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93/100>
핸드폰을 잃어버렸던 그날 오후부터 목이 아팠다. 며칠 내내 코가 막힌다 했더니 코감기 초기 증상의 합병증(?) 같은 걸로 생기는 목 감기였다. 아빠를 닮아서 나나 sis나 모두 호흡기가 좋지 않다. 특히나 목이 약한 편이고 만성 비염은 사시사철 뗄 수 없으니 주의를 하는 편이다. 목감기는 열을 동반하고, 열이 나면 귀까지 아픈데다 몸살이 오기 쉬우니 초기에 잡는 게 중요하다.
그날은 너무 정신이 없어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참고 그냥 잠들었다. 그랬더니 바로 다음날부터 열이 짜잔, 하고 오르는 것이다. 출근길에 마스크도 쓰고 쌍화탕 한 병을 챙겨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데워 마셨다. 목구멍이 깔깔한 느낌이 쉬이 가라앉지 않고 점점 심해졌다. 양호실에서 주시는 상비약 두 알은 꼭 한 알씩만 먹곤 했는데, 주말 스케쥴을 염려하다보니 두 알씩 꼬박꼬박 삼켰다. 약 기운 때문에 나른하게 늘어지는데 할 일은 있으니 야근도 하고. 꿈에서 허우적거리다 겨우 일어나서 좀비처럼 출근을 했다.
어제는 큰맘 먹고 다부지게 벌떡 일어나 정시에 퇴근을 하고 집에 와 뜨거운 녹차물에 햇반을 말아 먹었다. 어금니가 시큼할 정도로 묵은 김치는 물에 훌훌 씻어내 작게 찢어 얹고. 쌓여있는 빨래를 돌리고 차분하게 널어둔 뒤 쌍화탕도 한 병 마셨다.
원래 오늘 저녁 만날 예정이었던 K는 부르는 님들이 너무 많아 못 만나게 되었다며 약속을 미뤘다. 그리곤 어제 회사 근처로 오는 김에 잠깐이라도 내려오라고 불렀다. 하필 열이 계속 나서 아침부터 얼굴이 퉁퉁 붓고 빨갛게 익어있는 탓에 안되겠다고 하니, 어쩐지 전날 전화할 때 목소리가 이상하더라며 걱정을 해줬다. 기대하는 게 웃기다고는 생각하지만 매일 보는 회사 사람들은 관심 없어 하고 눈치 못 챌 지점에 대해 은근 섬세하게 구는 게 고마웠다.
주말에 함께 가지 못하는 sis는 자기 몫까지 잘 다녀오라며, 내 몸 상태를 걱정해주었다. 어쩐지 멀리 있는 사람들이 눈에 안 보여서 그런지 더 마음 써주는 느낌이다. 물론 지근거리에 있는 애인 또한 마찬가지지만. 같이 있지 않아도 마음으로 함께 있어준다는 그 느낌 덕분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오후에도 열 때문에 귀가 아파서 타이레놀 한 알에 챙겨갔던 쌍화탕을 마셨다. 금요일 밤의 소울푸드 인스턴트 냉면을 하나 끓이고, 정 안 어울리는 뜨거운 녹차를 탔다. 자고 일어나면 완전 말끔하겠지. 다음 주에는 함께 시간 보내기로 약속한 사람도 많으니까. 설레는 마음으로- 주말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