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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Mar 2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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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 66/100>


sis와 사촌 동생 하나와 만나 점심으로 태국 요리를 먹었다. 사촌 동생은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라 총 MT라는 걸 다녀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밤새 잠도 안 자고 술을 마시고 와서 얼굴만 보고 가려고 했다던 애를 붙잡아 뭐라도 조금 먹고 들어가라고 끌고 갔다. 저녁 때도 약속이 있다는 말에 기숙사에서 쉬다 빈 속으로 나갈 게 걱정이 되어서. 밥을 먹고, 카페까지 같이 가겠다는 말에 나이 많은 누나들은 걱정을 하면서도 신이 나서 에끌레어 접시를 앞에 밀어주고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룸메이트들은 어떠니, 친구는 많이 사귀었니, 술은 자주 마시니, 수업은 재밌니, 미팅은 해봤니 등등. 과잠을 입고 온 것까지 귀여워서 어화둥둥하다가 느즈막하게서야 보내고 좀 후회를 했다. 괜히 불러서 쉬지도 못 하게 했네, 하고.

저녁 약속 때까지 시간이 애매해서 집에 들렀다 간다는 sis와 인사를 하고 한강을 건너 병원에 갔다. 수술 후 검사 받는 건 다섯 번째인데, 집도하신 선생님을 만난 건 이번에 두 번째다. 뭔진 몰라도 '우리 의도대로 잘 가고 있다' 라던 선생님은 오늘도 "전보다 훨씬 잘 보이죠?"라는 말부터 꺼내셨다. 이미 너무 피곤해진 상태라서 아, 예- 하고 나와서 전철역 출구 근처에서 버스킹 중인 밴드를 보다가 만원 전철에 올랐다.

집 근처 전철역에 내리니 북쪽으로 올라가는 도로의 교통이 통제되어 있었다. 경찰의 가이드에 따라 비정규직 철폐 시위대 사이를 가로질러 집까지 천천히 걸었다. 어제 점심을 먹었던 프랑스 가정식집 앞을 지나는 동안은 다진 고기가 듬뿍 들어간 파스타 소스 냄새가 났다. 조금 더 걸어 올라오는 길에는 오른편의 에그 타르트집과 왼편의 디저트집에서 달달한 크림 냄새를 맡았다. 스무 걸음쯤 더 걸어 올라온 후에는 커다란 창을 활짝 열어둔 카페에서 커피콩 볶는 구수한 향이 풍겼다. 구불구불한 골목에 들어서니 문 열린 소품샵에서 마른 꽃잎향을 닮은 무언가가 강하게 코끝을 적셨다. 공기에서 먼지 냄새가 풀풀 풍길법도 한 날인데 좋은 향이 가득한 산책이었다.

건조하고 일교차가 큰 환절기라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코가 줄줄 나오고 재채기를 한다. 그럼에도 말랑하게 녹은 기온은 그만큼 자극 또한 짙게 데려와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살랑거리는 기분이 주말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며, 내일은 조금 더 따뜻하고 숨 쉬기 편하면 좋겠다. 아아, 내일에 대한 설렘이 있는 저녁이라니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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