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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Jan 22. 2018

'고독'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100일 글쓰기> 5/100


  최근에 왕래가 잦은 지인으로부터 '최애돌'이라는 서비스가 인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인지 검색을 하다보니 그만큼 또 자주 보이는 키워드가 '고독한 OOO'였다. 모 커뮤니티에서는 언급을 금지했길래 대체 이게 무엇이길래 하고 찾아봤다.


  좋아하는 대상을 붙여 '고독한 OOO'라는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익명의 사람들이 모이고, 말 없이 이미지나 영상, 샵(#) 검색 결과로만 대화가 이루어지는 형태였다.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의 이름이 적힌 방을 몇 개 찾아 들어가놓고 나니 대화인원이 많은 방은 거의 초 단위로 이미지가 쏟아졌다.

  구하고 싶은 이미지가 있으면 구하고 싶다는 의사를 이미지 안에 적거나 입력창에 쓴 텍스트를 캡쳐한 이미지를 전송한다. 그럼 집단지성(?) 내지는 인간지능이 순식간에 해당하는 결과물을 쏟아낸다. 공유된 이미지가 좋다, 어떻다 하는 반응 또한 이미지로 대체한다. 텍스트로 된 메시지를 전송하면 채팅방에 따라서는 엄격한 룰에 따라 강퇴를 시키기도 한다. 문자 언어가 지배적인 카카오톡 채팅방 안에서, 직접적으로 문자의 형태를 띈 언어는 모두 제거되고 '이미지'만 남았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의 모든 언어가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라 시청자에게만 공유되는 생각의 형태인 것처럼 말이다. (점점 더 텍스트 대신 다채로운 이모티콘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있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이 '고독한 OOO'가 정말로 고독하냐-라고 하면 오히려 체감하는 것은 복닥복닥하고 시끄러운 쪽에 가깝다. 이미지를 보내는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아끼는, 퍼트리고 싶은 이미지를 전송함으로써 끊임없이 수 백 명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고, 공유 받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알림을 통해, 또는 적극적으로 채팅창에 반응하는 이미지를 보내면서 대화하고 있다. 잠시만 눈을 떼어도 전에 없이 수북하게 쌓인 New 카운트를 보면 정말로 어딘가에 계속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이 든다. 간밤에는 잠이 잘 오지 않아 창 하나를 열고 있으려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처음에 예상했던 이점은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이미지를 얻는다- 정도였다. 하지만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또 하나의 새로운 커뮤니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통의 대상을 좋아한다는 것 외에는 무엇도 잴 것 없는 익명의 사람들이, 싫증이 났을 때 나가고 안 보면 그만인 채팅방에 모인다. 룰도 더없이 간단하다. '고독한 OOO'와 관련된 이미지 전송하기. 쓸데없는 메시지를 보내면 너 강퇴.

  좋아하는 대상의 이미지는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긍정적이며, 참여자 모두 기다리고 기대하고 우호적으로 반응한다. 부정적인 언어가 끼어들 틈은 극도로 비좁아진다. 논쟁이나 소모적인 감정싸움을 하고 싶어도 애초에 가장 뾰족한 수단이 배제되어 있으니 쉽지 않다. (간혹 말도 안되는 이슈가 터져서 와해된 사례가 있다고는 하지만.) 좋은 것만 보니까 피로도도 적고, 심지어 하루 24시간 좋아하는 대상들에 초초초간편하게 밀착해있을 수 있다.

  '고독한 OOO' 오픈채팅을 최초로 시작한 사람이 어떤 의도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고독한'으로 검색되는 오픈채팅 리스트의 수가 결코 적지 않고, 각각의 규모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정도이며 아주 활동적인 상태인 것을 보면 의도야 어찌됐든 이 모델은 성공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몇 자 끄적이는 새에 벌써 안 읽은 메시지가 또 999+ 를 찍었다. 그래도 마성의 고독방, 나갈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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