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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Oct 03. 2022

죽음을 약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죽음을 약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는 게 징그러워서요.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넷이나 있어요. 빌어먹을 세상에서 깔끔하게 죽으려고요. 디데이도 있어요. 딱 40살까지만 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친구는 그걸 카카오톡에 걸어놨더라고요. 웃긴 녀석. 태어난 날은 달라도 12월 31일 한 날 한시에 눈감고 죽는다면 덜 억울할 거 같아서요.


​기억이 나지 않는 언젠가부터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거지 같은 일들을 반복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고. 그렇게 이어오던 20대의 약속은 30대가 되어도 반복하고 있습니다. 더 강력하게 외치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아이고. 여기까지 살아낸 것도 너무 다행입니다. 이들이 없었다면 제 한 숨은 누가 받아줬을까요. 저는 이미 옛날에 땅으로 꺼지던가, 하늘로 뜨던가 둘 중에 하나 했을 겁니다. 막막한 현재를 채우지도 못하는데 노후까지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힙니다. 내 평생이 몇 살까지 이어질지 모르겠고 지금 같은 미래라면.... 그건 너무 무서운 일이라고요. 혀를 콱! 물고 죽어버리는 흉내를 곧잘 내지만... 혀를 깨물고 죽을 정도면 징그럽게 독한 사람이잖아요? 저는 그렇게 모질고 독한 사람은 아니라서요. 아픈 건 질색이고 꾸역꾸역 살아가는 한계치는 매번 갱신되고 있어서 일단은 미래를 모르는 척하기로 했어요.


​죽고 싶다는 말은 자주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어서 힘들다.'의 줄임말로 쓰이죠. 드물게 찾아온 행복하고 평온한 시간을 보내기 싫어서 '불행하기 싫으니까 여기서 멈추고 싶어.'라는 말을 대신하기도 하고요. 고등 종교들은 이런 인생의 고통 같은 건 다 감내하고 내세나 다른 차원에서 행복해질 수 있도록 기도하며 넘기는데. 저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그런 높은 분들이 하는 말 같은 건 잘 안 들리네요. 이번 생에서 즐거워지고 행복해지고 싶어서 돈을 주고 미래를 묻고 점치고 이름을 바꾸곤 합니다. 열등한 짓일까요? 그럼 도대체 뭘 어쩔 수 있나요. 지금이 제가 살고 있는 최선이니까 더 열심히 살라고 하지 마세요. 그리고 40살까지 산다는 거 진심인지 거짓인지 물어보지 마세요. 가봐야 알 것 같으니까요. 지금은 왜 그런 약속을 했는지가 중요한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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