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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윤 Oct 11. 2017

레즈비언 커플의 종교 갈등

괜찮은 교회는 어디있을까

안녕하세요 대한민국에 사는 30대 레즈비언 파랑입니다.

제가 며칠 전에 영화 연애담을 다시 보다가 모태신앙이란 단어를 듣고 얘기하고 싶은 게 생겼어요.
영화에서 지수가 밥 먹기 전에 기도를 하는 모습이 나와요. 그 모습을 본 윤주가 "교회 다니는구나." 라고 물어보고 지수는 "모태신앙이야."라고 대답을 해요.

그 장면처럼 저희 커플도 처음 밥 먹을 때 똑같이 저런 대화를 했었어요. 모태신앙인 애인은 매일 식사 전에, 그리고 잠자리 들기 전에 기도를 해요. 애인의 아버지는 개신교, 어머니는 천주교 이시고 애인은 모태 신앙이에요. 애인은 천주교 세례를 받진 않았지만 하느님은 개신교나 천주교나 본질적으론 같다 라고 생각하는 입장인 거 같아요.


그런 애인과 달리 저는 무교이고, 제 부모님의 종교는 불교예요. 아빠는 특히 기독교에 부정적이었어요. 교회 다니는 지인을 묘사할 때 예수쟁이라던가 샌님 등등 비하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어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저도 기독교에 긍정적이진 않았어요.


그런데도 어쩌다 보니 저는 중학교는 기독교 학교, 고등학교는 천주교 학교를 다니게 되었어요. 학교 종교 시간에 교리를 배우고 예배를 드려야 했기 때문에 거부감이 더 커지긴 했지만 기독교나 천주교가 마냥 낯선 종교는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친구를 따라서 '나도 종교 좀 가져볼까' 하고 세례를 받았었는데 종교는 그런 취미생활 하나 늘려볼까 하는 마음으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천주교 학교에서는 수녀님이 수업도 하셨어요. 어느 날 수업시간에 젊은 수녀님이 자기의 꿈은 신부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이 나요. 근데 아직까지 가톨릭교에서 여자 신부는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종교 내의 차별과 불평등을 알게 되었어요.

그날 이후에 '종교는 착한 걸까? 믿을만할 걸까?'라는 의심이 더 커졌던 거 같아요.


저희 둘이 자라온 환경이 이렇게 다르다 보니까 종교문제로 다툴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신앙심, 숭배 그런 것들에 대해서 머리로도 이해를 못하고 당연히 마음으로도 공감을 못했던 거 같아요.

저희가 조금 다툰 일화 몇 가지를 얘기해 볼게요.
애인은 자기 전에 누워서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해요. 기도가 끝나고 제가 애인한테 물어봐요.

"무슨 기도해?"

그럼 애인이 "파랑이랑 이렇게 사랑하고 행복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를 한다더라고요. 저는 처음에 그 말을 듣고 조금 놀랬어요.  

'내가 애인을 사랑하고, 내가 애인에게 노력하고, 내가 잘해주는데 왜 애인은 나한테 감사한 게 아니라 신한테 감사하다고 할까.'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또 다른 에피소드를 말해보면, 제가 언젠가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고 애인에게 말했어요.


"보름달이 떴길래 좋은 소식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라고 그랬더니 애인이 달은 그냥 돌멩이인데 돌한테 왜 기도를 하냐는 거예요.
애인을 위해서 한 기도였는데 그런 반응을 보이니 서운하기도 하고 화도 나서 "아니 돌멩이는 보이기라도 하지, 너는 그럼 보이지도 않는 신한테 기도하는 거 아니냐"면서  크게 싸웠었죠.


그리고 또 한 번 종교로  크게 싸운 적이 있었는데, 자세히 말하기는 그렇고 어쨌든 그땐 정말로 제가 잘못했어요. 저는 무신론자라는 이유로 우월감을 느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애인과 종교에 관해 대화할 때면 쉽게 비꼬고, 비판하는 것에서 통쾌함도 느꼈어요.


"이건 어떻게 증명할래? 이게 말이 돼? 종교 내에서 혐오와 차별은? 그래도 종교가 숭배할만한 가치가 있어?" 이런 생각 들을 거침없이 드러냈어요. 나는 옳고, 너는 틀렸어라는 생각이 확고했었어요.

태어났을 때부터 종교와 함께 자라온 애인한테, 종교를 비판하고 부정하고 비꼬는 게 옳았을까요?

사소한 의견이라도 상대가 내 의견을 부정하고 비꼬고 타박하면 당연히 기분이 나쁘잖아요. 저는 왜 그렇게 쉽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 통쾌함까지 느꼈을까요?


애인과 싸우기도 하고 얘기도 나눠보고 하니까 애인의 종교뿐만 아니라 신앙심에 대해서 알고 싶어 졌어요. 그전까지는 항상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해서 무조건 거부했던거 같아요.

그러던 중에 [무신론자들을 위한 종교]라는 책을 발견했어요. 초반의 글을 조금 읽어볼게요.  



우리가 어떤 종교를 향해서 던질 수 있는 질문들 중에서 가장 따분하고 비생산적인 것은 과연 그 종교가 '진실한 것이냐 아니냐' 하는 질문이다.

(...)

우리가 종교에 굴복할 수밖에 없거나 그렇지 않으면 종교를 모독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생각을 일단 버리고 나면, 우리는 종교라는 것이 갖가지 정교한 개념들의 저장고임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책의 내용이 저에게는 설득력이 있었고,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어요. 그렇다고 신앙심이 생기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요.


그 후로 애인과 근처 교회에 함께 나가고, 애인이 자기 전 기도할 때 저도 함께 기도를 하고 있어요.


애인과 그런 것들을 함께 하면서 좋은 점은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는 것, 교회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것, 그리고 애인의  찬송가 부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에요.


요즘엔 자기 전에 애인이 제 손을 가져가서 함께 기도를 해요. 그럴 땐 저도 눈을 감고 '감사합니다.'라고 하게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왜, 누구에게,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 거야?라는 괜한 반발심이 있었어요.


근데 침대에 누워 내 손을 잡고 있는 애인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고 속으로 읊조리고 나면 평범한 일상일 뿐인데도 그때만큼은 특별하게 느껴지고 뭉클해지는 거 같더라고요.

밥이 맛있어도 애인한테 고맙고, 날씨가 좋은 날 옆에 함께 있어주면 고맙고 함께 술 한잔 하는 것도 고맙고 그렇더라고요.


여기까지는 좋았던 점이고 교회 함께 다니면서 싫은 점도 당연히 있었죠.

그중 첫 번째는 목사의 설교가 너무 형편없다는 것이었어요. 집 근처에 있던 교회 세 곳을 가봤었는데 모두 설교가 지루하고 권위적이고 보수적에다가 여성 혐오발언도 심했어요.


피 같은 일요일 오전을 그런 설교를 들어가며 버리기엔 너무 아까웠어요.

신자들은 목사님의 설교를 가려가면서 듣고 좋은 설교가 있는 교회를 다녀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회 사람들은 설교의 내용보다는 그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를 더 중요시하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요.


그런 단점 때문에 한동안 교회를 나가지 않다가 이사를 하고 근처 교회를 찾아간 적이 있었어요. 예배당에 들어가기도 전에 동성애 반대 서명서가 보였어요. 미련 없이 서둘러 나왔죠. 요즘 대부분의 교회들이 동성애를 마녀사냥처럼 사냥타깃으로 삼은 것 같았어요.


요 근래 주말에 본가에 내려갔는데 역전 광장에서 동성애 반대 축제를 하고 있는 것을 봤어요. 교회에서 대거 동원한 것처럼 보이는 노인들이 동성애 반대 피켓을 흔들고 있더라고요. 친구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그 축제에 참가하라고 팜플랫도 나눠줬다면서 친구가 저에게 사진을 보내주기도 했었어요.


교회에서 신을 찾는 사람을 내쫓는 건 누구일까? 한국 기독교가 스스로 해봐야 할 질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애인에게 이런 질문한 적이 있었어요.

"기독교 신자이고, 레즈비언인데 그것에 대해  혹시 죄책감이나 그런 거 가진 적 있어?"라고 물어봤고 애인은 이렇게 대답해 주었어요.


"하나님은 항상 나를 돌봐주시고, 그걸 의심해 본 적이 없어. 우리가 행복하다면 이 행복을 누리면 되는 거지.

이걸 의심하고 죄책감을 가질 필욘 없는 거 같아.

혐오 세력 광신도들은 한 번도 퀴어들을 위해 기도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일 거야. 기도해봤다면  우리 또한 하나님의 자식인걸 알았을 테고,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응답을 받았을 텐데.."

라고 말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대답을 하는 애인이 좋았어요. 자신의 믿음에 확신이 있고, 그만큼 자신의 정체성 또한 인정하고 있다고 느껴졌어요.


믿음이라는 거 참 신기한 거 같아요. 어떻게 믿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행복의 지원군이 되어주고 누군가에게는 증오의 원동력이 되는 거 보면요.


이번화를 준비하면서 종교에 관해서 얘기해도 되는 걸까 걱정이 많이 들었어요. 저희 커플이 종교 때문에 트러블이 있었던 것처럼 종교는 아주 민감한 문제잖아요.


쉽게 말할 수 없는 주제 인걸 알았지만, 무교인 제가 개신교 애인과 사귀면서 겪은 갈등이랑 느낀 점, 저의 변화 등을 얘기해 보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하고요. 괜찮으셨다면 구독도 해주시고 하트도 눌러주세요

더운데 건강 조심하시고요 식사도 잘 챙겨 드세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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