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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윤 Dec 27. 2017

엄마는 왜 자위를 자위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페미니즘과 성교육

안녕하세요 대한민국에 사는 30대 레즈비언 파랑입니다.

며칠 전에 한 기사를 봤어요.


아이의 부모님이 '겨울왕국'의 광팬이고 엘사 공주처럼 드레스를 입길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디즈니랜드의 '공주체험'을 예약했다는 내용이었어요.


하지만 디즈니 랜드 측에서 "남자아이를 위해 '공주체험'을 예약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만약 남자아이가 드레스를 입게 된다면 끔찍하고 심각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예약을 거부했다는 거예요.


실망한 아이의 부모가 곧 자신의 블로그에 반박하는 글을 올리며 항의했고. 또 디즈니랜드에 공개 서신을 보내 예약거부 사유로 제시한 '끔찍하고, 심각한 일'이 무엇인지 문의했다고 해요.

그렇게 해서 논란이 커지고 나니까 디즈니 랜드에서 공식 사과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기사를 읽고 왜 남자아이는 공주체험을 할 수 없지?라는 황당함보다 엘사에 빠진 아들을 위해 공주체험을 선물해 줘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모님은 어떤 부모님일까? 감탄이 나왔어요. 너무 부러운 거 있죠.


우리나라였으면 어땠을까요?

아들에게 공주 체험이라니 말도 안 되고, 남자가 치마를 입으면 고추 떨어진다고 놀라 자빠졌겠죠.


그래도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우리나라 부모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때와는 좀 다르려나?라는 궁금증이 생겨 인스타그램에 남자답게, 여자답게 로 검색을 하고 아이들 사진위주로 부모들이 어떻게 글을 썼나 살펴봤어요.


남자답게라는 태그 옆에 이어진 단어들은 '남자답게 씩씩하게 자라자.' '남자답게 활발하고 멋지게 커라.' '남자답게 총, 자동차를 좋아하는구나.' '까불어도 된다 남자답게 커라.' '남자답게 든든하게 자라라.'였어요.


여자답게는 어땠을까요?

'여자답게 조신하게 놀자. 여자답게 이쁘게 좀 놀자.''여자답게 아기자기한 걸로 놀아라.'

'운동선수시킬 거 아니다 여자답게 놀자.''아들 같은 딸아 여자답게 놀자.''오빠 따라 하지 마 여자답게 놀아라.''힘이 장사네, 너는 여자다 여자답게 크자.''말썽 부리지 말고 여자답게 조신하게 놀아라. ' 였어요.

차이가 보이지 않나요?


이런 말을 초등학생 정도 아이들도 아닌 그보다 훨씬 어린, 이제 목을 가누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하는 아기에게도 하는 걸 보니까 너무 끔찍하더라고요.


'남자답게'는 아이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말이고 '여자답게'는 아이의 행동을 제약하는 말로 쓰인 거 같다는 건 제 착각일까요?


겁먹은 아들에게는 '남자답게 한번 해봐.'라고 말하면서

활발한 딸에게는 '여자답게 얌전히 조신하게 놀아라.'라고 말하는 부모님들.

과연 그런 부모님들이 일부이고, 소수일까요?


정말 남자는 태생적으로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태어나고, 여자는 얌전하고 소극적 성격으로 태어날까요? 정말 타고난 걸까요?

우리는 사회 분위기, 문화 속에서 어떤 틀에 맞도록 키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에 학원에 다니면서 초등학생들하고 자주 만나던 때가 있었어요.


한 학년에 대여섯 명 정도밖에 안되어서 그 아이들만 보고 요즘은 이렇더라 라고 단정 지을 순 없겠지만 한번 얘기해 볼게요.


4학년에 귀여운 남자아이가 있었어요.

말투가 다정하고, 웃을 때도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웃고, 여자애들끼리 걸그룹 춤 연습을 할 때 꼭 함께 하더라고요.

그런 걸 지켜보던 다른 남자아이가 '선생님 쟤는 꿈이 여자가 되는 거래요.' 라면서 자꾸 놀렸어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다른 아이들은 깔깔거리고 웃었고요.


저는 그때 좀 당황스러웠다고 해야 하나. 그냥 웃고 넘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아이들에게 성 정체성 이런 것들에 대해 말해 주는 게 맞는 건가? 싶었어요.


"그게 뭐가 이상한가? 요즘엔 수술하면 성별을 바꿀 수 있어. 그런 연예인들도 있잖아." 그냥 그 정도로 얘기했더니.

그 귀여운 남자아이가 선생님 저는 긴 머리가 좋아서 여자가 되고 싶었던 거예요. 이러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아이들 중에 쇼트커트를 한 여자 아이도, 머리긴 남자아이도 없었어요.


다른 경우도 많았는데 더 이야기해보자면.


3학년 어떤 남자애가 여자애를 놀리고 도망가다가 여자애한테 붙잡혀서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했나 봐요. 사과를 하면서 덧붙이는 말이.

"너는 여자애가 왜 내 사과를 받아주지도 않아." 이러더라고요. 그 조그마한 남자아이 생각 속엔 이미 여자는 나의 요구를 받아줘야 하는 존재라고 자리 잡힌 것 같았어요.


4학년 여자애 중에 좀 조숙한 애가 있었는데, "선생님 저 다이어트해야 해요. 여자는 조금만 살쪄도 뚱뚱해 보여서 안돼요. 선생님 허벅지 봐요. 선생님도 다이어트해야 해요." 이런 적도 있었고.


5학년 여자애들이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친구랑 둘이 살아요? 그럼 레즈예요?" 물어보는 거예요.

제가 대답할 겨를도 없이 옆에 있던 다른 애가 "여자 둘이 산다고 다 레즈냐?"라고 대답하면서 자기들끼리 떠들더라고요.

"너네는 레즈라는 말은 어떻게 알았어?" 물어보니까 "저희 알건 다 알아요."라고 하더라고요.


보면 5학년 때부터 애들이 성에 눈을 뜨는 거 같았어요.

5학년 남자애들이 지들끼리 놀면서 "앙 기모찌" 이런 말 진짜 많이 하고 더 심하게는 여자 신음소리를 흉내 내면서 낄낄 거려요.


그리고 6학년. 그 애들은 제가 말 거는 걸 싫어하더라고요.  쉬는 시간엔 얘기도 잘 안 하고 무조건 폰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6학년 반에 키 작고 까불까불 한 남자애가 있었는데, 걔가 "작은 고추가 맵다는 거 모르냐" 이러니까 다른 남자애가 "작은 고추는 고추가 작은 거겠지."라고 받아치고. 서로 까봐까봐 이러면서 떠드는 걸 제 코앞에서 들은 적이 있었어요.


여자애들도, 선생님도 다 있는 공간에서 아무렇지 않게 고추 얘기를 하면서 떠들 수 있다는 거, 그건 진짜 젠더 권력으로 느껴졌어요.


남자들의 신체노출, 성기에 대한 얘기, 성적인 호기심, 이런 것들의 표현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이야기되는지 너무 잘 보이더라고요.


초등학교 5학년 이상이면 2차 성징이 시작하고 여자아이들은 생리를 하고, 남자아이들은 몽정을 하려나요?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섹스, 동성애에 대한 정보도 관심만 있으면 쉽게 찾아볼 수 있잖아요.


 초등학생들을 보면 유투브로 세상을 배우고 초등학생들 만의 문화를 만들 더라고요.

근데 그런 초등학생들에게 어른들이 어떤 성교육을 해 줄 수 있을까요?


저는 성교육받았던 기억이 잘 나진 않는데 기억나는 게 있다면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었나 자위행위에 대해 설명을 들었던 적이 있어요.

'아. 내가 성기를 만지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게 자위행위였구나.'라는 걸 첨으로 알게 되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뭔가 새로운 걸 배웠으니까 엄마한테 자랑할 생각에 신나서 학교 끝나고 집으로 뛰어갔어요.

엄마를 보자마자 "나 자위행위하는 거 같아!"라고 말을 했죠.

엄마가 너무 당황스러운 얼굴로 난처해하면서 "설마.. 자유 행위겠지."라는 거예요.

"아닌데 자위행위인데.. 자위 아닌가?" 물었더니 "아니야 자유일 거야". 이러면서 엄마가 자리를 피했어요.


정말로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성교육을 받은 기억이 제대로 없어요.


저는 생리대를 하는 법도 학습만화 보고 알았어요.

중1 때인가 학교 끝나고 오니까 팬티에 피가 묻어있어서. 아! 이게 생리인가 보다. 하면서 전에 봤던 만화책 펼쳐 놓고 봐가면서 엄마 생리대를 팬티에 붙였죠. 그게 첫 생리의 기억이에요.


그러고 나서 언제부터인가 소음순이 커졌는데 저는 그땐 그게 큰 고민이었어요.

솔직히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엄마밖에 없으니까. 엄마한테 말했거든요.

이거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니까. 그때 엄마가 했던 말이 "많이 불편한 거 아니면 결혼하기 전에 수술하면 될 거야."라고 했었어요.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첫 섹스를 하기 전까지 제 소음순이 너무 큰 걱정거리였어요.

'징그럽다고 싫어하면 어떡하지?' '나를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 보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들이요.

여성의 성기 모양은 다양하다는 걸 배웠으면 그렇게 소극적이고 걱정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죠..


생각해 보면 여성 남성의 2차 성징, 생리, 발기, 몽정, 정자와 난자의 수정, 임신, 피임,

이 정도로만 성교육을 배웠던 거 같고 선생님이나 부모님들도 이 정도만 얘기했던 거 같아요.

아직도 그렇지 않을까요?


요전에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나와서 인터뷰한 동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선생님이 인신공격을 받고 페미니즘 교육을 반대한다는 민원도 많이 있었다는 글을 봤거든요.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는걸 정말 모르는 걸까요?


다양한 젠더와 성에 대해서 배우고, 다양성에 대해서 함께 얘기해보고, 나 자신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아이의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이 깊어질지 정말 모르는 걸까요.


남자다운 것과 여자다운 것의 차이는 정말 타고난 것일까. 그 안에 차별과 편견은 없을까?


남자다움으로 무엇을 누리고 무엇을 억압받을까.

여자다움으로 무엇을 누리고 무엇을 억압받을까.

몰랐던 것들을 얘기해보고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정말 모르는 걸까요?


이렇게 페미니즘 인권교육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성교육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성적 흥분이 되었을 때 남성 성기 말고 여성의 성기는 어떻게 변하는가. 배운 적 있나요?


특히 여자가 자신의 성기를 만지고 관찰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여성은 클리토리스라는 쾌감만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있다는 거 왜 성교육에서 가르쳐주지 않냐고요.

삽입 섹스 말고 클리토리스로 더 쉬운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는 거를 왜 알려주지 않냐고요.


핑거 섹스. 항문 섹스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고, 당연히 이성간, 동성 간 섹스로 인한 성병과 예방도 가르쳐 줘야 하는 거 같아요.


숨기고, 안된다만 하지 말고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섹스에서 내 성욕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의사와 동의라는 것이고.

만약 서로 합의가 되었다면 내 오르가즘 만큼 상대의 오르가즘도 중요한 것이고.

서로가 안전하고 즐겁게 섹스하는 법을 알려주는 그런 성교육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청소년의 성욕과 섹스, 자위도 당연히 이야기되어야 할 것 같아요.

'성욕을 무조건 숨기고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강제로 폭력을 써서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거' 이게 정말로 중요한 거 같아요.


말은 쉽지만 요즘 분위기에서 이런 성교육이 있다고해도 이상한 거 가르친다며 보수단체에서 항의가 들어오고도 남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페미니즘 성교육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저뿐만 아니라 학부모부터 어른들부터 받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모두들 손톱관리 잘하시고 손 깨끗이 씻으시고 즐거운 자위 하세요.

잠 푹 주무시고, 주말 잘 보내세요. 안녕.

 


레즈비언 생활 보고서 | 레생보는 팟캐스트와 인스타도 하고 있어요.

팟빵  http://m.podbbang.com/ch/14488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lesreports
이메일  lesre4t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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