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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우재 May 18. 2020

‘아내 걱정’ 모터는 프로답지 못한 걸까?

선수라도 야구보단 가족이 우선일 수 있다

키움 외국인 타자 테일러 모터가 16일 1군에서 말소됐다. 아내 걱정으로 야구에 집중할 수 없어서다. 모터 아내는 12일 입국한 뒤, 방침에 따라 정부 시설에서 자가격리 중이다. 그런데 음식 등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모터에게 매일 밤 울면서 연락해왔다고. 손혁 키움 감독은 “가족이 먼저”라며 모터가 조금 쉬면서 재충전 시간을 갖도록 배려했다.


이를 두고 모터가 프로답지 못하고 자기 관리에 실패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런 반응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팬들은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가뜩이나 팀 분위기도 안 좋은데, 부진한 선수가 아내 달래주겠다고 떠나는 게 곱게 보이진 않으리라. 더구나 모터 아내가 최근 SNS에 음식 관련 불만을 쏟아내며 인권침해를 주장하고, 모터도 그걸 공유했다가 둘 다 지운 일이 벌어져 부정적 여론이 더 커졌다. 과한 표현이 담겨 경솔하게 보일 여지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팬들은 화가 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건, 언론까지 나서서 모터를 두고 ‘프로답지 못하다’, ‘자기 관리 문제다’라는 식으로 비판하는 거다. 좀 과하다. 이미 팬 여론이 충분히 들끓고 있는데, 굳이 언론까지 나서서 거들 필요가 있을까? <스포티비뉴스>는 “결국 자기 관리의 문제다. (중략) 모터 본인이 가정과 직장에서 중심을 잡아야 했다”고 썼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가족 문제는 누구나 겪고 흔들릴 수 있는 문제 아닌가. 그럴 때 필요한 처방은 휴식이지, 역지사지하기도 힘들 ‘자기 관리’를 요구하는 건 좀 무리다.


최근 KBO 리그는 야구보다 가족이 우선이라는 걸 이해하는 추세다. 롯데 외국인 투수 아드리안 샘슨은 위독한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고자 개막을 앞두고 특별휴가를 받아 미국에 다녀오기도 했다. 롯데 결정에 다들 박수를 보냈다. 바람직하니까. 사안의 경중은 물론 다르지만, 모터도 마찬가지다. 야구보다 가족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가족 문제로 야구에 집중하기 어렵고, 그래서 부진하고, 팀에 계속 악영향을 줄 바에야 쉬고 돌아오는 게 나을 수 있다.


만약 모터가 잘했다면 이런 기사가 나왔을까? 그럴 리가. 부진하니까 욕하는 거다. 하지만 ‘야구보다 가족이 우선’이란 명제는 야구를 잘하고 못하고 상관없이 적용돼야 하는 거 아닌가. 야구 잘하면 가족 챙겨도 되고, 야구 못하면 야구 먼저 챙겨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야구 못하는 건 못하는 대로 비판하면 된다. 근데 가족 챙기는 걸 두고 “악착같이 야구에 전념해도 모자랄 시기에 야구 외적인 문제로 팀 전력 운영에 어려움을 줬다”는 식으로 쓰는 건 너무하지 않나. 모터가 일부러 태업하고 싶어서 가족 문제를 들먹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모터가 쉬고 돌아와서도 부진하다? 그럼 그걸로 비판하면 된다. 근데 그게 아니라 야구보다 가족 먼저 챙긴다고 욕하는 건 좀 문제라고 생각한다. 프로답지 못한 게 아니라, 프로이기에 야구보다 가족을 먼저 챙길 권리가 있어야 하는 거다. 안 그래도 KBO 리그는 몇 년 전까지 출산, 임종 등 가족 문제로 경기 빠지는 데 눈치를 많이 봐야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팬들도 그런 문화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이젠 아니다. 인식이 바뀌고 있다. 경조사로 엔트리에서 잠시 빠질 수 있는 권리까지 선수들에게 생겼다. 그렇게 사회가 변화하고 발전하는 거다.


언론이라면 그렇게 사회가 변화하고 발전하는 데 기여하는 기사를 써야 한다. 그런 점에서 모터를 ‘프로답지 못하다’는 식으로 비판하는 언론은, 그저 분노한 팬 여론에 영합해 조회 수 장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본다. 차라리 그럴 시간에 ‘인권침해’라는 모터 아내 주장이 얼마나 사실에 들어맞는지 검증하는 기사를 쓰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발로 뛰는 노력 없이 그저 팬 여론에 편승하는 기사로 분노를 팔아먹는 행태는 좀 게을러 보인다. 여론이 들끓을수록 언론은 좀 차분하게 다른 각도로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줘야 하는데 말이다.


어쨌든 모터가 잘 쉬고 돌아와서 달라진 모습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가 되길 바란다.




[추가!] 오늘 SBS 기사가 그나마 취재 노력을 기울인 기사라고 생각한다. 기사를 보면, '사실혼' 관계가 인정되지 않은 것부터 꼬여서 이렇게 진행된 면도 있는 듯하다. 워낙 정신없는 시국이다 보니 정부 격리 시설에서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오해가 쌓였을 수도 있고. 물론 일이 꼬이고 타지 적응이 힘들다 하더라도 모터 아내가 SNS에 그런 식으로 글을 올린 걸 나 역시 옹호하고 싶진 않다. 내가 말한 논지와도 별개 문제고.




‘아내 걱정’ 모터는 프로답지 못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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