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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Feb 02. 2018

포춘쿠키

<100일 글쓰기> 16/100


  시작이 반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이미 시작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새해에는 조금만 노력하면 완성할 수 있습니다.



  작년 말에 사무실 자리 모니터 윗쪽에 포춘쿠키에서 나온 결과지를 붙여뒀다. 운세라든가 징크스 같은 것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계속 성장해나가고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과, 새해에 완전 잘해버리겠어! 라는 다짐을 하던 시기였으므로, 새해에는 이 타이밍 찰떡 같은 포춘쿠키를 부적 삼아 보자고 붙였던 것이다.

  최근에는 시력교정수술 후 여즉 회복이 안된데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눈 들 틈도 없어 잊고 있던 터였다. 업무를 마무리하고 '자, 불금을 남다른 의미로 불태워보자' 하고 앉아서 이어폰을 꽂고 한참 넋을 놓고 있다 보니 눈에 들어왔다.


  당장 어제 그놈의 시작의 반-을 핑계로 '제 상반기의 절반치가 날아갔습니다...!' 하고 과장되게 한탄을 했더니 포춘쿠키까지 시작이 반이란다. 첫 발 내딛자마자 두 발 뒤로 물러나게 한 건 아니냐고, 누가 그랬냐고 멱살 잡고 짤짤 흔들고 싶은 게 어제의 기분이었다면 오늘은 꼭 손바닥 휘릭 뒤집은 것처럼 하이텐션이다.

  평소 스타일에 맞지 않게 열심히 들이밀어본 것도 있고, 좋은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힘을 받은 것도 있다. 누구는 어제의 한탄 반 다짐 반이 솔직해서 좋았다며 대놓고 라이킷(하트)을 꾹 누르고 응원해줬다. 상황에 대한 감상이 비슷했던 동료들은 우스갯소리도 해가며 조금 더 유쾌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선배이자 업무 파트너로서의 따뜻한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내 좁디 좁은 인간 관계에 비하면, 그야말로 일할 때만큼은 더없이 좋은 환경에서 고마운 동료들과 일하고 있는 것 아닌가.

  낯선 상황은 오늘도 벌어졌고, 현재도 벌어지고 있고, 한동안 더 벌어지겠지만 그럼에도 힘 받은만큼, 그리고 수명 끌어다 쓰는 느낌으로 팍팍 쥐어짜서 노력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어안이 벙벙했던 첫째 날보다 나은 둘째 날이었고, 둘째 날보다 나은 어제였고, 어제보다는 훨씬 좋은 오늘이었다. 회복탄력성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에 대한 방어기재인지 텐션 업이 되면 안 좋았던 것은 금세 잊는다. 연말이 되면, 아니, 며칠만 더 지나도 나는 지금의 적응기에 대해 그저 '나를 키운 아주 귀중한 경험!' 으로 기억할지 모른다. 그러니 매일 조금만 더, 조금씩 더, 완성을 위해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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