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오늘 점심시간 주제는 단연코 주식이다. 다들 주식투자를 소소히 시작하게 됐다. 계기는 이렇다.
옆 부서의 하대리가 몇 달 전 추천받은 주식이 있다며 우리에게 알려줬다. 하대리는 실행력이 빠른 직원이다. 그런 주식을 추천받아도 우리 같으면 한 귀로 듣고 흘릴 텐데 하대리는 허투루 듣지 않고 꼭 실행한다.
하대리가 그 주식으로 재미를 봤다. 일단 이익 실현하려고 매도했는데 오르는 낌새가 심상치 않아서 다시 그 주식을 샀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고 우리는 하대리에게 몰려갔다.
"하대리, 그 주식 아직 갖고 있어?"
임 과장이 묻고 박 대리와 김대리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찰싹 붙는다.
"그럼요. 지금이라도 들어오세요. 더 오를 거 같아요. 이거 추천해준 옆 부서 팀장님은요,
추가로 1000만 원어치 더 샀대요!"
"그 주식... 정확히 뭐하는 회사야?"
"그게 뭐가 중요해요. 오르는 게 중요하지.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바이오가 어쩌고... 항암이 어쩌고 그래요"
"오, 바이오! 그거 돈 되겠다. 우리도 사자!"
그렇게 해서 임 과장, 박 대리, 김대리는 모두 그 바이오 주식을 각 100만 원어치씩 샀다. 그 뒤 우린 같은 주식을 가졌다는 이유로 강한 동지애가 생겼다. 출근 후 조금 지나면 메신저가 날아든다.
'봤어? 대박. 시작부터 10% 올랐어!'
임 과장이다.
오늘 무슨 2차 임상시험 결과 발표 예정일이라고 장 시작하자마자 급등이다.
'봤어요!! 더 살걸 그랬어요~~! 아쉽다, 진짜! 오늘 더 살까요?' 쿠폰 요정 박 대리다. 짠순이 박 대리는 나
중에 우리 중 가장 크게 주식투자를 하는 직원이 된다.
'아우~~ 왜 이리 시간이 안 가는 거야~. 빨리 점심시간 됐으면 좋겠구먼~ 주식창 열고 얘기하고 싶은데!'
샤방샤방 이쁜 김 대리다. 모두 신났다. 신날 수밖에 없다.
'근데 우리 오늘 점심 뭐 먹어요? 주가도 올랐는데 뭐 맛난 거 먹으러 가요! 후식까지!'
떡볶이 마니아 하대리다. 사실 하대리는 모든 음식을 잘 먹는다. 도대체가 맛없는 음식이 없다. 먹으면서, '배불러 죽겠어 더 이상 못 먹어'를 달고 사는 직원이다.
'아냐, 오늘 저녁에 다들 약속 있어? 맥주 한잔 어때? 자축 파티해야지~ 점심은 시간 없으니 간단하게 샌드
위치랑 커피로 하자. 오늘은 뭘 먹기보다 대화할 시간이 필요해. 안 그래?' 임 과장이다.
맞는 말이다. 지금은 밥이 중요하지 않다. 주식창이 시뻘건데 같이 수다로 자축을 해야 한다. 이런 얘기는 해도 해도 재미있다. 저녁 맥주도 다들 오케이다. 생각만 해도 목이 시원하다. 캬~!
'그럼 점심은 근처 서브웨이로 가자. 김대리가 10분 일찍 나가서 자리 잡고 알아서 주문해두고 있어' 임 과장이 일사천리로 지시한다.
'넵!^^'
탁탁 메신저 소리가 오간 후 다시 조용히 일들을 한다. 일을 하는 건지 그냥 시간이 가길 기다리는 건지. 다들 눈치껏 중간중간 핸드폰으로 주식창을 열어 확인한다. 슬쩍 보니 박 대리가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입을 가리며 웃는다. 아... 얼마나 더 오른 거야! 궁금해 죽겠네. 시간아 빨리 가라~.
김대리가 자리 잡아둔 서브웨이로 서둘러 갔다. 서둘러 나왔는데도 점심 먹으려는 직원들이 몰려서 엘리베이터를 몇 번 보냈다. 우린 조용히 사무실 밖을 빠져나온 후 탄성을 질렀다.
"얼마 오른 거예요? 진짜 일이 안되더라고! 더 넣을걸 그랬어! 지금이라도 더 넣을까요?" 쿠폰 요정 박 대리다.
"됐어! 이 정도로만 해. 그리고 너무 올라서 무섭다. 우리 조금만 이따 빠져나오자. 그냥 재미로 하는 건데
이익 실현하고 맛난 걸 먹든 개인적으로 필요한 거 사든 해야지. 초심자의 행운 몰라?" 역시 여우 임 과장
이다.
"에이, 과장님 그래도 좀 아쉬워요. 좀 더 오를 거 같은데." 김 대리다.
"하대리 생각은 어때?, 자기가 이거 우리 추천해줬잖아."
"전 이 정도면 만족해요. 제가 제일 먼저 샀기 때문에 매수 가격도 제일 저렴하고요. 어차피 큰돈 안 들어간
거라 욕심내고 싶지 않아요. 이익 실현하고 주말에 신랑하고 애들이랑 소고기나 먹어야겠어요."
"응. 나쁘지 않지. 저렇게 하대리처럼만 하면 주식 투자 왜 망하겠어. 욕심내다 망하지. 나도
하대리 뺄 때 같이 빼야겠다. 나도 여기까지." 임 과장이다.
이렇게 되면 김대리와 박 대리가 남는다. 우유부단 박 대리는 다들 매도한다고 하자 겁이 난다. 그런데 더 오를 거 같아서 미련도 남고 욕심도 난다.
"김대리는 어떻게 할 거야?"
"저요? 저도 그냥 뺄래요. 어차피 아는 주식도 아니고 재미로 한 건데 혼자 갖고 있으면 무슨
재미예요."
쿠폰 요정 박 대리는 말이 없다. 아직 결정을 못한 눈치다. 매일 쿠폰으로 1000원, 2000원 아끼는데 주식으로 한 번에 몇만 원의 돈을 버니 이게 무슨 세상인가 싶다. 1000만 원어치 샀으면 어땠을까? 아니, 500만 원어치라도. 자꾸 후회가 맴돈다. 묵묵히 맛도 느껴지지 않는 샌드위치만 씹는다. 목이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