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파랑 Feb 06. 2018

피로감

<100일 글쓰기> 20/100


  고인에 대한 상실감과 슬픔, 애타는 마음은 어수선한 빈소에 들어서는 순간 극한 피로감으로 치환됐다.


  제사도 지내야 하고, 접객도 해야한다. 친가는 집안의 대소사 때마다 남성들에게는 권한과 지위가, 여성들에게는 책임과 잡일이 떨어졌다.

  그 권한과 지위를 다 받아먹고 살던 나머지 아들들 덕분에 막내인 우리 아빠는 (할머니 생전과 마찬가지로) 귀찮은 일과 비용 부담을 모두 맡게 되었다.

  제 입에 풀칠하느라 정신이 없는 손자들 덕분에는 나와 내 동생이 모든 나머지 일을 처리하게 되었다. 부의금 함을 지키고 앉아 이름과 얼굴이 매칭되지 않는 집안 어른들에게 조문객을 안내하고, 화환이 들어오면 싸인을 한다. 음식을 준비하는 장례식장 직원이 찾으면 가서 "학생이 뭘 몰라서 그러는데,"로 시작하는 잔소리를 들으며 음식을 추가하고 제대로 들어오는지, 상에 나가는 양이 적절한지, 가족들이 준비한 일회용 물품이 잘 쓰이고 있는지 등을 모니터링한다. 빈 상을 치우고, 어른들이 부르시면 가서 "막내네 첫째입니다." 하고 꾸벅 인사를 한다. 조의금 봉투를 정리해 시트에 기록하고 난입해서 방해하는 친척들을 겨우 막는다. 금세 어지럽혀지는 빈소 신발장을 정리하고, 어른들 잔심부름을 하다 보면 진이 쭉 빠졌다.

  정신없이 일을 하는 중에도 다짜고짜 붙들고 말을 붙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것 같은 멀고 먼 친척 어른들은 "니가 누구냐?" 라고 시작해서 "빨리 결혼해야겄다." 하는 말로 인사를 마무리했다. 할 말은 없고, 아는 척은 해야겠고 하는 어른들의 흔하고 무례한 방식으로 하루에도 열 댓 번은 어색하게 웃어 보이고 말았다.


  색과 무게가 참으로 다채로운 피로감이다. 영정사진 앞에 서서는 수도꼭지를 튼 것마냥 툭 터진 눈물샘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절을 하자마자 급하게 나와서 조문객을 받고 상을 차리다보면 온몸이 삐거덕거렸다. 제때 밥을 먹지 못 하고 깨끗하게 남은 잔반 중 전이라든가 떡을 누가 입에 밀어 넣어주면 뭔지도 모르고 우물우물 씹어삼켰다. 도통 적응되지 않는 음식물 냄새를 종일 맡고 있으니 속에 든 게 시원찮아도 체기가 따랐다. 수저박스를 접고 귤 박스를 뜯고 일회용 접시를 펼치느라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서 보면 손 곳곳이 베여 피가 말라 붙었다. 조문객이 몰리는 퇴근 시간 즈음부터 몇 시간을 앉지도 못 하고 차리고 치우고 버리고 하면서도 술에 거나하게 취해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먼 친척들이 부르면 가서 무릎 꿇고 앉아 꼬박꼬박 대답을 하고 얼른 일어났다. 양 무릎에는 색색의 멍이 들었고 등허리는 전에 없이 뻐근하다. 자고 일어난 아침에는 밤새 누가 몰래 때리고 갔나 싶을 정도로 온몸이 아팠다.

  전쟁같은 몇 시간을 보내고 나서 다시 제사를 지낼 시간이 되고 나이 꽤 먹은 손자들이 나타나면 나는 낄 자리가 없었다. 그들이 절을 올리는 동안 나는 주방 직원들과 음식을 얼마나 추가해야 하나 하는 문제로 입씨름을 해야했다. 나중엔 떡이 부족하다고 집안 어른에게 혼이 나기도 했고. 마지막으로 할머니 얼굴 한 번 보고 싶었던 나는 입관식 자리에도 끼지 못 했다. 빈소 안내를 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내게 휴가가 언제까지 주어졌느냐 집요하게 묻던 친척들을 기억한다. 그 투명한 속내까지도.


  내게 가장 가까운 첫 번째 죽음이었던 외할머니의 장례는 이별에 대한 감상이 짙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피로감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 슬퍼할 권리나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은 이 느낌. 그런 중에 마찬가지로, 아니, 더더욱 부모의 죽음에도 양껏 슬퍼하지도 못하고 모두에게 시달리고 있는 아빠의 등이 안타깝고 슬펐다. 힘들어도 힘들단 말도 못 하고 그나마 말을 들어줄 딸 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아빠, 왜 우리만 일 해요? 왜 아빠가 다 돈 내요?"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불평을 하면 아빠는 약해졌다. 그래서 슬펐다. 몸은 피곤하고 머리로는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분노가 차오르고. 모든 것이 피로하다.

  빈소 한 구석에 앉아 두서없이 핸드폰 키패드를 두드리며 생각했다. 이미 생명력을 잃은 시신이나마, 차가운 관 안에 누워있는 할머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하고. 밖은 이렇게 소란하고 어지러운데, 할머니가 계신 곳은 고요할까. 차라리 모르셔야 덜 속상하실 것 같은데. 조문객 중에는 그래도 호상 아니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이도 있었다. 세상에 좋은 죽음이 어딨나요, 죽음 후에 남는 건 이런 지독하게 차갑고 지리한 갈등과 피로감뿐인데-라고 말하고 싶었다. 피곤하다. 너무 피곤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부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