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8/100
잔병치레가 심한 편이다. 툭하면 체하고 툭하면 맥을 못 추고, 툭하면 머리가 아팠다. 계절마다 한 두 번씩은 눈 앞이 핑핑 도는 저혈압 증세를 겪었고, 심한 목감기에 콧물을 달고 살았다. 엄마는 열 달을 꼬박 채우고 나왔는데도 왜 이렇게 생기다 만 것마냥 약하냐고 우울해하셨다. 본가에서 나와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상비약으로는 타이레놀과 쌍화탕, 훼스탈이 필수였다.
혼자가 된 후로 아플 때마다 마음은 더 약해졌는데, 그럼에도 어디 아프다고 광고할 데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고 하니 점점 더 우울해졌다. 아플 때 매번 아픈 상태에 끌려다니는 것도 밥벌이를 시작하니 마땅치 않았다. 아픈 것과는 별개로 수행해야하는 업무가 있었고, 낼 수 있는 연차의 수는 한정적이었으니까. 회사 근처에는 어떻게 된 건지 매번 병원도 마땅치 않았다. 전보다 병의 전조를 더 잘 파악하게 되었고, 초기에 잡는 나름의 해결책도 대충이나마 익혔다. 무모하게 굴어도 되는 최대치를 알게 되었으며, 현재의 컨디션을 좀 더 악화시킬 가치가 있는가 저울질도 하는 직장인이 됐다. 웬만한 위염, 장염 증세는 죄다 게워내고 쇼크가 올 정도가 아닌 이상은 그저 순응하며 지나가길 기다린다. 주위 사람들은 이제 내가 코 먹은 소리를 내든 말끔한 목소리를 내든 구분을 못 한다.
그럼에도 서글플 때는 견딜 수 없이 아픈데도 병원에 자력으로 갈 수 없을 때와 뭐라도 입에 넣어야 할 때다. 지금 사는 동네에는 내과나 이비인후과가 없다. 열 때문에 당장 귀가 먹먹하고 눈 앞이 안 보이는데도 씩씩하게 버스를 타고 동네를 벗어나야 한다. 섬에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스트레스성으로 며칠 내내 먹지도 못하고 시간마다 속을 게워낼 때가 있었다. 자차 필수인 동네에서 면허부터 없는데다 택시를 잡으러 나갈 기운도 없었다. 가엽게 여긴 옆 동네 사람의 도움으로 응급실에 가서 각종 검사를 받고 늦은 새벽까지 링겔을 꽂고 있는데 세상 서러웠다.
평상시에는 근사한 레스토랑에도 혼자 잘만 가는데 아플 때는 마음이 유난스러워졌다. 배달되는 음식의 종류는 한정되어 있었고, 빈 냉장고 대신 뭐라도 사러 나가기엔 돌아오는 길이 죄 언덕길이었다. 먹을 걸 앞에 챙겨놓고도 먹는 속도가 느린 나는 아플 때면 또 한없이 느려져서 먹다 먹다 다 식은 죽 같은 걸 앞에 두고 침울해졌다. 꽁꽁 싸매고 어디 밥집에라도 찾아가면 이상하게 눈치가 보였다. 1인 고객을 위한 자리는 비좁고 불편했고, 평일 점심 때이기라도 하면 내 먹는 속도로는 종내엔 눈총 받기 십상이었다. 경험이 좀 쌓인 후로는 이제 잘게 간 야채죽용 쌀을 냉동실에 넣어두고 산다.
며칠 전부터 온 몸의 뼈마디가 결리고 살갗이 아리다. 어쩐지 주위에서 콜록거리는데도 멀쩡히 잘 견디고 있다 싶었다. 때가 됐나보다 하고 집에서 가장 따뜻한 sis의 빈 침대에 누워 전기장판을 세게 틀고 잤다. 그리고 그 날 새벽 결로로 인해 천정등에 누전이 생겨 전기가 나갔다. 몸은 아리고 잠은 부족하고 컨디션은 안 좋은데도 경황이 없어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더니 멀쩡히 하루가 지나갔다.
긴장이 풀릴 즈음이 되니 다시 통증이 도졌다. 꼭 지진도 전진 후에 '진짜' 본진이 오는 것처럼. 하필 체감 온도가 영하 20도를 웃도는 날이었다. 열이 올라 찐빵 같은 얼굴로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오들오들 떨면서 집에 가자마자 이번에는 뜨겁게 데운 쌍화탕까지 마시고 매트에 누웠다. 관절은 아프고 힘은 안 들어가고, 쌍화탕 뚜껑을 여느라 한참 낑낑거렸다. 하필 타이레놀은 죄다 떨어져서 찾을 수가 없었다. 밤새 악몽을 꿨다. 목이 아플 때면 꾸는, 환공포증을 자극하는 꿈.
하필 좀 더 나은 컨디션과 거래해야할만한 업무가 있는 날이라 다시 찐빵같은 얼굴로 비척비척 출근을 했다. 멀리 본가에 가있는 sis에게 [나 몸살 났음] 하고 메시지를 하고 나니 오랜만에 울고 싶은 기분이 됐다. 밥도 잘 먹어놓고 열 때문인지 속에서 밥알이 깔깔하게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느낌이었다. 양호실에 가서 실실 웃는 얼굴로 "몸살 약 좀 주세요." 하고 약을 받아왔다. 37.8도. 얼굴이 빨간 찐빵이 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도 선생님이 "열이 높네요." 라고 하시니까 마음이 더 물렁물렁 무너졌다.
그래도 선생님이 걱정하는 표정을 지어주셨어! 라고 같잖은 자위를 하고, 약도 꼴딱꼴딱 먹고 한 시간쯤 지나니 또 살만하다. 살만한 정도-에 만족하는 생활. 기댈 곳 없는 '혼자'의 몸살은 이번에도 그렇게 무르익어 간다. 제발 내일은 말끔하게 낫기를.
* 오늘자 글감이었던 '혼밥'을 보자마자 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이 생각났다.
1인 가구로서의 '혼자' 외에도, 세상을 살아가는 '혼자' 사람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