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침체된 어느 날 저녁

by 민들레

2021년 2월 2일 오전 5시 9분



글을 쓴지도 꽤 오래되었다. 며칠 전 남편에게 말했다.

"매일 브런치에 글을 쓰려고 하는데, 할 말이 없어. 책을 읽고 공부를 좀 해야 쓸 주제도 나오는 것 같아!"

정말 이것저것 읽어야 더 할 말이 많아지는 건 맞다. 그런데 또 글을 안 쓰면 생각도 진전되지 않는다. 글쓰기와 책 읽기 & 공부는 함께 가는 것 같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글을 쓴다.


5년 동안 하던 남편의 일이 끝났다. 기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 일이었는데 꾸준히, 쉼 없이 하던 남편이 대단하다. 그래서 남편은 지금 백수다. 신기한 건 소득이 많지 않아도 크게 불안하지 않다. 일은 또 구하면 되고 빚도 없고 소비도 많지 않으니 적당히 먹을 것만, 또 약간 저축해둘 것만 벌면 된다.


시간도 많고 남편이 아이를 잘 돌보아주는데도 나는 또다시 침체되었다. 어제는 미세먼지 수치가 최악이었다. 멀리 보이는 산이 뿌연 미세먼지에 가렸다. 그래서일까? 갑갑했다. 저녁도 6시가 되기도전에 다 먹었고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보통 남편, 아이와 산책 나가곤 하는데 미세먼지 어플에 빨간색 "외출금지"문구를 보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갑자기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야근하는데 식비를 청구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가능하다고 했다. 회사 카드로 결제하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런데 한 시간 뒤 다시 전화가 왔다. 그렇게 못했다며, 자기 카드로 결제했다며. 혹시 처리 가능하냐고 말이다. 친절하게 설명해준 나는 그야말로 황당했다. '그렇게 자세히 설명해줬는데, 뭐지?', '아침에 지각해놓고 야근한다는 게 말이 되나?' 괜히 더 짜증이 났다.


그래도 계속 갑갑하고 화가 난 상태로 지낼 수는 없다. 아이, 남편과 함께 있기에 내가 기분이 안 좋으면 모두가 영향을 받는다. 엄마가 되니 어떤 상황에 처해도 아이를 재우고 하루를 잘 마무리해야 한다. 남편과 아이가 놀고 있는 사이 옆에서 태블릿을 펼쳐 운동 영상을 틀었다. 스트레칭을 하고 나니 조금 에너지가 올라갔다. 환기를 하고 마스크를 꼭꼭 끼고 집 앞 마트에 나갔다. 몸을 움직이니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다행히 잘못 결제한 직원에 대한 짜증도 서서히 사라졌고, 예전에 내게 잘해준 고마움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내가 침체되고 화가 나는 이유가 미세먼지 그리고 그 직원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정말 내 안에 어떤 "종자"가 있어서 이 종자가 외부 사건과 만나서 발현되는 것 같았다.(얼마 전 유식에 관한 글에서 보았다.) 이미 내가 침체되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였는데 잘못 결제했다는 말을 듣자 갑자기 스스럼없이 화를 내게 된 것이다. 그 직원을 핑계로 대며 화가 나는 내가 당연한 상태라도 되듯이 말이다. 사실 미세먼지나 그 직원의 잘못이나 그렇게까지 생사를 오고 가는 큰일은 아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미세먼지는 사라질 수 있는 것이고, 잘못 결제한 것도 비용이 많지 않으니 그냥 처리해주면 될 일이다.


나는 평소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는 걸까? 화를 내고, 괴로움을 만드는 상황을 줄이고 싶다. 어떤 사건 속에서든 평정함을 유지하는 것을 수행으로 삼아야겠다.


11108_8810_4026.jpg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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