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대리 편
하대리는 오늘 기분이 좋다. 동료들이 자기 덕에 모두 바이오 주식을 샀고 박 대리 빼고는 수익실현을 했다. 본인도 이 바이오 주식에 대한 정보를 옆 부서 팀장님께 우연히 들었다. 팀장님이 가볍게 들어가 보라며 알려주신 거다. 사실 처음 들어갈 때만 해도 이 정도로 오를지는 몰랐다. 팀장님은 욕심내지 말고 적당한 수익선에서 빠져나오라고 하셨다. 너무 오르는 거 같아서 본인은 1500만 원의 수익을 보고 빠져나왔다고 한다.
왠지 그 말이 맞는 거 같아서 하대리도 오늘 다른 동료들과 함께 매도했다. 하대리 순수익은 200만 원. 500만 원어치 사서 40%의 수익률이다. 하대리는 20대 때부터 조금씩 주식을 해왔다. 크게 재미도 보지 못했고 손해도 보지 않았다. 워낙 적은 금액으로 했고 겁이 많아 조금만 올라도 팔고 조금만 떨어져도 팔았기 때문이다. 팀장님은 매도한 주식은 더 올라도 다시 쳐다보는 거 아니라며 '관심종목'에서 그 주식을 삭제하라고 하셨다.
하대리도 안다. 성향상 주식으로 돈을 벌기 힘들다는 것을. 남들은 잘도 벌던데 그게 하대리에게는 쉽지 않다. 이번 200만 원의 수익이 역대급 수익이다. 항상 5만 원, 10만 원 수익만 봐도 바로 팔고 나왔다. 소고기 사 먹는다는 심정으로. 그러다가 확 물린다고 다들 조심하라고들 하는데 아직까진 괜찮다.
주식을 장기 투자하려면 종목 공부를 해야 한다는데 하대리는 그 정도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그저 남들이 추천해주는 주식만 기웃거릴 뿐이다. 그나저나 매도하지 않은 박 대리는 용감하다고 하대리는 생각한다. 주식 시작은 박 대리가 하대리보다 늦지만 투자는 왠지 하대리보다 잘하는 거 같다고 생각한다. 처음 들어간 주식인데 매도도 안 하고 더 기다리겠다고 하다니. 쿠폰 요정 박 대리가 다시 보였다.
하대리는 수익이 빨강으로 바뀌는 순간부터 수익실현을 하고 싶어서 손가락이 근질거린다. 주식창을 닫으면 되는데 그걸 못해서 손가락이 '매도' 버튼을 눌러버린다. 진득한 박 대리가 부럽다. 그래 놓고 이 정도 수익이면 됐다고 말은 쿨하게 했다. 아직 그 주식을 가지고 있는 쿠폰 요정 박 대리가 부럽다 못해 살짝 배가 아프다. 얼마나 오르려나. 동료들에게 말하지 않고 내일 다시 그 주식을 매수할까 생각 중이다. 팔고 나니 너무 허전하고 아쉽다. 이건 아닌 거 같다. 그래, 내일 다시 사야겠다.
떡볶이 마니아 하대리는 경기도 구축 아파트에 산다. 자가이긴 하지만 집값이 안 올라도 너무 안 오른다. 다른 곳들은 잘도 오르는 거 같은데 자기가 사는 곳만 안 오르니 짜증도 나고 남들에게 말하기도 창피스럽다. 요즘은 사는 곳이 그 사람의 성공 여부를 말해주는데 말이다. 초등학교도 가깝고 마트도 가깝다. 서울 나가기가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서울 아닌 다음에야 경기도는 다 마찬가지 아닌가? 살기에는 너무 좋은데 집값이 안 오르는 게 유일한 단점이다. 직장 동료들이 집값 올랐다며 떠들며,
"하대리도 자가잖아! 집값 많이 올랐겠네~. 신혼 때부터 집 샀잖아!"
미소 지으며 하대리가 말한다.
"에이, 뭘요. 많이는 아니고요. 서울 상승분 따라갈 수 있나요. 그냥저냥이요."
굳이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대충 얼버무린다. 그들도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다. 본인들 집값 오른 걸로 좋다고 한참 떠들다가 미안한 마음에 묻는 거니까 그냥 장단만 맞춰주면 된다. 사회성 좋은 하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