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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윤 Sep 22. 2017

혼인신고는 못하지만 당신은 나의 동반자

우리는 레즈비언 커플

안녕하세요. 대한민국에 사는 30대 레즈비언 파랑입니다.


오늘은 애인과 저의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2012년 10월! 사심 없이 술자리에 나갔다가 그날 애인한테 완전히 반해서 집에 돌아왔어요.

살짝 취해서 절 쳐다보는 애인 눈빛에 제가 완전히 빠져 버린 거예요.


너무 이쁘고, 이쁘기만 한 게 아니라 절 보는 애인의 눈빛이 뭔가 야했어요.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생각나더라고요.

'아 이쁘다. 원래 그렇게 이뻤었나?' '얘가 날 꼬신 건가?' '아 근데 진짜 왜 그렇게 이뻐 보였지.' '그냥 아무 의미 없는 눈빛에 내가 혼자 반해버린 건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면서 고민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그때는 주중에 생활하는 지역이 달라서 주말에만 데이트를 할 수 있었어요.

그날 이후로 하루종일 생각나고, 뭐하며 지내는지 궁금하고 그랬어요.

저는 주말 약속 잡는 것도 즐기는 편이 아닌데 그땐 뭐에 홀린 것처럼 매주 주말엔 당연하게 애인과 약속을 잡았어요. 그렇게 몇 달 만나다가 자연스럽게 사귀고 지금은 함께 살고 있어요. 함께 산지 2년 정도 되었어요.

 

지난달에 저희가 이사를 해서 집들이 겸 앤 친구들을 초대했어요. 그 친구들은 함께 산 지 5년 정도 된 레즈비언 커플이에요.


애인이랑 사귀고 초반에 그 친구들 집들이에 놀러 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커플이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 사는 모습이 참 부러웠어요. 저는 그때 그렇게 함께 사는 레즈비언 부부를 처음 봐서 인상깊었어요.

나도 언젠간 저렇게 애인이랑 한 집에서 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야지. 다짐하는 하는 계기가 되었던 거 같아요.


근데 '부부'라는 단어도 너무 이성애 중심적이어서 썩 맘에 들진 않아요. 커플 말고 부부 말고 적절한 단어가 뭐가 있을까요?


따지고 보면 레즈비언 부부에 적당한 단어만 없는 게 아니고 사회 제도도, 사회 시선도 레즈비언 커플을 지지해주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제가 일을 그만두고 나서 새로 이사한 집으로 건강보험 고지서가 나왔더라고요.

직장 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변경되면서 보험료를 내야 하는 거였어요. 한 달로 따지면 큰돈은 아니었는데, 석 달 치가 한꺼번에 나와서 놀래서 건강보험공단에 문의 전화를 했죠.


그랬더니 아버지가 직장 가입자로 되어있으니 팩스로 피부양자 등록을 하면 소급적용이 돼서 이미 나온 것도 낼 필요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필요한 서류가 가족관계 증명서랑 혼인관계 증명서였어요.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나와서 애인이랑 함께 살고 있는데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을 해야하고,애인이 아닌 아버지의 피부양자로 등록을 해야 했어요. 

그렇게 서류를 제출하고 나니까 지역가입자로 나온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제가 아무리 [나는 지금 애인이랑 한 가정을 이루고 잘살고 있어.]라고 생각을 하더라도 우리 둘은 제도안에선 아무 관련없는 사이에요. 몰랐던 사실은 아니지만 이런 서류가 필요할 때마다 씁쓸하더라고요.


그나마 서류상으로 묶일 수 있는 게 하나 있다면 한 집으로 전입신고했을 때 동거인 정도뿐.


우리 커플은 당연히 신혼부부 대출도 할 수 없고, 가족으로 묶여있지 않으니 등기우편 대리 수령도 못 해요.

그리고 연말정산할 때 제가 애인의 부양가족에 해당하지 않아서 기본공제도 못 받아요. 자동차 보험도 부부 한정 보험은 가입하지 못해요. 회사에서 의료비나 경조금 지원해주는 것도 아마 해당 사항 없을 테고요.


제가 이런 불만을 줄줄이 늘어놓으니까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제도 안에 있다고 해서 모든 커플이 행복한 건 아니니까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에 감사하라고….


이게 뭐야. 말이야 방귀야.

저는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제도권 밖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게 아니잖아요?

왜 우리커플은 제도권밖에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불평등과 불안함을 얘기하고 싶은 거예요.


어제 심상정을 제외한 대선후보 네 명이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고 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기사 내용을 적어보자면,


문재인 측은 기독교계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고, 출산율이 세계적으로 낮은 여건을 고려할 때 앞으로 동성애 동성혼을 사실상 허용하는 법률 조례규칙이 제정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라고 했고


안철수 측은 동성애 동성혼은 절대 반대한다. 동성애 동성혼을 허용하는 법률 제도는 오히려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역차별이다.


홍준표 측도 마찬가지로 절대 반대. 차별금지법 제정도 반대.


유승민 측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동성애 옹호 조장하는 우려가 있기 때문. 전통적 가치를 무너뜨리는 등 기독교가 걱정하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


정치인들이, 기독교인들이 지키고 싶은 전통적 가치가 무엇일까요. 가부장제? 남존여비? 이성 간의 삽입 섹스?


결혼하지 않고 사실상 동성혼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제도를 만들어주고 법으로 보호해주자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동성애자도 세금 내고 있고

동성애자도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동성애자도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고

동성애자들도 징병되어 군 복무하고 있고

동성애자도 가사 노동하고

다들 사회의 구성원으로 한몫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무엇때문에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가 그렇게 쉬운것일까요.


이성애자들이 퀴어들에게 생활비를 주나요. 군대를 대신 가주나요.세금을 내주나요?


우리 삶을 위해 무엇을 해준 게 있다고 내 행복을 반대하고 나설까요.


정치인들은 뭐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퀴어들이 세상에, 대한민국에 존재하고,(설마 미국에만 존재하겠어요?)

그런 퀴어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법률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잖아요.

다양한 사람들이 사회안에서 공존하기 위해서 개개인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조율하고 하는 직업이 정치인아닌가요?


결혼한 제 친구한테 이런 말도 들었어요. "나는 너의 사랑을 인정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은 사회, 문화적으로 동성애를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아? 좀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겠어?" 라고 하더라고요.


차별받는 사람이 차별하는 사람의 인식이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한대요. 그게 맞나요?

'다른 사람들의 인식이 바뀔때까지 너의 인권, 너의 권리는 조금 미루자. 내가 누리는건 당연하지만 너는 아직 아니지.'라는 말이 그렇게 쉽나요? 언제까지 기다리라고 말할건데요?


그런 문화속에서 별다른 생각없이, 경험없이 자라왔으면 차별인지도 모르는 사람도 많을 거예요.

그러니까 사회 인식이 바뀌기 기다리는 게 아니라, 법률을 제정해서 차별임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신들이 하고 있는 거 그거 차별이에요.

왜 그렇게 혐오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요?

우리는 당신들의 적이 아니에요. 당신들은 우리보다 우월하지 않아요.

당신들이 우리를 존재를 무시하고 세상을 독점할 권리는 없어요.


퀴어가 조금 덜 불안하게 그리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산다고 해서 당신들의 행복을 뺏기는 거 아니잖아요.

우리의 사랑이 틀린 게 아니라 호모포비아들의 편견과 혐오가 틀린 거예요.


애인이랑 함께 외국의 레즈비언 결혼사진을 보면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어요.

"우리도 언젠가는 이렇게 이쁜 결혼식 할 수 있겠지? 자기는 턱시도 입을 거야 드레스 입을 거야?"

애인에게 물어보니까. "둘 다 입어보고 더 잘 어울리는 거 고를꺼야."라고 하더라고요.


오... 현명하지 않나요?

 

쭈그렁 할머니 돼서도 애인이랑 함께 손잡고 산책하고 소주도 한잔하길, 그땐 우리가 당당한 가족이길 꿈꾸며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 지금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하고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주말 잘 보내시고, 잠도 푹 주무세요. 안녕.




레즈비언 생활 보고서 | 레생보는 팟캐스트와 인스타도 하고 있어요.

팟빵  http://m.podbbang.com/ch/14488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lesreports
이메일  lesre4t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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