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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윤 Sep 22. 2017

대선 토론 보고 나서 잠도 못 잔 레즈비언

여기 레즈비언 있어요.

안녕하세요. 대한민국에 사는 화가 잔뜩 난 레즈비언 파랑입니다.


어제 애인과 함께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대선 토론을 봤어요.

삼겹살을 다 먹었을 때쯤 기호 2번이 문재인에게 질문을 했어요.


군내 동성애를 들먹이면서 동성애를 반대하냐는 질문이었어요.


문재인 후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너무도 당당한 표정으로 "네 반대합니다." 이러는 거예요.



기대하고 지지했던 후보가 거리낌 없는 표정으로 성 소수자 차별, 혐오하는 발언을 듣고 나니까 머리가 하얘지고 점점 화가 나더니 귀까지 뜨거워지더라고요.



대화를 주고받는 수준이 기호 1번이나 기호 2번이나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적어도 성 소수자 인권에 관해서는 그렇게 보였어요.



기호 2번이 재차 확인하는 질문을 했어요.

"분명히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죠?"

그랬더니 문재인 후보가 뭐라고 대답했냐면

"저는 뭐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머 항문 섹스 좋아하냐는 질문에 대답한 줄 알았네요. 진짜.



동성애 반대하지만, 차별도 반대한다.라는 말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개인적으로 동성 간 섹스를 이해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서는 혐오하지만, 사회적으로 차별을 두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이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요?

이게 바로 혐오할 권리라는 건가요?

혐오는 폭력이에요. 폭력에서 어떻게 권리를 찾을 수 있어요. 


근데 저는 동성애를 이해하는 것이 절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해하지 못해도 그냥 세상에 존재하거든요.



해, 달, 하늘, 고양이, 강아지, 나무, 여자, 남자, 이런 단어들을 배웠을 때 우리가 그것들을 이해를 하고 찬성 반대를 논하고 사회적으로 허락해서 그것들이 존재하는 건가요?


동성애자, 이성애자, 양성애자, 무성애자 이런 성적 지향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 세상에 모든 단어를 하나하나 배워가듯이 그렇게 배워가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이 있다면 좀 나아질까요.


해와 달, 고양이와 강아지처럼 나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내가 하는 사랑도 자연스러운 것이에요.

내가 이렇게 존재하잖아요.


나 혼자만도 아니고 내 사랑도 있고 내 친구들도 있고, 대한민국에도, 지구 곳곳에 존재해요.

이게 자연스러운 거지 어떤 게 자연스러운 거겠어요.


자연의 섭리는 이 세상에 여자, 남자, 이성애자들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엄청난 다양성이 함께 존재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배운 적이 없어서 몰랐을 뿐이지.



길가다 어떤 이성 커플을 보고 그 둘이 침대에서 어떻게 섹스할까 상상해본 적이 있나요?

결혼식에 가서 신랑·신부가 섹스하는 상상을 하면서 축하해 주나요?

그 상상 속의 섹스 방식이 나의 섹스 방식과 비슷하면 축하해주고 아니면 반대하나요?


저는 그런 적이 없는데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사람들은 왠지 그런 상상을 많이 하는 거 같아요.



초등학생 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거로 놀리고 따돌리고 하잖아요. 저는 장이 활발해서 그런지 몰라도 대변이 자주 마려웠거든요.


근데 화장실에서 오래 있다가 나오면 꼭 누군가 저를 놀렸어요. 팔짱을 끼고 눈을 흘기면서 "아 쟤 화장실에서 똥 쌌나 봐. 오래 있다 나왔어. 냄새나."라고 말하면  주위에 있는 애들이 키득거리면서 절 놀렸어요.


그럼 저는 그다음부터 화장실을 잘 못 가겠는 거예요.

학교 끝나고 집에 갈 때까지 꾹 참았어요. 배가 너무 아파도 말도 못 하고 그냥 참았어요.


그런 놀리는 말들도 제 행동에 제재를 가하고 엄청난 압박을 줬어요.


근데 제 존재와, 삶 자체를 부정하는 그런 동성애 혐오 발언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섭고,  시시때때로 움츠러들게 만들어요.


'누군가 그 혐오를 행동으로 옮기면 어쩌지'란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우리가 레즈비언 커플인 걸 알고 해코지하면 어쩌지.'

'혹시나 회사에서 아웃팅 당하면 그 시선들 견딜 수 있을까.'

'내가 견디고 다니더라도 회사에서 날 자르면 어쩌지.'

'만약 면접관이 내가 레즈비언인 걸 알게 된다면 나는 취직을 할 수 있을까. '등등


 

저는 지금 애인과 사귀면서 친동생과 친구들한테 커밍아웃을 했어요. 커밍아웃하면서 더욱 깊어진 친구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어요.


언젠가는 가족 모두에게 오픈하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친구가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고, 이 친구와 결혼하겠다고 말하고 싶어요.

직장에서, 다른 사회에서 누군가 애인 있냐고 물어보면 아무렇지 않게 '레즈비언'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금 이 순간도 성 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해 행동하시는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제 애인한테 물어봤어요. "우리나라는 언제 될지 모르지만 혹시 동성결혼 법제화되면 우리 결혼할 수 있는 거야?" 그랬더니 애인이 좀 뜸을 들이다가 "우리 50살 땐 부모님께 말해 볼 수 있을 거 같아."라고 하더라고요.


50살이면 20년 뒤인데... 20년 뒤면 대통령에 4번은 바뀌니까 그때 되면 애인과 결혼할 수 있을까요? 파트너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다양성을 인정하고 소수자, 약자의 인권과 평등이 보장되는 세상이 하루빨리 오길...

가만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저도 조금이나마 한 몫할 수 있길 바라며



마지막으로 정말 평범하고 당연했던 어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있었던 심상정 후보의 발언 틀어드릴게요. 이런 당연한 발언에 어젯밤엔 얼마나 위로받고 감동받았는지 몰라요.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성 정체성은 말 그대로 정체성이다. 소수자의 인권과 자유가 존중돼야 민주주의라고 본다.


지금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하고요.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잠도 푹 주무시길. 안녕.



레즈비언 생활 보고서 | 레생보는 팟캐스트와 인스타도 하고 있어요.

팟빵  http://m.podbbang.com/ch/14488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lesreports
이메일  lesre4t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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