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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윤 Oct 25. 2017

미드 엘워드에서 배운 게이다

안녕하세요 대한민국에 사는 30대 레즈비언 파랑입니다.


혹시 엘워드가 다시 시작한다는 소식 들으셨나요? 대박!!


저는 스무 살부터 본격적으로 동성애자, 레즈비언 용어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레즈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영화나 드라마 등 레즈비언 콘텐츠를 열심히 찾아봤어요. 저에게 레즈비언의 삶은 현실에서는 누릴 수 없는 가상의 삶과 비슷했어요. 인터넷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내 정체성, 인터넷에서만 만날 수 있는 레즈비언들.. 딱 거기까지 였어요.


그러다가 엘워드라는 미국 드라마를 알게 됐어요.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레즈비언으로 살지 못하는 나는 가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고 이 세상 어딘가에는 엘워드처럼 살고 있는 진짜 레즈비언들이 존재하고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그래서 드라마에 더 몰입하게 되었고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면서 나도 티.벳 커플처럼 살고 싶다고 꿈꿔왔어요.


당당한 레즈비언으로 사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대리만족도 하고 희망을 품었던 드라마라서 그런지 엘워드가 다시 시작한다는 소식에 가슴이 뛰더라고요.

 

저는 엘워드에서 '게이다'라는 단어를 처음 배웠어요.

게이끼리는 서로 알아보는 촉이 있다고 하잖아요. 혹시 게이다 갖고 계신가요?? 저는 티 나는 분들밖에 모르겠더라고요. 엘워드 멤버 중에 티 나는 사람을 찾는다면 아마 쉐인 이겠죠?


요즘엔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말을 쓰던데, 부치 패션의 스테레오 타입은 뭘까요?


머리가 짧다. 항상 바지를 입는다. 색조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다. 네일아트를 하지 않는다. 블라우스보다는 남방, 걸음걸이가 털털하다. 목소리 톤이 낮다. 슬랙스에 로퍼를 신는다. 간지 난다? 등등

그래서 길가다 그런 스타일의 분을 마주치게 되면 저는 속으로 '혹시 부치?' 이렇게 생각하며 지나가곤 해요.

'부치'라는 단어를 모르는 비 퀴어들은 '남자 같은 여자'라고 얘기하겠죠?


사회에서 강요하는 여성스러움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남자 같다'라는 수식어가 붙는 거 자체가 맘에 들지 않고, 어쩔 때는 그런 말들이 공격적으로 느껴져요. 여자와 남자, 이 두 가지 성별로 반을 가르고 성별에 따라서 외모와 태도까지 억압하는, '남자 같은' 또는 '여자 같은'의 수식어가 당연한 사회라는 게 답답하고 속상하죠.


요즘 미디어에선 머리를 짧게 자른 여자배우한테 '걸 크러쉬'라는 말을 쓰기도 하잖아요. 레즈비언 문화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 '워맨스, 걸 크러쉬'가 아니라 레즈비언 로맨스, 여심을 사로잡는 부치 패션. 이런 말이 쓰이려나요.


 보면 레즈비언 느낌은 다 내면서 모르는 척하는 콘셉트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그래 놓고 레즈비언은 절대 아니라고, 레즈비언이면 큰일이라도 나는 거 마냥 강하게 부정하는 거 보면 웃긴 거 같아요.


다시 게이다 얘기로 돌아가서, 제가 게이다를 잘못 돌려서 생겼던 일화를 얘기해 볼게요.


학교 다닐 때 과대 오빠한테 게이다가 돌아서 좀 친한 척을 했었어요. 몇 번 같이 밥 먹고 술 먹고 놀고 그러다 다 같이 포켓볼을 치러 갔어요. 근데 자꾸 제 옆으로 와서 가르쳐준다면서 뒤에서 안고 제 손을 잡고 그러더라고요. '아 이 사람 게이 아녔네.. 에씨. 내가 착각했네' 하고 다시 멀어진 일이 있었어요.

나중에 들어보니까 제가 자꾸 친한 척하니까 자기한테 관심 있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어렸을 때라 사람 보는 눈이 없기도 했을 테지만 저는 왜 그 오빠를 게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그 오빠는 향수를 뿌리고 다녀서 항상 좋은 냄새가 났고, 말투와 행동이 항상 심스러웠고, 자기가 술을 잘 못 마시니 후배한테 억지로 먹이는 꼰대도 아니었고, 술자리에서 실실거리면서 성희롱적인 농담도 하지 않았고, 왁왁 거리고 냄새나는 예비역들이랑은 많이 달랐던 거 같아요.


저의 머릿속 '일반 남자'의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난 사람을 보니 저 사람은 게이인가 싶었던 거예요.

단지 '남자다움'에서 멀어 보였고, 그래서 이성애자가 아닐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친해지면 좋다는 생각까지 했었어요. 정말 빗나갔지만요.


저도 사회에서 말하는 '남자다움'이라는 고정관념과 '남자들은 다 그래.'라는 편견이 있었던 거죠.

제가 그 오빠한테 '나 너 게이인 줄 알았다.'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말했다면 분명 기분 나빠했겠죠?

우리 사회에서 '게이 같다, 레즈 같다'라는 말은 여전히 욕으로 쓰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그 오빠를 '게이'라고 오해했던 것은 그 사람의 장점 때문이었잖아요.

 '레즈? 게이?'라는 말이 언제까지 비하 의도로 쓰여야 할까요? 누군가한테 게이다가 돈다는 건 그 사람이 판에 박힌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기 개성을 살릴 줄 알고, 그런 사람들은 당연 매력적이잖아요.


레즈, 게이 같다는 말이 욕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개성을, 매력을 칭찬하는 말로 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의 이런 생각 또한 하나의 고정관념일 뿐일 수도 있겠지만요.


지금 까지 말한 게이다는 꼭 게이가 아니어도 알 수 있는 성별 고정관념의 기준으로 판별하는 게이다였어요.당연히 모든 레즈, 게이들이 그런 스테레오 타입에 부합하지 아요.


분명.. 레즈비언들 사이에서 눈빛으로 촉이 오는 그런 게이다가 있긴 있는 거 같아요.


그럼 오늘도 급하게 마무리를 해야겠어요. 지금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식사 잘 챙겨 드시고 잠도 푹 주무시고 주말 재미나게 보내세요. 안녕.



레즈비언 생활 보고서 | 레생보는 팟캐스트와 인스타도 하고 있어요.

팟빵  http://m.podbbang.com/ch/14488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lesreports
이메일  lesre4t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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