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89/100>
엄마는 아빠가 꽃을 선물하면 좋아하지 않았다. 차라리 '싫어했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을 정도로 대놓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실제 속으론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대개 아빠가 사 오는 꽃은 예쁜 꽃다발도 아니고 그냥 아주 기본적인 형태의 병문안용 꽃바구니 같은 거였다. 원색이 쨍하고 꽃잎이 죄다 활짝 펴있는, 섬세함이나 설렘을 느끼기에는 아무래도 과하고 촌스러운 구석까지 있는 꽃바구니였다.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데 못 생긴 데다 실용적이지도 않으니 엄마는 차라리 돈으로 달라며 아빠를 흘겨봤다.
어렸을 때 살던 외할아버지 댁에 무궁화라든가 국화, 라일락 나무 같은 게 잔뜩 있긴 했지만 꽃이 주는 소소한 감상보다는 할아버지의 취미 생활이라고 치부하는 것에 그쳤다. 초등학교 입학 후의 꽃은 학교 화단이 있는 이름 모를 것이었다. 지나가다 하나씩 푝 뽑아서 꽃잎 뿌리 쪽을 빨면 새큼달짝지근한 꿀이 나오는. 카네이션이라는 것은 어버이날에 문방구에서 파는 기념 도구일 뿐이었고, 벚꽃은 봄의 표상이었다. 그러한 봄-벚꽃 또한 '꽃' 단독의 것으로 존재하진 못 했다.
지금의 애인에게 아침 일찍 고속터미널 꽃시장에서 사 온 꽃을 얼기설기 엮어다 부케처럼 리본을 동여매어 선물한 적이 있다. 손이 무거운 것을 싫어하는 애인은, 하필 찬바람이 씽씽 부는 초겨울에 멀리서부터 부케처럼 생긴 걸 들고 다가오는 날 피해 도망갔다. 잔뜩 토라진 후에야 민망해하며 마지못해 받은 이후로 우리 사이엔 별다른 꽃 선물이 오간 적은 없다.
일을 하다 갑자기 싱숭생숭한 마음에 최 언니에게 만나 달라고 데이트 요청을 했다.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것을 알고 있으니 전처럼 큰 맘먹고 날짜를 골라야 한다는 부담은 덜어낸 상태였다. 둘 다 좋아하는 양갈비 집을 예약하고 기다렸다. 딸랑거리며 문이 열릴 때마다 방긋거리며 돌아봤다. 몇 번 김칫국 시원하게 마신 후에 진짜 언니가 들어오자마자 신문지로 돌돌 싼 작은 장미 한 다발을 내밀었다. 오는 길에 시간이 간당간당해도 살 수밖에 없을 만큼 예쁘고 소복해서 사 왔다고. 챙겨 먹으라고 무게가 두둑한 밀크티 박스도 내주었다. 4월의 산타클로스인가 생각하고 신나게 양갈비를 뜯고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무슨 무슨 기념일이면 동네에 나들이를 나온 커플들 손에는 꼭 작은 프리저브드나 드라이플라워 한 다발씩이라도 들려있는 게 별 부럽지도 않으면서 부러워서 일부러 안 쳐다봤던 때가 있다. 신문지에 성기게 돌돌 말린 꽃다발이라도 생각하고 챙겨준 사람의 반가운 얼굴과 뜨끈 거리는 마음을 곱씹으니 온몸이 마구마구 흐물 하게 녹는 것 같다. 꽃 이름이 '잔나 장미'라고 한 것 같은데. 꽃잎이 겹겹이 들어찬 작은 망울이 엷은 분홍빛과 오렌지빛을 내는 게 언니가 웃는 모습이랑 비슷한 느낌이다. 기분 좋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