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92/100>
"우리 너무 빨랐나 봐. 조금 느렸다면 어땠을까.
우리 왜 서로의 끝을 알면서도 사랑을 건넸을까."
끝을 빤히 알고 시작하는 일은 기운이 빠지고 설레는 마음이 잘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끝이 진짜 '끝'이 아니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임한 일도 있다.
이틀 전 PRODUCE 101 시즌 2의 파생 그룹 중 하나인 'JBJ' 가 세 번째 앨범을 공개했다. 7개월간의 프로젝트 계약 기간 종료를 마무리하는 앨범이다. 미니 1, 2집의 전곡이 수록되었고, 신곡은 3곡이 추가되었다. 미니 앨범에도 모두 팬송이 들어갔었으니 이번에는 활동 종료에 따른 메시지가 더 진하게 들어간 곡들이겠구나 예상하고 있었다.
급하게 연락을 준 지인이 보내온 신곡 가사를 먼저 살폈다. 그간의 기억을 천천히 더듬고 곱씹으며 이별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가득 담은 가사들 뿐이었다. 모든 가사를 멤버들이 쓴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도 JBJ와 일하고, 그들을 응원했던 작곡가, 작사가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서로가 이별을 원하지 않는 아티스트와 팬들인 것을 알고 있으니 JBJ가 어떤 마음으로 그 가사를 쓰고 소리내어 부르고 녹음하고 무대를 준비하고 있을지 생각하면 우울한 감정이 밀려온다.
데뷔 후 낸 2장의 앨범 모두 1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음원 순위도 좋은 편이었다. 데뷔 101일만에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했고, 올림픽홀에서 진행한 2회의 콘서트 모두 전석 매진, 이후 월드 투어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비용이 얼마가 들어갔느냐랑은 별개로, 어쨌든 매출도 70억 달성을 점칠 정도였다. 성적이 좋으면, 시장의 반응이 좋으면-이라는 말로 팬들의 고혈을 짜내던 소속사들이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9할 이상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던 계약 연장은 무산됐다.
엠바고를 지키지 않고 일찍 뉴스를 터트린 모 기자님 덕분에 팬들은 급작스럽게 충격적인 소식을 접해야 했고, 그야말로 무례하기 짝이 없는 상황들에 반발하며 5회에 걸쳐 오프라인 집회를 진행하기까지 했다. 묵묵부답에 이제는 보도자료만 배포하면서 뒤에 숨는 소속사들에 지쳐 떠난 팬들도 여럿이다. 빠르게 성장하고 성과를 냈던 JBJ라서, 소위 말하는 '화력'이라는 게 그런식으로 빠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입장에선 'JBJ'라는 브랜드가 망가지는 모든 과정이 속상할뿐이다. 애초에 씨앗을 뿌리고 물을 준 쪽은 팬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케이스라 더더욱 기가 막히고 눈물 나는 상황이다.
모레부터 양일간 마지막 콘서트 <정말 바람직한 콘서트 Epilogue>가 진행된다. 이미 많이 울었는데도 여전히 나올 눈물이 계속 남아있나 보다. 울지 않을 자신이 없다. 많이 울지 않을 자신마저 없다. 끝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렇게 힘들다. 담담한 척 해도 결국은 잊지 말아달라고, 기억해달라고, 다시 만나자고 말하는 JBJ 멤버들 때문에.
"잊지 말아줘. 날 기억해줘.
내가 다시 한 번 널 부를게."
— JBJ, <부를게>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