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작은 외숙모 댁에서 김장을 하고 다음날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으려고 준비하는데 갑자기 아이가 젓가락을 달라고 떼를 쓴다. 그냥 떼가 아니라 그냥 엉엉 운다. 그래서 자기가 쓰는 뽀로로 젓가락을 주자 그건 싫다고 한다. 남편과 나는 이렇게 심하게 떼쓴 적이 너무 오랜만이라 당황했고 어떻게 하면 아이의 주의를 딴 곳으로 돌릴까 하며 머리를 굴렸다.(우리 부부는 매번 아이의 시선을 돌리려 애쓴다.) 하지만 남편이 곧 나가야 해서 밥은 얼른 먹어야겠고, 아이도 우리와 같이 먹어야 나중에 또 밥상을 안차려도 되어서 편한데... 무작정 떼를 쓰는 아이 앞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상태가 안 좋은 아이에게 우리가 쓰는 젓가락은 위험해서 줄 수 없었고, 남편은 우리 모두 포크로 밥을 먹자고 했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머릿속이 차분해졌고, 나는 냉장고에 있는 치즈를 생각해냈다.
"엄마는 치즈랑 밥 먹어야지~"
치즈는 먹고 싶었는지 밥상 옆에서 세상 서러운 듯 서서 몇 분 울다가 얌전히 옆에 앉는 아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식판에 준 밥을 모두 먹었다. 밥을 먹으며 남편과 이야기했다.
"아이가 갑자기 저렇게 뚜렷한 이유 없이 울 때는 기다려줘야 하는 것 같아.
자기도 왜 우는지 모르는 것 같거든."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아이가 이번만 그런 것은 아니다. 예전에도 한번 별다른 이유가 없는데(밥도 먹었고 기저귀도 갈았고) 세상 서러운 듯 운 적이 있었다. 엄마가 옆에 오는 것도 싫단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혼자 앉아서 울더니 어느새 진정되었던 것 같다. 이제 26개월인 아이에게도 그렇게 혼자 감정을 해소하고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러면서 여러 상황에서 어떻게 감정을 표현하고 다루어야 할지 배우고 있는 걸까?(이건 나의 너무 큰 기대인 건가..?^^)
그리고 남편과 그날따라 아이의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었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그냥 갑자기 차분해질 때도 있고 혼자 있고 싶은 날도 있다. 가끔은 밥도 먹기 귀찮을 때도 있다. 어제가 아이에게도 그런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집 아닌 곳에서 자서 피곤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는 그게 어떤 감정인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기다리는 일은 참 어렵다. 특히 뭔가를 해야 할 때, 어딘가에 가야 할 때는 내 마음이 더 급해져 다른 식으로 주의를 환기시키기보다는 '왜 말을 안 듣느냐며, 엄마 힘들다'며 성질을 내기 일쑤다. 아이에게 '누가 이기나 해보자' 는식의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사실 이런 식으로 상황이 흘러가면 나는 나대로 감정을 쓰고 아이가 갑자기 짠~하고 밥을 잘 먹는다거나 밖으로 나갈 준비를 알아서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아이와 힘겨루기 하듯 나는 "잘못했어 안 했어?" "그러면 돼 안돼?" "다음에는 잘할 거지?"라고 묻고 "네"라는 작은 목소리의 대답을 받아낸다.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법륜스님이 즉문즉설에서 말씀하셨다. "아이와 제발 좀 싸우지 말라"라고. "밥 먹기 싫다고 하면 알았다~ 하고 밥상 치우면 되고, 밥 먹고 싶다고 하면 그래~하고 밥 줘라"라고. 그러더니 질문자에게 몇 살이냐고 물으셨다. 지금 그 나이에 아이랑 싸워서 되겠느냐면서. 맞다. 나는 31살 아이는 겨우 26개월. 뭔가 또 아이가 떼를 쓰는 상황이 생기면 심호흡을 하며 최대한 내 나이를 기억해야지. 겨우 26개월 된 아이와 싸우지 말고 객관적 거리를 유지해야지. 위험한 것만 아니면 아이에게 힘으로 이기려 하지 말고 기다려줘야지. 오늘도 다짐으로 글을 마친다.
2020.11.23. 화요일. 오후 3시.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