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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준성 Apr 10. 2018

반가워 요테이산, 반가워 니세코|요테이산

홋카이도 한 달 살기

피곤한 몸과는 달리 아침 일찍부터 정신이 맑아 온다. 출근해야 할 때는 아침에 눈뜰 때마다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 힘들고, 몸은 밤새 누가 때린 것처럼 욱신거려 스마트폰의 알람을 5분씩 늦추기 일쑤였는데, 여행지에서는 늦잠을 더 잘 수 있어도 그게 잘 안 된다. 아직 잠들어 있는 아이들 이마에 입술 도장을 한 번씩 찍고 낯선 집에서의 하루를 시작했다.  


거실로 나서자마자 창문부터 활짝 열었다. 폭염에 시달리던 한국과는 달리 가을 색이 걸쭉하게 녹아든 아침 공기가 몽롱한 정신을 마저 깨웠다. 아직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이른 계절이었지만 한국의 가을과 같은 시원한 바람이었다. 구름 하나 없는 맑은 하늘 아래 ‘떡’ 하니 요테이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미니 후지산이라고 불린다는 요테이산. 고깔 모양으로 반듯하게 솟은 것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매일 아침 일과로 요테이산 기를 받아 보는 것도 좋겠는걸?’



슬슬 숙소가 눈에 들어왔다. 겨울이면 스키어들로 복작거렸을 곳이지만 여름에는 이따금 찾는 주말 여행객이 전부인 곳. 호텔처럼 단기 여행객을 위한 숙박시설이 아니라 양념 몇 가지만 사면 집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같은 동양 문화라 그런지 부엌은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습식 화장실 문화에 익숙해서 건식 화장실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분명 같은 바닥인데 변기에 앉을 때의 맨발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무리 배가 아파도 맨발로는 문(?)이 잘 열리지 않는 느낌! 화장실은 신발을 신어줘야 제맛인데 말이야. 


편의점에서 사 온 쌀과 달걀,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간단한 반찬으로 아침을 해 먹었다. 쌀의 질은 물론이고 밥솥도 한국과 별 차이가 없어서 고슬고슬 입맛에 맞았다.  



밥도 먹었고 슬슬 마을 구경에 나섰다. 가장 먼저 히라우 웰컴센터로 가봤다. 도둑이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어젯밤 가방 구출작전을 감행한 현장이 막 궁금하고 가보고 싶었다. 동네 구경 나온 관광객처럼 어슬렁어슬렁 둘러보았다. 다행히(?) 아니 당연히 별일은 없어 보였다. 크크.


볼수록 매력적인 니세코. 도심과는 떨어져 한적하면서도 스키어들을 위한 빌라들은 독립적이고 깨끗해 보였다. 게다가 겨울이었으면 떠들썩했겠지만 여름의 스키장은 한갓지고 조용했다.  



그랜드 히라우를 지나는 큰 도로에 닿았다. 큰 도로라고는 하지만 왕복 2차선에 불가하다. 인구가 많지 않은 홋카이도에서는 도로 대부분이 딱 요 정도였다. 좁은 도로가 더 어울리고 큰길은 사치 같이 여겨지는 곳. 그런데도 차가 밀리는 경우가 없이 늘 한적한 곳. 눈이 많이 오는 편이라 지붕은 첨탑처럼 뾰족한 집이 많이 보였다. 스위스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조용한 시골 마을 같은 매력에 점점 빠져들어 갔다. 다시 한번 일상에서 벗어남을 실감했다. 



지나는 길에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마을이 크지 않을뿐더러 홋카이도의 큰 도시였던 삿포로의 버스 정류장과 비교하면 시골 간이 정류장보다도 못하게 느껴졌다. 일본어라도 잔뜩 적힌 버스 노선표를 기대했건만 보이는 건 광고 전단뿐. 두세 개의 노선 정도가 보이긴 하지만 하나는 어제 타고 왔던 임시 셔틀버스였고 다른 버스도 배차 간격이 1시간이 넘었다. 천방지축 아이 둘에 유모차까지……. 이대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주변 여행을 다니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아내에게 점점 미안해지면서 렌트를 안 한 것이 후회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항에서부터 렌트를 하는 건데. 


“미안해.”

“뭐가?”

“렌트 하지 말자고 한 것. 버스 정류장을 보아하니 차 없이 주변 여행을 다니기는 쉽지 않겠다. 크크.”


아내가 핀잔이라도 줄까 봐 잽싸게 근처에 렌터카 사무실이 없는지 검색했다. 마침 정류장 부근에 도요타 출장소가 있어 아내의 손을 끌고 들어갔다. 



뻘쭘하게 두리번거렸더니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직원이 나와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아마 홋카이도에 와서 처음으로 외부인과 대화 같은 대화를 한 것 같다. 15일까지만 빌리면 같은 비용으로 한 달 동안 써도 된단다. 한글 지원되는 내비게이션과 카시트도 프로모션으로 저렴하게 해줄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반납도 여기가 아닌 공항에서 바로 해도 되고. 한 달이나 있을 거면 공항에서 빌려 오지 그랬냐고 물어본다. 영어를 못 알아듣는 척했다. 사실 잘 못 알아듣기도 했고.  


“뭐래? 얼핏 듣기로는 차가 없다는 것 같은데?” 

아내에게 물어봤다.


“응. 작은 지점이라 보유한 차가 없기도 하고 지금이 일본 최대 명절인 ‘오봉절’이라 당장 빌려줄 차가 없다고 하네. 4~5일 정도 후에나 받을 수 있다고.”

“에고. 그냥 처음부터 차를 빌릴 걸 그랬네. 미안. 그랬으면 어제 같은 일도 없었을 텐데.”


“아니야, 덕분에 오타루도 보고 잊지 못할 추억도 만들었잖아. 모든 게 계획대로 되면 여행의 묘미가 있겠어? 아마 어제 일은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아. 한 며칠 여유롭게 니세코 주변이나 둘러보자.”




ㅇ 매일 아침 인사를 주고받았던 요테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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