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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Jan 25. 2018

혼자 사는 사람의 몸살

<100일 글쓰기> 8/100


  잔병치레가 심한 편이다. 툭하면 체하고 툭하면 맥을 못 추고, 툭하면 머리가 아팠다. 계절마다 한 두 번씩은 눈 앞이 핑핑 도는 저혈압 증세를 겪었고, 심한 목감기에 콧물을 달고 살았다. 엄마는 열 달을 꼬박 채우고 나왔는데도 왜 이렇게 생기다 만 것마냥 약하냐고 우울해하셨다. 본가에서 나와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상비약으로는 타이레놀과 쌍화탕, 훼스탈이 필수였다.

  혼자가 된 후로 아플 때마다 마음은 더 약해졌는데, 그럼에도 어디 아프다고 광고할 데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고 하니 점점 더 우울해졌다. 아플 때 매번 아픈 상태에 끌려다니는 것도 밥벌이를 시작하니 마땅치 않았다. 아픈 것과는 별개로 수행해야하는 업무가 있었고, 낼 수 있는 연차의 수는 한정적이었으니까. 회사 근처에는 어떻게 된 건지 매번 병원도 마땅치 않았다. 전보다 병의 전조를 파악하게 되었고, 초기에 잡는 나름의 해결책도 대충이나마 익혔다. 무모하게 굴어도 되는 최대치를 알게 되었으며, 현재의 컨디션을 좀 더 악화시킬 가치가 있는가 저울질도 하는 직장인이 됐다. 웬만한 위염, 장염 증세는 죄다 게워내고 쇼크가 올 정도가 아닌 이상은 그저 순응하며 지나가길 기다린다. 주위 사람들은 이제 내가 코 먹은 소리를 내든 말끔한 목소리를 내든 구분을 못 한다.


  그럼에도 서글플 때는 견딜 수 없이 아픈데도 병원에 자력으로 갈 수 없을 때와 뭐라도 입에 넣어야 할 때다. 지금 사는 동네에는 내과나 이비인후과가 없다. 열 때문에 당장 귀가 먹먹하고 눈 앞이 안 보이는데도 씩씩하게 버스를 타고 동네를 벗어나야 한다. 섬에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스트레스성으로 며칠 내내 먹지도 못하고 시간마다 속을 게워낼 때가 있었다. 자차 필수인 동네에서 면허부터 없는데다 택시를 잡으러 나갈 기운도 없었다. 가엽게 여긴 옆 동네 사람의 도움으로 응급실에 가서 각종 검사를 받고 늦은 새벽까지 링겔을 꽂고 있는데 세상 서러웠다.

  평상시에는 근사한 레스토랑에도 혼자 잘만 가는데 아플 때는 마음이 유난스러워졌다. 배달되는 음식의 종류는 한정되어 있었고, 빈 냉장고 대신 뭐라도 사러 나가기엔 돌아오는 길이 죄 언덕길이었다. 먹을 걸 앞에 챙겨놓고도 먹는 속도가 느린 나는 아플 때면 또 한없이 느려져서 먹다 먹다 다 식은 죽 같은 걸 앞에 두고 침울해졌다. 꽁꽁 싸매고 어디 밥집에라도 찾아가면 이상하게 눈치가 보였다. 1인 고객을 위한 자리는 비좁고 불편했고, 평일 점심 때이기라도 하면 내 먹는 속도로는 종내엔 눈총 받기 십상이었다. 경험이 좀 쌓인 후로는 이제 잘게 간 야채죽용 쌀을 냉동실에 넣어두고 산다.


  며칠 전부터 온 몸의 뼈마디가 결리고 살갗이 아리다. 어쩐지 주위에서 콜록거리는데도 멀쩡히 잘 견디고 있다 싶었다. 때가 됐나보다 하고 집에서 가장 따뜻한 sis의 빈 침대에 누워 전기장판을 세게 틀고 잤다. 그리고 그 날 새벽 결로로 인해 천정등에 누전이 생겨 전기가 나갔다. 몸은 아리고 잠은 부족하고 컨디션은 안 좋은데도 경황이 없어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더니 멀쩡히 하루가 지나갔다.

  긴장이 풀릴 즈음이 되니 다시 통증이 도졌다. 지진도 전진 후에 '진짜' 본진이 오는 것처럼. 하필 체감 온도가 영하 20도를 웃도는 날이었다. 열이 올라 찐빵 같은 얼굴로 눈도 제대로 뜨고 오들오들 떨면서 집에 가자마자 이번에는 뜨겁게 데운 쌍화탕까지 마시고 매트에 누웠다. 관절은 아프고 힘은 안 들어가고, 쌍화탕 뚜껑을 여느라 한참 낑낑거렸다. 하필 타이레놀은 죄다 떨어져서 찾을 수가 없었다. 밤새 악몽을 꿨다. 목이 아플 때면 꾸는, 환공포증을 자극하는 꿈.

  하필 좀 더 나은 컨디션과 거래해야할만한 업무가 있는 날이라 다시 찐빵같은 얼굴로 비척비척 출근을 했다. 멀리 본가에 가있는 sis에게 [나 몸살 났음] 하고 메시지를 하고 나니 오랜만에 울고 싶은 기분이 됐다. 밥도 잘 먹어놓고 열 때문인지 속에서 밥알이 깔깔하게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느낌이었다. 양호실에 가서 실실 웃는 얼굴로 "몸살 약 좀 주세요." 하고 약을 받아왔다. 37.8도. 얼굴이 빨간 찐빵이 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도 선생님이 "열이 높네요." 라고 하시니까 마음이 더 물렁물렁 무너졌다.

  그래도 선생님이 걱정하는 표정을 지어주셨어! 라고 같잖은 자위를 하고, 약도 꼴딱꼴딱 먹고 한 시간쯤 지나니 또 살만하다. 살만한 정도-에 만족하는 생활. 기댈 곳 없는 '혼자'의 몸살은 이번에도 그렇게 무르익어 간다. 제발 내일은 말끔하게 낫기를.




* 오늘자 글감이었던 '혼밥'을 보자마자 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이 생각났다.

1인 가구로서의 '혼자' 외에도, 세상을 살아가는 '혼자' 사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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