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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Mar 25. 2019

한 번쯤 궁금했던 것들

1. 경복궁의 동남쪽에는 '동십자각'이라고 불리는 망루가 서있다. 덩그러니 서있는 게 무슨 용도일까 싶다가도, 율곡로와 삼청로가 맞닿는 3거리의 중간에 자리 잡고 있는 게 근사하다는 생각만 하고 지나갔다. 그러다 어느 날 본가의 소파에 반쯤 몸을 걸치고 엎어진 채 하릴없이 채널을 돌리다 KBS 다큐멘터리 <600년의 대화 - 경복궁의 72시간>에 멈췄다. 원래는 경복궁 담의 남동쪽 꼭짓점에 해당하던 망루이고, 반대편에도 '서십자각'도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 전차 철로를 건설하느라 곡선 구간 처리, 비용 등의 문제로 철거했다는 내용도 나왔다.

서십자각이라는 게 따로 있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 하고, '이건 이름이 동십자각이네. 위치가 희한하네.' 하고 말았었는데 말이다. 경복궁의 담은 과거와 같지 않고 변형된 상태이며(예전보다 좁아졌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동십자각은 외따로 떨어진 채, 서십자각은 복원되지 못한 채라는 것이 지금 내가 이해하고 있는 정도다.


2. '서촌은 경복궁 서쪽이라는데 왜 북촌은 경복궁 동쪽이지?'라고 생각했다. 간혹 서촌이 아닐 세종마을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도 아리송해했다. 동촌이나 남촌은 없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다 애인과 남산에 가려고 명동 대한극장 근처로 버스를 타러 걸어가는데 남산골 한옥마을이라는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남산 아래 회현동 일대가 '남촌'이라 불리는 곳이었던 거다.

그리하여 이런저런 추측을 찾다 보면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인왕산 아래 서촌, 북악산 아래 북촌, 남산 아래 남촌, 낙산 아래 동촌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 외에도 청계천 일대의 중촌이라든가 그 주변 웃대, 아랫대 등도 있다. 전자의 산을 끼고 있는 동네는 문무 관료들이나 양반들이 각각 당파에 따른 세력을 이루어 살던 곳이라 하고, 중촌은 중인들이 주로 살았다고도 한다. (그럼 성균관을 둘러싼 반촌은 반인들이 많이 살아서 반촌이었나. 이것도 궁금해졌다.)

최초의 의문으로 돌아가면, 서촌이 법궁의 서쪽에 있어서 꼭 서촌인 것은 아니었다-라고 할 수 있겠다.


3. 몇 년 전 사랑니를 뺐을 때 병원에선 다음 내원 때까지는 빨대 사용, 흡연 등을 금하라고 했다. 발치한 자리가 지혈이 된 것 같아도 무언가를 빨아 당길 때 생기는 입 안의 압력 때문에 다시 터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하루 이틀 정도는 지혈된 후에도 안에 고인 피가 흘러나올 수 있으니 너무 놀라지 말라는 안내를 덧붙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친절한 설명이다. 빨대 사용 금지, 금연 정도만 주의사항으로 안내해주고 끝났다면 나는 피 이제 안 나네, 하면서 막대 사탕을 쪽쪽 빨다 다시 피를 질질 흘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그런 압력 높이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음에도 지혈이 잘 되지 않아 밤 사이 베갯잇을 피로 물들였지만 말이다.


4. 애인은 세상에 궁금한 게 많고, 내게 짓궂은 편이다. 내가 의심 없이 당연하게 생각하다 일상적으로 흘린 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대답하지 못하면 왜 모르냐며 장난꾸러기처럼 웃는다. 간혹, 마침 내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생각하던 것에 대해 물어와서 대답을 하려고 하면 듣기 귀찮아하는 척이다. 설명 모드로 들어가면 갑자기 웅변대회에 나온 어린애처럼 힘이 들어가서 끊임없이 말을 늘인다는 게 놀리는 이유인데 그럴 때마다 '듣기 싫으면 왜 물어봤지' 하는 생각을 한다. 뭐라고 반응을 하든 말할 만큼 말하고 나서도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들 때도 있고, 그래도 끝까지 말했다는 성취감 비슷한 것이 들 때도 있다.

지난주인가 야베스가 공유한 MBTI 검사 결과에서 INTP가 나왔다. 그중에서 나의 이런 성향을 변호하는 데에 쓰고 싶은 구절은 이거다.

"가령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시계 작동법을 창의적으로 사고하되, 가능한 한 하나의 사실도 빠짐없이 논리적으로 가장 합당한 결론에 이르게 설명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사색가형 사람이 사고하는 방식입니다." (전문)


5. 오늘 밤엔 경복궁 신무문 근처 작은 2개 문에 적힌 한자가 무엇인지 적어올 예정이다. 뭘 위해 낸 문인지 궁금해...


+

무슨 문인가 해서 전서체를 힘겹게 사전에 필기 인식으로 넣고 있으니 보초 서던 경호원분이 와서 알려주셨다. 계무문, 그리고 광무문이라고. 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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