일 운동을 했어야 하나 뒤늦게 후회가 밀려온다. 아니, 병행이라도 했으면 80일 넘게 조금씩 조금씩 진짜 잔근육을 키워 꽤 자신있게 팔뚝을 드러내고 다녔을텐데. 지난 주에 제이미가 필라테스 스튜디오 등록 이야기를 했던 터라 다음주에 상담 받을 날짜까지 찍었다. 6월이 가기 전에 마음에 차는 실루엣을 얻는 것, 애인이 그리워하는 등 근육을 되찾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몸이 가벼워지고 체력이 좋아지면 덩달아 기분도 좋아질 것이다. 하다못해 지쳐서 잠이라도 잘 잘 수 있으니까 좋지 아니한가. 무엇이든 힘낼 수 있는 기본 추진력이 생길 것이고, 동물 다큐를 봐도 이 친구들이 어떤 근육을 써서 저렇게 움직이는지 좀 더 주의깊게 살펴볼지도 모른다. (어제 돌고래떼가 점프하고 공중회전하고 하는 걸 봐서 그런다.) 작년에 필라테스 체험을 할 때, 담당 선생님이 숨겨진 키 3cm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열심히 하면—비록 그게 상체일지라도—1.5cm 정도는 더 길어질 수 있을 거다. 더 크고,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지.

고래 영상 보면서 이런 소리를 하니 왠지 꿈 속에서만큼은 저 고래만큼 커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고 묘하게 흥분된다. 설레는구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바람개비와 고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