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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밀라 May 07. 2022

전세에 대기업 다니는 김대리 이야기 #2.

사무실

자리에 앉자마자 김 부장이 부른다.


"김대리! 왔어? 내방으로 들어와 봐! " 


아... 정신없던 출근길 스타벅스 커피 마시면서 위로 좀 받고 싶었는데 저 김 부장은 또 왜 부르는 거지? 일단 들어가 보자. 역시나... 책상 위에 성경책이 놓여있다. 아침부터 창세기 스터디할 분위기다.


"부장님 급한 일 있으세요? 제가 지금 속이 좀 

  안 좋아서 화장실 좀 다녀오고 싶은데요..."


일단 자리를 피하고 볼 일이다. 어차피 내가 목적이 아니다. 나 아니면 다른 사원 부를게 뻔하다. 일단 창세기 설명 시작하면 기본이 30분이다. 거기에 성경 말씀이 가득한 책도 숙제로 얹어 주신다. 친절한 김 부장님. 


직원들 모두 김 부장님에게 성경책에서 창세기 설명만 들었다고 한다. 김 부장님은 '창세기 전문가'다. 어쩌면 성경책에서 창세기 부분만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화장실 핑계로 빠져나와서 김 부장님 안 보이는 탕비실로 일단 피했다. 몇 분 후 자리로 돌아와 내 사랑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다. 아... 이제 살 거 같다. 이 맛에 회사 다니는 거지. 임 과장님하고 눈이 마주쳤다. 고갯짓 하는 쪽을 바라보니 김 부장님 방에 윤대리가 불려 간다. 풋! 둘이 눈을 마주치며 웃는다. 


"김 부장 또라이 아침부터 자기 왜 부른 거야?"


사내 메신저로 임 과장님이 묻는다.


"창세기요. 설명할 준비를 잔뜩 하신 거 같아요."


"큭!"


임 과장님은 톱클래스 여우과다. 항상 라인을 중요시해서 임원들을 다 꿰차고 있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그들이라 그들도 나에게 관심 없고 나도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런데 유독 임 과장님은 본인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지 감히 임원들을 가까이하고 싶어 한다. 

이사님이 부장님께 볼일이 있어 사무실에라도 들리면 벌떡 일어나 인사하고 접대하려 한다. 


자기가 무슨 이사급 하고 맞먹으려고 하냐고. 도대체가. 그런데 이상한 건 이사님이 싫어하시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으로 사원들은 임원들이 오면 불편해서 인사만 하고 자리를 피하려 한다. 오로지 임 과장님만 임원들에게 먼저 다가간다. 참, 저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임 과장은 기초대사량이 큰지 밥은 많이 먹는데 삐쩍 말랐다. 그런데도 사무실에 오면 출근한 순간부터 과자를 달고 산다. 점심 식사 후에도 또 과자를 먹는다. 그리 많이 먹으면 과자도 비용이 꽤 들 텐데 역시나. 법인카드로 사무용품과 함께 과자를 잔뜩 주문한다. 해당 문구점엔 물론 문구 비용으로 영수증 처리해 달라고 한다.

박스에 고이 담아서 잘 숨겨두고 야금야금 잘도 꺼내 먹는다. 


어느 날인가는 퇴근하면서 A4 한통을 스윽 담아 가지고 가길래 뭐냐고 물어봤더니 집에서 쓰는 프린터가 있는데 종이가 떨어졌다고 한다. 정말 악착같은 분이다. 그런데 또 짠순이는 아니다. 점심도 가끔 사주시고 식후 차도 잘 사주신다.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원들 중 아이 엄마들은 법인카드로 슬쩍 아이들 문구용품까지 같이 사곤 한다. 김대리는 아이가 없어서 그런지 정말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임 과장님은 일 할 때도 여우 같은 느낌을 저버릴 수 없다. 일은 원칙대로 딱 자기 할 일만 한다. 자기 일이 끝나면 옆 직원이 아무리 바빠도 모른 척하며 귀에 이어폰을 꽂고 몰래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몰아본다. 그 바쁜 와중에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다. 일을 빨리 끝내는 이유가 있다. 무슨 일을 맡기면 그건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한다. 자기 일이 아닌 게 너무 많다. 이거 쳐내고 저거 쳐내니 일이 없다. 제일 편하게 회사를 다니는 분이다. 남들이 뒤에서 아무리 욕해도 본인 귀에 안 들어가니 무슨 상관인가 싶다. 결국 우리 중 임 과장님이 회사에서 제일 마지막까지 살아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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