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지 않은 지 2주가 되어간다. 정확히 말하자면 캡슐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사실 어제도 회사에서 바닐라라테를 한 스틱 타 먹기는 했다. 그런데 이건 뭐 커피 중에서도 귀여운 정도. 맛있어서 음료수처럼 먹은 거라고 할 수 있다. 커피머신은 육아하며 가장 잘 샀다고 생각한 가전제품 중 하나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은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을 해결하지 못할 때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졸려도 아이가 깨어있는 한 마음대로 행동할 수가 없다. 아이가 어릴 때는 더더 내 의지를 실현시키지 못한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자, 나는 남편에게 선언했다.
"커피 머신 사야겠어!"
편의점 커피를 자주 사오고, 코로나로 아이와 집에 있는 시간이 늘게 되자 아예 커피머신을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요즘 나오는 커피머신은 저렴해서 6만 원 정도에 살 수 있었다. 모카포트로 직접 내려먹는 편이 환경에 좋을 듯한데 도저히 원두 관리와 세척 등등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캡슐커피머신을 구매했다. 커피머신은 신세계였다! 캡슐 하나 넣으니 스타벅스에 와있는 듯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커피를 골라 마시는 재미에 빠졌다.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 남편도 옆에서 몇 번 맛보더니 하루 한잔 꼴은 마시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난번 글에서도 언급했듯 커피를 마실수록 자꾸만 다른 간식을 찾게 된다는 거다. 집에 초코 간식이 쌓여갔다. 점점 뱃살도 나오는 것 같았다.
아이 이유식을 시작하며 밀가루 제품을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밀가루를 먹은 날에는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되지 않아서 그런지 괜한 일로 남편과 다툰 적이 있었다. 속이 불편하니 감정까지 예민해졌나 보다. 그 후로 한살림, 생협에서 장보는 날이 늘어나고 과자나 빵이 먹고 싶을 때면 쌀빵이나, 쌀로 만든 과자를 고르곤 했다. 그랬던 우리가 수입과자와 다이제를 야금야금 고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이 낮잠을 재우려다 옆에서 같이 잠이 든 적이 있었다. 잠깐 자고 일어났는데 개운했다. 그날은 커피를 마시지 않고도 하루를 보냈다. 남편과 이야기했다.
"커피를 마시지 않고도 하루를 잘 보낼 수 있네?!" 신기했다.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커피를 마시지 않아 보았다. 그렇게 2주가 지났다. 왠지 버텨보고 싶었다. 몸이 점점 차분해지고 정신이 명료해지는 것 같았다.
얼마 전, 회사에서 밀린 일을 하는데 몸이 나른해지니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니 회사에 갔을 때 집중해서 일을 하고 돌아와야 한다.) 컵을 들고 아메리카노 스틱을 타 오면서 굳이 커피를 마셔가며 열심히 일해야 하나? 지금 하는 일이 오늘까지 꼭 끝내야 하는 일인가? 조금은 여유롭게 일하면 안 되는 걸까? 왜 이렇게 강도 높게 일하고 빨리 마무리하려고 하는 걸까? 곰곰 생각해보면 내가 하는 일이 그렇게까지 급하게 처리해야 할 건 없다. 중간중간 쉬어가며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일할 때면 하나의 일을 마무리하고 싶어서, 중간에 끊기는 게 싫어서 결국, 무리해서 하게 된다.
나는 이제껏 내 생명에너지를 써가며 일하고, 아이를 돌보았던 것 같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알게 된다. 뭔가 항진되고, 정신이 몽롱한 느낌을. 그리고 결코 이 기분이 좋지 않음을. 정말 급박한 상황이 아니면 커피를 마시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매일 같이 커피 마시는 습관에서 벗어나야겠다. 이렇게 내 욕망을 조절해나가는 것이 은근히 뿌듯하다.
12월 15일. 오전 6시.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