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파랑 Jan 26. 2018

공연을 보자

<100일 글쓰기> 9/100


  아직 대학에 다니던 시절, 라이브 공연 쪽에서 잠시 일을 배웠던 적이 있다. 주 1회 전문가들에게 수업도 받고 공연장 견학도 다녔고, 5대 도시 투어가 잡힌 콘서트의 제작팀에서 막내를 했던 적도 있고, 관련된 기획사 오피스에서 갖가지 잡무를 했던 적도 있다. 당시에 일머리는 있는데 자꾸 빼작빼작 살이 내리는 나를 못 마땅해하는 한편 측은지심으로 살펴주시던 기술감독님 하나는 매번 내게 "너는 여기 오지 말고 딴 거 해. 1년에 3번쯤은 제 값 치르고 공연 보러다니는 좋은 관객이나 해." 라고 하셨다.

  남은 학기를 마무리한 후 결국 '좋은 관객'으로 남기를 선택한 후로 1년에 최소 3번은 유료 관객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같이 시작해 이제 공연계에 무사히 입봉한 언니, 오빠들이라든가 공연 기획사와 연이 있는 지인들 덕에 간혹 초대권을 받기도 한다. '초대권 나왔어' 라고 할 때 정말로 보고 싶은 공연이라면 아주 가끔 말이다.


  작년 봄에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 티켓을 구하지 못하던 차에 공연 당일날 급하게 초대권을 받아 간 적이 있다. 아예 초대권 구역이었는지, 주위에는 이제 세 네살쯤 됐을까 싶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까지 있었다. 공연 시작 후까지 김밥을 먹는 사람이라든가, 어디선가 맥주를 사와서 엎고 만 사람이라든가, 재미없다고 떼를 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틀어주는 사람까지- 여러 형태의 당황스러운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그 외에 초대 받아서 갔다가 너무 피곤해서 중간에 나왔다-라든가 하는 후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조금씩 빈정이 상한다. '그럴 거면 가지 말지!' 라는 마음.

  얼마 전에 갔던 다른 공연은 출연자별 티켓 파워에 대한 고려 없이 끼워팔기, 그리고 주먹구구식 진행으로 거의 공연 시간 내내 객석 전체가 싸한 고요에 휩싸였었다. 한 출연자는 거의 울 것 같은 상태로 음악을 꺼달라고 하고 급하게 무대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대개의 관객을 모았던 메인 출연자는 공연 후반엔 그 낯뜨거운 분위기에 대해 조심스럽게 한 마디를 하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후 후기 게시판은 클레임으로 폭발했다.

  결국 공연의 질을 완성하는 것은 유료 내지는 진성 관객의 비율이라고 생각한다. '라이브' 공연은 현장의 모든 것이 만드는 하모니이므로, 그래야 무대 위와 아래 모두 몰입도 높고 만족도 높게 진행될 수 있다. 관심 없고 애정 없는 관객까지 (공연의 신이 아니고서야) 출연자의 카리스마와 연출팀의 각고의 노력만으로 모두 커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마침 초대권도 생겼는데 문화생활이나 할까-정도의 접근은 역시 아쉽고 반갑지 않다.






  요즘 제이미와 자주 나누는 이야기가 있다. 돈 많고 잘 나가는 할머니가 되자고. 칠순잔치에는 좋아하는 가수를 섭외할 수 있을 정도의. 순식간에 매진치는 디너쇼라든가 마찬가지로 돈이 있어도 못 가는 팬콘 같은 거 말고, 생일 자축을 위해 축가 주자로 섭외할 부와 명예를 축적하는 정도 말이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티켓팅에 실패할 때마다 자괴감과 분노에 휩싸여 그렇게 활활 타오르곤 한다. 아니 대체 왜, 돈을 내겠다는데도 못 가는 거야? "shut up and take my money!!!" 상태인 우리는 분노했다.

  잘 나가는 가수의 공연 티켓을 재판매 목적으로 구매해 좋은 좌석은 10배 가격까지 프리미엄을 붙여 파는 일도 부지기수다.(주최측에서도 불법으로 간주하여 적발 시 취소 처리한다고는 하지만 말뿐인 경우가 많아서 한 때는 백만원짜리 티켓까지 알아볼 마음으로 코인 투자를 고민하기도 했다.) 이럴 때 어디서 티켓팅 연습을 했다는 소리가 들리거나 되팔이꾼들이 공연 직전 줄줄이 취소를 해 막판 공석이 생겼다는 소리가 들리면 더 화가 난다. 좋은 관객이 되고 싶은 사람을 우롱하는 사람들에게도 화가 나고, 애정 넘치는 관객으로 가득 찼을 공연장이 얼마나 즐거웠을지 부러워하게 되는 것도 화가 난다.

  조금 결이 다르게, 누가 같이 가달라고 초대권 내지는 직접 구한 표를 내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왜 나는 그런 지인이 없지-하는 앞뒤없는 질투심이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물질만능주의에 기대어 요원한 미래에 대해 떠든다. 아니 누가 계약금 많이 주면 와준대나. 스스로도 헛웃음을 지으면서.






   다음 주에는 피켓팅에서 겨우 쟁취한 티켓으로 공연을 보러 간다. 그 외에도 봄 내내 갈 공연들을 생각하면 설레고 기분이 좋다. '좋은 관객'이 되라던 감독님과는 연락이 끊긴지 오래지만 언젠가 재회하면 꼭 말하고 싶다.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매년 자발적으로 제 값 치르고 공연 몇 개씩을 보러다녔다고. 정말 즐거웠다고. 그리고 그때 왜 그렇게 저한테 모질게 구셨냐고-_-.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 사는 사람의 몸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