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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Mar 09. 2018

<100일 글쓰기> 51/100

내 몫이라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타인에게 손을 벌리려 하지 않는 편이다. 심정적인 부분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한편으로는 그게 폐를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밑을 보이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입사 후에 상위자에게 면담 신청을 한 일이 한 번도 없다. 신입 때야 주기적으로 내가 잘 적응하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면담을 진행하는 리더가 있었지만, 그 후로는 평가나 조직 이슈 관련해서 면담을 진행할 때 빼고는 면담 경험 자체가 거의 없다.

동료들이나 사수에게도 마찬가지다. 잘 안 풀리는 이슈가 있어도 혼자 붙들고 골을 썩힌다. 어쨌든 내게 주어진 미션이라는 생각이 크다. 실마리가 필요할 때 내가 고민 중인 솔루션을 먼저 내놓아야만 그것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결해주세요.' 보다는 '이런 문제가 있고 A로 시도해봤는데 잘 안됐어요. B로 시도하면 잘 될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쪽의 접근을 하는 게 마음 편하다. 정보의 비대칭이 심한 상태에서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까지 상대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 외에 먼저 청한 것이 아닌 상황에라도 도움을 받은 것 같으면 어쨌든 빚을 졌다는 생각을 한다.

이 일련의 것들은 사수들의 업무, 교육 스타일에 의해 체화된 것일지도 모른다. 맹수가 제 새끼를 낭떠러지에 떨어트려 놓고 생존력을 시험하는 것처럼 어떻게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다소 터프한 방식이라도 나로서는 스스로의 성향이나 가치관에 맞아 떨어지는 편이라 금세 적응했던 것 같다. 애초에 남한테 손 벌리는 걸 기피하는 사람이니.

뭔가 잘 안 풀리는 이슈가 생겼을 때, 혹은 현재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스스럼없이 다른 동료나 리더에게 면담 신청을 하고 문제 상황에 대해 털어놓고 왔다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나는 왜 그렇게 안 하지, 하는 생각도 든다. 스스로가 '빚'이라고 느끼고 독립심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까봐 걱정이 되서 그런 건 맞는데, 조금 편해질 수는 없는 걸까 싶기도 하다. 업무에 대해서도 최소한 심리적인 부담감이라도 좀 떨치려는 목적으로 수다를 떨 수도 있는 건데 왜 나는 그게 누가 껍질을 까내지 않고서야 내보이는 걸 꺼려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왜곡된 방어기재인 듯도 하다. 내 누추한 면을 내놨을 때 그게 칼날이 되어 돌아왔던 경험들에 대한.

나는 참 빡빡한 사람이다. 조금 더 편해지고 싶다. 스스로도, 타인에게 느껴지기에도. 이 모난 시선을 타인에게 씌우지나 않으면 다행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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