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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윤 Oct 17. 2017

애인이 달리기를 싫어하는 이유

영화 옥자를 보다가

안녕하세요. 대한민국에 사는 30대 레즈비언 파랑입니다.


오늘은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보고 애인이랑 나눴던 얘기 중 하나에 대해서 풀어보려고 해요.

스포일러는 없으니까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도 걱정 없이 들으셔도 될 것 같아요.


영화 옥자의 내용은 "미자의 옥자 구출기"이지만 오늘은 영화 줄거리랑은 거리가 먼 미자의 달리기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요.


영화 속에서 미자는 잡혀간 옥자를 구출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장면이 자주 나와요. 미자가 달리기 하는 장면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있던 애인이 이런 말을 했어요.

"미자 진짜 잘 뛴다. 2차 성징이 아직 오기 전이겠지? 나는 가슴이 나온 후로 저렇게 전력 질주해서 뛰어본 적이 없어."

라고 하더라고요.


애인은 초등학교 5,6학년 때 가슴이 자라기 시작해서 중학교성장이 끝났고 그때부터 뛰거나 격렬한 운동을 하면 가슴이 흔들려서 불편하고 통증이 느껴져 이후로는 체육시간이 싫었다고 했어요.

그런 애인은 지금도 딱 맞는 스포츠 브라가 없으면 달리기, 줄넘기, 스노보드 같은 격렬한 운동을 하지 않아요.


애인 얘기를 듣고 중고등 때 체육 시간을 떠올려봤어요. 체육 시간을 좋아하는 애들 빼고는 운동을 싫어하고,100m 달리기 할 때도 제대로 안 뛰는 애들도 많았거든요. 그러면 선생님이 '엉덩이가 무겁다, 게으르다, 움직여라. 그러니까 살찌지.' 이렇게 구박을 했던 기억이 나요.


'여자는 운동을 싫어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근데 좀 바꿔 생각해보면 우리는 여자의 운동, 여자의 신체에 관심 없는 사회에서 사는 것 같아요.


여성이 달리기 하거나 점프를 할 때 공이 튀듯이 가슴이 움직이는데, 그때 가슴은 원래의 자리에서 8.5㎝ 정도를 움직인대요. 그런 움직임은 가슴을 받치고 있는 인대를 늘어나게 하거나 어깨 통증을 만들기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생리 중엔, PMS 때문에 운동을 하기 싫거나, 심할 경우에는 운동을 못할 수도 있어요. 운동 중에 피부가 생리대에 쓸려 헐거나, 땀 때문에 냄새가 심하게 나기도 해요.


저는 학교 다니면서 여성이 운동을 할 때 신체변화는 어떻고, 어떤 준비가 필요하다는 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가슴이 흔들리는 것을 줄이기 위해 스포츠 브래지어가 필요하고  운동 시엔 생리대보다는 탐폰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것에 대한 교육은 말할 것도 없이 못 들어 봤죠.


학교에서는 이미 육체적으로 성인이 된 여자 학생들의 가슴뿐만 아니라 생리도 모른척해요. 여성 신체에 대한 고민도, 교육도 없이 학생들을 운동장에 집합시키고 억지로 운동을 시켜요.

그런 준비도 없이 운동을 강요했을 때. 몇몇 혹은 대부분 학생들에겐 운동은 불쾌하고 불편한 활동으로 기억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성 기준으로  짜인 체육 시간은 여성들에게 운동을 포기하게 하고, 피하 게하는 경험을 가르치는 게 아닐까요.


 어떤 기사에서  '여학생들의 체육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가 무슨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노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여학생들의 참여도가 낮았다.'라는 글을 봤어요. 체육활동 참여를 위해 학생들이 달리기를 할 때 가슴이 흔들려서 불편하고 통증을 느끼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해봤을까요? 생리 중인 학생들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종목이나 아니면 대체활동들에 대해서 고민해봤을까요?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도 여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 같아요.


미디어에서 보면 여성의 신체, 특히 가슴을 성적 대상화해서 볼륨에 집착하는 내용이 많잖아요. 여성의 가슴이 크면 매력적이고 작으면 부끄러운 것으로 여성의 신체를 평가하고 있어요. 예전에 개콘에서는 개그 우먼의 작은 가슴이 개그의 소재가 되기도 했었고요.


구글에서 '여자 가슴 관리'로 검색을 해보면 가슴을 키우는 방법에 관한 내용뿐이에요. 가슴 땀띠, 습진, 통증 예방이나, 관리에 관한 내용은 따로 그런 단어를 조합해야만 찾을 수 있어요. 건강, 질병 예방, 운동법에 관한 정보는 가슴 크기 관련 정보랑 비교하면 한없이 적어요.


생리도 마찬가지예요. 생리대를 사면 생리대를 가릴 수 있는 검정 봉지에 담아주고, 회사나 집 밖에서 화장실에 갈 땐 생리대를 그대로 손에 들고 가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생리대를 파우치에 넣어서 가지고 다니지만 남자 사원만 있는 작은 사무실이라면 파우치를 들고 가는 것도 조심스러워요.


탐폰과 생리 컵의 정보는 엄마도 모르고, 학교도 몰라요. 인터넷으로 검색해야 찾아볼 수 있어요.


생각해보면 이렇게 여성의 신체에 대한 고민이나 정보가 너무 부족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이 단체운동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별로 없어요.


저는 초등학교 때 남자애들 틈에 껴서 축구를 했었고, 여중에서는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점심시간마다 축구하고 뛰어놀았지만 고등학교, 대학교부터는 일 년에 한 번 있는 체육대회 날 빼고는 단체운동할 일이 아예 없었어요.


대학교 학부 체육대회 때 여자들은 발야구라는 한 종목만 참여했고, 축구, 농구, 족구 등등 대부분이 남자들 위주로 진행되었어요.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탁구대회를 했었는데 남자부만 있었고 여자 직원들은 참가할 수 없었어요. 또 부서 워크숍에서 팀별로 축구경기를 했을 때도 남자 직원들만 참가할 수 있었어요. 부서에 여자 직원이 총 10명 정도밖에 안되긴 했지만, 여자 직원들을 위한 체육 프로그램은 없었어요.


당연히 가슴발달이나, 생리랑 관계없이 운동을 싫어하는 여자들이 있을 테고, 운동을 쉽게 접할 수 있으면서도 운동을 싫어하는 남자들이 있을 거예요.


운동을 하고 하지 않고는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취향일 수 있겠지만, 개인의 취향 치고는 활동할 기회가 너무 차이 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레 생보 들으시는 분들은 무슨 운동 하시나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지금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하고요 괜찮으셨다면 하트랑 구독도 눌러주세요.


더운데 잠 푹 주무시고 입맛 없으셔도 식사 꼭 챙겨 드세요.

레 생보의 파랑이었습니다. 안녕.





레즈비언 생활 보고서 ; 레생보는 팟캐스트와 인스타도 하고 있어요.

팟빵 http://m.podbbang.com/ch/14488
인스https://www.instagram.com/lesre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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