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리 편.
김대리는 탕비실에 커피를 타러 갔다가 쿠폰 요정 박 대리님과 임 과장님이 눈빛을 교환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다. 점심시간에 과장님부터 선약이 있다고 스윽 일어나서 나가시더니 갑자기 분주해진 박 대리님도 점심 약속이 있다며 나가셨다. 언제나 어설픈 박 대리님. 사람은 너무 착한데 일도 거짓말도 다 어설픈 분이다. 분명 두 분이 점심을 따로 먹으려고 하는 거 같았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때론 모르는 게 약이라 그냥 모른 척했다. 김대리는 남은 하대리와 둘이 점심을 먹었다.
"대리님~ 점심 뭐 먹을까요? 뭐 드시고 싶으세요?" 김대리는 역시나 예쁜 얼굴만큼 밝은 목소리로 애교 있게 물어본다.
"오랜만에 둘이 먹네. 김대리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내가 점심 살게. 자기 먹고 싶은 거 먹자." 하대리는 붙임성 좋은 김대리가 이쁘기도 하고 바이오 주가가 연일 오르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
"전 오늘 떡볶이가 먹고 싶은데요~" 역시 사교성 많은 김 대리다. 떡볶이 마니아 하대리의 비위를 정확히 맞춘다.
"진짜야? 에이, 나 때문에 그럴 필요 없어~"
"아니에요, 정말 오늘은 매콤한 떡볶이가 당겨요~" 정말로 오늘 김대리는 떡볶이가 먹고 싶기도 하다. 사실 김대리는 음식을 크게 가리지 않는다. 평소에도 몸매 관리 때문에 그다지 많이 먹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 그럼. 저번에 갔던 그 즉석 떡볶이집 가자."
다행히 떡볶이집에 자리가 남아있다. 즉석 떡볶이집이라 회전율이 낮기 때문에 가게 안이 가득 차면 기다릴 생각 말고 그냥 다른 식당으로 가야 한다. 처음에 그것도 모르고 자리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황금 같은 점심시간을 몽땅 줄 서서 없앤 적도 있다. 고추장에 맛있게 졸여지고 있는 떡볶이를 바라보며 둘은 침을 삼킨다.
"참, 김대리 전세 만기 다 되어 간다며? 이사 가는 거야?"
"아직 결정 못했는데 그럴 거 같아요."
"김대리 신랑도 대기업 다닌다고 했지? 아이도 없고 둘 다 대기업 다니는데 왜 집은 안 사? 둘이면 20평형대 사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신랑이 집에 관심이 없어요. 저도 사실 그렇고요. 지금 사기엔 집값이 너무 올라서 더 마음이 사라졌어요. 아시겠지만 둘 다 아직 아이 계획도 없고 집에 붙어있는 시간도 길지 않고요. "
하긴 김대리네는 맞벌이고 아이도 없어서 저녁도 주로 밖에서 먹을게 분명하다. 집은 잠만 자는 용도겠다고 하대리는 생각한다.
"그럼 자기네는 재테크를 뭘로 해? 집에 관심도 없고 김대리 보니 주식도 안 하는 거 같은데... 다 은행으로 go go야?"
"아뇨. 전 재테크 관심 없고요 신랑이 혼자 해요. 이런 말 하면 좀 그런데... 신랑이 계속 비트코인을 사고 있어요."
"엉? 비트코인을 산다고? 근데 그것만 사는 거야? 다른 재테크는 안 하고?"
"네. 비트코인이 답이라며 혼자 계속 비트코인만 사요. 사실 정확히 언제부터 사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제가 잘 모르기도 하고요. 주식도 안 하고 오로지 비트코인만 사고 있네요. 전 그냥 쓰고 남은 돈 저금하고 있고요."
하대리는 멍한 표정으로 김대리를 바라본다. 멀쩡한 부동산, 주식 놔두고 비트코인만 사고 있다는 김대리 신랑도 대단하지만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김대리가 더 대단하게 보인다. 아무리 재테크에 관심이 없고 신랑을 사랑해도 그렇지 비트코인만 사는 신랑을 그냥 두다니... 세대가 달라서 그런가? 싶다.
"나도 비트코인은 조금 투자하고 있어. 그런데 불안해서 비트코인만은 못 사겠던데. 사실 배아파리즘으로 걸쳐놓는 거지 급등락이 심해서 장기투자는 못하겠더라고. 보고 있으면 심장이 벌렁거려서 원. 투자에 정답은 없는 거니깐. 김대리 신랑도 대단하다. 김대리도 대단하고. 그래도 자가 아파트 한채 정도는 사놓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안 그래도 신랑한테 이사 다니지 말고 경기도에 조그마한 아파트라도 사자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비트코인에 돈이 묶여 있어서 안된대요. 지금 가격도 많이 떨어져서 팔지도 못하고요. 신랑은 매달 월급만 받으면 계속 비트코인만 사고 있네요. 전 알아서 하라고 했어요. 언젠가 저희에게도 기회가 오겠죠 뭐. "
"임 과장님도 그렇고 주변에 자가 있는 사람들 보면 부럽지 않아? 물론 자기는 젊고 능력 있으니까 기회는 많지만 말이야. 아무리 벌어도 집값 오르는 건 못 따라가잖아. 전셋값도 계속 올려줘야 하고. 의외네 김대리."
"저도 사람인데 부럽죠. 그런데 뭐 임 과장님이나 하대리님은 말씀하신 것처럼 저보다 연배도 있으시고요, 또 학령기 자녀들도 있고요. 조급하게 생각할 수가 없는 게 돈이 없어요. 신랑이 비트코인에 다 넣어두었다고 하니 어쩔 수 없죠 뭐. 다행히 저는 신랑과 둘 뿐이라 직장과 가까운 곳 어디든 가서 살면 돼요. 그래서 더 집에 스트레스 안 받나 봐요. 둘 다 여행 다니는 거 좋아해서요."
집이 단순히 먹고 자고만 하는 '사는 곳'인가? 집은 사는 곳이 아닌 가장 비싼 투자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김대리는 집을 그저 '사는 곳' 취급을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더욱 부동산에 열광하는 줄 알았는데 딴 세상에 사는 듯한 김대리 말을 들으니 하대리는 참 신선하다는 생각을 한다. 몰라서 투자를 못하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김대리처럼 회사 사무실이나 점심시간에 부동산에 관한 얘기를 자주 나누는데도 흔들리지 않기는 쉽지 않다. 하대리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김대리의 저 여유와 방관이 부럽기도 하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