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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준성 Apr 17. 2018

여행은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그랜드 히라우

홋카이도 한 달 살기

오봉절이라 렌터카도 며칠 뒤에나 받을 수 있었기에 차가 없는 동안 숙소와 가까운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안누푸리산에 있는 네 곳의 슬로프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많은 숙소가 모여 있는 곳이 우리가 머무는 ‘그랜드 히라우’이다. 스키어를 위한 리프트는 겨울에만 운영하지만 관광 곤돌라는 여름에도 운영을 한다. 안누푸리산과 요테이산을 한눈에 담기 위해 그랜드 히라우 곤돌라를 타보기로 했다. 곤돌라는 애증(?)의 그랜드 히라우 웰컴센터와 알펜(Alpen) 호텔 사이에서 탄다. 



시간이 일러 잠시 알펜 호텔을 들러 보았다. 이곳은 여름 시즌 주말마다 1층 카페 앞에서 미니 장터를 연다. 오전 8시에 시작해서 10시까지 2시간 동안만 하는데 규모는 작아도 가격이 저렴하고 품질은 뛰어나다. 프룬(prune, 말린 서양 자두)을 하나 사 먹었는데 당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간 마트에서 사 먹은 것과는 확실히 다른 맛이었다. 그 맛이 잊히지 않아서 이후에도 간간이 마트에서 프룬을 사 봤지만 호텔 주말 장터에서 맛본 그 프룬 맛을 따라가지 못했다. 


관광객을 위한 작은 주말 장터


‘핫케이크 700엔, 카페라테 300엔? 오호 호텔에 있는 카페 치고는 생각보다 싼데?’

커피 중독자인 내가 며칠 동안 커피를 못 마셨더니 금단 현상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아내가 장터를 돌아보는 동안 슬쩍 카페 메뉴판을 스캔했다. 편의점에서 몇 가지 커피를 사 보았지만 일본인 입맛에 맞춰진 커피는 단맛이 엄청 강했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커피 맛 액상과당’을 마시는 듯했다. 맛난 커피에 목말라 장을 보고 호텔 카페로 들어갔다. 


“읔~ 웩~ 뭔 커피 맛이 이러냐?”

“거봐. 홋카이도는 커피가 맛없다고 했잖아.”


역시나 아내가 경고한 대로 커피는 정말 맛이 없었다. 브랜드를 따지지 않고 ‘카페라테’라면 뭐든 잘 마시고 좋아하는데 홋카이도의 커피는 못 마실 수준이었다. 부드러운 우유 사이로 진한 커피 맛이 배어 나와야 하지만 물 탄 우유에 인스턴트커피 반 숟가락을 녹여 놓은 듯했다. 홋카이도산 우유라 하면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수준급인데 어떻게 그 우유를 가지고 이런 맛 밖에 못 내는지. 



대충 후루룩 입에 털어 넣고 곤돌라를 타러 호텔을 나섰다. 관광 곤돌라는 여름 시즌 7월부터 9월 말까지 운영한다. 어른 두 명에 2,200엔을 내고 탑승했다. 아이들은 공짜. 


“아차차.”

“왜?” 

“동네만 산책한다 생각해서 50밀리 단렌즈만 달랑 챙기고 풍경용 광각렌즈를 안 가지고 왔어. 흑흑.”


높은 산 중턱의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분명 아래는 맑았는데 정상은 구름 속을 걷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윤정이가 입을 벌리고 막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윤정아, 입 벌리고 뭐해?”

“아~~, 구름 먹는 거야. 아~~.”

“크크크. 그만해. 수정이가 따라 하잖아.”

언니 바라기 수정이가 뭔지도 모르고 윤정이가 하는 것을 따라 한다. 


“아~~ 쩝쩝, 아~~”

“그만하지? 너 구름 많이 먹으면 혼자 날아간다.”

“읔, 퉤!”


보이지 않는 풍경은 좀 이따가 보기로 하고 일단 휴게소에 들어갔다. 간단하게 먹을 것을 사서 쉴 수 있는 공간도 있고, 안누푸리산에서 자생하는 식물과 곤충들을 볼 수 있도록 미니 전시장처럼 꾸며 놓은 곳도 있었다. 비록 일본어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자연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관찰 삼매경. 아빠는 그런 아이를 카메라에 담는 사진 삼매경. 잠시 둘째 사진을 찍다 보니 윤정이가 보이질 않았다. 


휴게소에는 안누푸리산의 자연이 간략하게 전시되어 있다.


“어! 윤정이 어디 갔어?”

“어디 갔겠어? 저기 체험한다고 벌써 줄 섰어.”


체험의 여왕 윤정이가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도토리, 솔방울, 나뭇가지 등 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동물을 만드는 체험을 하겠다며 줄을 서고 있었다. 영어라면 몰라도 일본어를 알아듣기는 힘들 것 같아 말리려는데 굳이 하겠단다. 700엔을 주고 다람쥐 만들기를 선택했다. 다행히 나이 지긋한 선생님이 아주 쉬운 영어로 설명해 주었다. 덕분에 체험이 끝나고 나서 자기가 영어를 알아들었다면서 자랑을 한다. 



“아직 초반이긴 하지만 그렇게 해보고 싶다던 한 달 살기를 해본 느낌이 어때?” 


정상 휴게소에 있는 놀이방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멍하니 넋 놓고 보고 있는데 아내가 질문을 했다. 


“음…… 아직도 적응이 안 되네. 여행이라 하면 일정을 꽉 차게 짜고 하나라도 더 보며 다니는 것이 다인 줄 알았잖아. 이렇게 가볍게 보내면 나중에 아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찍기 식으로 다녀봐야 뭐가 남나 싶기도 하고.”


“맞아. 나도 윤정이랑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할 때 처음에 적응이 안 되더라고. 그런데 하루하루 보내다 보니 느긋하게 즐기는 법이 저절로 터득되더라. 하루 딱 하나만 깊이 있게 파보고, 마음이 급하지 않으니 전 같으면 그냥 스쳐 지나갈 만한 것도 눈에 들어오더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빨리 움직이자며 소리치지 않아도 돼서 좋았어.”



“그런 것 같아. 그동안 캠핑 다닌다고 애들 이리저리 끌고 다녔는데……. 아이들한테 뭔가 보여 준다면서 사실 우리 기준에 맞췄던 것 같아. 전 같으면 여행지에 와서 이런 놀이방에서만 놀면 마음이 급해지고 뭔가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았거든. 그런데 한 달 살기는 다르긴 하네. 이렇게 멍하니 아이들이 놀이방에서 노는 것만 봐도 좋고. 조급하지 않아서 좋다.”


창밖으로 먹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충분히 놀았는지 윤정이가 밖으로 나가잖다. 광각렌즈를 챙기지 않아서 시원스러운 풍경은 담지 못했다. 하지만 덕분에 아이들과 느긋하게 쉼을 즐겼다. 숙소와 가까운 곳이라 다시 오면 된다고 했지만 결국 여행이 끝나 갈 때까지 다시 오르지는 못했다. 역시 여행은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 다음은 없을 수도 있다. 


지금의 가족 모습도 금방 변할 것이다. 순간에 충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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