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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윤 Dec 23. 2017

부모님의 퀴어적 성향을 발견한 적 있나요

앨리슨 벡델 [펀홈 fun home : 가족 희비극]

안녕하세요 대한민국에 사는 30대 레즈비언 파랑입니다.


  오늘은 미국의 레즈비언 만화가인 앨리슨 벡델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해요. 앨리슨 벡델은 [펀홈 fun home : 가족 희비극]이라는 제목의 만화책의 저자예요.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에 '재미난 집'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절판되었고, 2017년에 움직씨 출판사에서 영어 제목을 그대로 살린 '펀 홈'으로 재출간을 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찾아보셔도 좋을 거 같아요.

저는 인터넷으로 펀홈을 주문해놓고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어서 우선 도서관에서 '재미난 집'을 빌려다 읽었어요.


  펀홈은 작가가 성장하면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와 함께, 무언가 남들과 달랐던 자신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잘 엮여 있어요. 한마디로 게이 아버지와 레즈비언 딸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어요. 이야기 속에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등등 여러 고전문학들이 등장해요. 저는 고전과 친하게 지내본 적이 읽기 어려웠던 거 같아요. 문학수업을 듣고 주위 사람들과 그 문학에 대해서 토론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엄청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학창 시절에 그런 경험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모습이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제일 좋았던 장면을 하나 얘기해 보자면, 벡델(작가)과 아버지가 단둘이 영화를 보러 가는 차 안에서 서로의 정체성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어요.

아버지와 딸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눈 성 정체성에 관한 대화였어요. 자신이 레즈비언인걸 알았냐고 묻는 딸에게 아버지는 "너는 어딘지 나와 같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대답을 해줘요. 그러고 나서 아버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길지 않은 짧은 대화로 끝나요.


  저는 그 부분을 읽으면서 아버지와 딸이 짧게나마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았고, 그 둘의 비밀에 교차점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좋았지만 특히 아버지의 "너는 어딘지 나와 같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이 말이 맘에 들었어요.


  꼭 성 정체성만이 아니라 제가 엄마나 아빠를 보면서 그들의 성격, 성향이  '나와 비슷하구나, 내가 부모님을 닮긴 닮았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어렸을 때는 반항심이 커서 '엄마 아빠는 도대체 왜 그럴까?'라는 생각이 더 컸다면 요즘은 좀 달라졌어요.  '나 다 운 것이 뭘까?' 했을 때 떠오르는 것들, 성격, 외모 등등이 있잖아요. 그것들을 부모님의 모습에서 찾아봤더니 나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요소가 보이더라고요.


나다운 것, 내가 좋아하는 남들과 다른 나의 어떤 부분이 그냥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부모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은 새로울 게 없지만, 확인하고 나니까 기분이 묘했어요.


책을 보고 난 후 떠오른 또 다른 질문은 '부모님은 항상 이상적인 이성애자 같았나?'라는 거예요.

  이상적인 이성애자라니 말이 좀 웃기긴 하지만 혹시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재미로 던진 질문인지만 만약 혹시라도 엄마나 아빠가 디나이얼 게이나 크로 짓 게이는 아녔으면 좋겠어요. 동성애자임을 부정하고, 남을 속이면서 이성애 결혼을 유지하는 것은 행복할 수가 없으니까요. 자신뿐만 아니라 그 배우자까지요.



작가 앨리슨 벡델의 얘기를 더 해보자면 벡델 테스트의 창시자라고도 알려져 있어요.

벡델 테스트는 영화들이 최소한의 ‘젠더 개념’을 반영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아주 낮은 기준으로 만들어진 질문이에요. 언뜻 보면 너무 쉬운 기준처럼 보이지만 통과하는 영화들이 많지 않아요. 벡델 테스트는 쉽고 짧고 간결한 세 문장뿐이에요.

첫째, 영화 속에서 이름을 가진 여자가 두 명 이상 나올 것

둘째, 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

셋째, 대화 내용에 남자와 관련된 것이 아닌 다른 내용이 있을 것

좋아하는 영화들이 벡델 테스트를 통과 하나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을 거 같아요.


벡델 테스트를 보고 재미 삼아 저도 테스트 하나를 만들어봤어요. 읽어볼 테니 들어봐 주세요.

첫째, 내가 친구의 지인 이름을 두 명 이상 알고 있나?

둘째, 그 지인들을 칭찬하는 말을 한번 이상 들어 본 적이 있나

셋째, 친구와의 대화중에 남자와 일에 대한 얘기 말고 나눌 이야깃거리가 있나.


제가 어떤 친구에게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지도 알 수 있는 것 같고, 그 친구와의 대화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도 체크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맨날 톡 하던 친구의 지인의 이름을 알았던가? 싶기도 하고, 나는 친구들에게 험담 말고 내가 좋아하는 다른 친구 얘기를 한 적이 있었던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할게요. 이번 방송 괜찮으셨다면 구독! 하트 눌러주세요.


선선해진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고, 식사 맛있게 하시고, 주말 재미나게 보내세요.

안녕.



레즈비언 생활 보고서 | 레 생보는 팟캐스트와 인스타도 하고 있어요.

팟빵  http://m.podbbang.com/ch/14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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