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할머니의 일상
얼마 전, 엄마네 주인집 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엄마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셨는데 주인집 아주머니가 상복을 입고 계셔서 알았단다.
할머니는 화장실에서 넘어지신 뒤 상황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고 한다.
엄마는 노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주 전, 마당을 쓸고 계신 할머니께 잘 익은 대봉을 하나 드렸다고 한다.
92세인 노 할머니는 아침이면 매일 같이 마당을 쓰셨다. 그리고 꼭 집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오신다고 했다.
(나도 지난번에 엄마 집에 갔을 때 인사를 드렸는데, 귀가 잘 안 들리시는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
엄마는 말했다.
"할머니가 마당을 쓰시는데, 딱 말랑말랑하고 먹기 좋은 감 하나가 있더라고~ 그래서 드렸지. 그때 대봉을 드리길 어찌나 잘했던지..."
엄마가 노 할머니께 감을 드리니 할머니께서는 말씀하셨다고 한다.
"올해 우리 집에 감이 하나도 안 열려서 먹지를 못했어~"
주인집 아주머니는 노 할머니께서 감을 드신 것도 모르셨다고 한다. 드시는 것도 감의 흔적도 아무것도 못 보신 모양이다. 그렇게 부지런한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시기 몇 주 전 주인집 아저씨께 돈 3000만 원을 주셨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아저씨는 공돈이 생겨서 좋으시겠다~!'
노 할머니 이야기를 남편에게 했더니, 죽을 때 자기 장례비용을 해결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불로소득.. 만 생각했는데^^;; 할머니는 어떻게 그 큰돈을 모으셨을까? 물론 이미 가지고 계셨던 것도 있으셨겠지만 아마 자식들이 준 용돈을 한 푼 두 푼 모아두신 것이 아닐까라고 엄마와 이야기했다. 돈이 3000만 원이나 있어도 다른 데 쓰지 않고 돌아가시기 전 자식에게 준 것이 왠지 모르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할머니께서는 정말 자신의 장례비용까지 생각해두신 걸까?
매일 아침마다 할머니의 마당을 쓰는 모습, 산책, 또 자식에게 3000만 원을 주신 것까지.
노 할머니를 많이 뵌 것은 아니지만 건강한 일상을 유지했던 할머니의 모습과 또 할머니가 주신 3000만 원을 떠올리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본다.
노 할머니, 좋은 곳으로 가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