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듯한 32살의 생일

by 민들레

1월 13일 6시 32분 - 6시 57분 / 1월 17일 6시 11분 - 6시 30분 (글 한편 마무리하는게 쉽지 않다ㅜ)



생일에 굳이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는데 남편은 꼭 제손으로 미역국이라도 끓여주고 싶었나보다. 유튜브 영상을 돌려보더니 결국 저녁상에 "들깨미역국"을 올려주었다. 아이도 옆에서 색종이를 찢어 미역국을 만들었다. 아빠가 하는 걸 보더니 소금을 "촥촥"뿌리고 간장을 "졸졸졸" 국자에 대고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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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가족은 하루에 한번 빌라 쓰레기를 모아 놓는 곳에 내려가 정리를 한다. 일반쓰레기, 재활용, 음식물쓰레기까지 한 군데 섞여있어 그냥 내버려두면 어마어마하게 더러워진다. 청소하시는 분들이 쓰레기를 잘 가져가시지도 못하는데다 주변 사람들까지 조용히 와서 무단투기하기 일쑤. 우리 빌라 사람들이 잘 정리하지 못하고 내 놓는건 그나마 처리하기가 쉽다. 집에 재활용 쓰레기가 반 정도 쌓여있을때 들고나가 밖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담아 한번에 버리면 된다. 문제는 옆 건물의 무단투기다. 일반쓰레기를 종량제 봉투가 아닌 큰 비닐에 한데 모아 그냥 버리기도 하고, 배달음식을 먹다 남긴채로 내버려둔다. 하아... 어느 날은 그렇게 막 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화가 나기도 한다. 쓰레기를 치우고 돌아와 남편에게 말했다.


"옆 건물 사람들 때문에 짜증나"


그러다 문득, 그 사람들 때문에 분노를 일으키는 이 시간이 아까워서 더 이상 신경쓰지 않는 훈련을 하기로 한다. 적당히 치우되 내가 힘들지 않을 정도로만 하기! 화를 내지 않기로 결심했다고해도 잘 되지 않는다.


어느 날 남편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 우리와 비슷한 상황의 질문이 있다며 한 번 보라고 했다. 환경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하시는 분의 질문인 것 같았다. 스님은 내 마음이 괴롭지 않으면서도 행동은 적극적으로 하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이 바뀌든지 안바뀌든지 결과는 알 수 없다며, 그래도 자신이 생각할때 "옳다고 하는 일"이라면 하는 것이라며. 다만 너무 힘을 들여하면 지쳐서 꾸준히 할 수 없다고 하셨다.


집 앞 쓰레기를 치우는 일. 내가 구청에 신고하고 집앞을 매일 치운다고 해서 항상 깨끗한 상태로 유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조금 덜 더럽혀지기를, 내 집앞을 내가 청소해야 옳다고 생각하니까 쓰레기를 치우려고한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플라스틱을 조금 덜 사용하면 그나마 지구가 망하는 속도가 그만큼 늦춰지지 않겠느냐고. 장기적으로 보고 수행삼아 하기. 쓰레기장에 마음을 두기. 이 마음가짐이면 충분한 것 같다.


사실 쓰레기장 치우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건 아니었는데, 딴길로 새버렸다. 어제 아이가 낮잠을 자는 사이 밖에 눈이 펑펑왔다. 지난번에도 눈이 많이 왔는데 나가보지 못했다. 아이가 제 때 잠들었고 이따 깨서 나가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아이와 눈을 쓸기로 했다. 지난번에 눈이 왔을때도 몇 번 쓸려고 했었는데 하지 못했다. 아이는 쌓인 눈을 밟느라 정신이 없는 동안 우리는 빗자루로 쓱쓱 길을 만든다. 몇년동안 묵혀왔던 일을 수행한지라 뿌듯했다.


생일에 이렇게 뿌듯한 일을 해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우리 집 앞을 가는 사람들이 조금 편히 지나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일으키며 눈을 쓸었을 때 마음이 편안해지고 은근한 기쁨이 차오른다. 몰래 기부하는 기분이 이런 느낌일까? 엄마에게 집 앞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고 말하니, 예전에 절에서 들었는데 꼭 물질적으로 보시하는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밝은 얼굴, 칭찬, 도움 등등. 생일에 한가지씩 선행하는 이벤트를 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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