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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준성 May 01. 2018

딸은 아빠를 닮는다|밀크공방

홋카이도 한 달 살기

결혼 후 생애 첫차(14만 킬로를 탄 중고차였다)를 샀을 때도 이렇게 기쁘지 않았다. 며칠 만에 받은 렌터카 키를 돌려 떨린 마음으로 시동을 걸었다. 운전대도 반대고 차선도 반대이지만 워낙 차가 없는 동네라 금방 적응이 되었다. 홋카이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동안 경적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내가 누를 일도 없고 누군가 나를 보며 소리치는 경우도 없었다. 여전히 조용하고 남을 배려하는 일본인이다. 딱 한 번 경적을 들었는데 설마 하며 쳐다본 운전석에는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이 앉아 있었다(홋카이도는 호주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홋카이도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아직 운전이 익숙하지 않아서 가까운 ‘밀크공방(Milk-Kobo)’에 들렸다. 니세코 지역의 최고 인기 관광명소는 아마도 밀크공방이 아닐까 싶다. 직접 운영하는 다카하시 목장에서 매일 아침 공급되는 신선한 우유로 만든 요거트, 아이스크림, 빵 등은 그 맛이 글로 표현이 안 될 정도다. 목장과 공방이 같이 있기에 가능한 조합인 것 같다. 


여기의 최고 인기 메뉴는 소프트 아이스크림과 우유 젤라또. 유지방이 많아 느껴지는 느끼함이 아니라 생우유의 풍부하면서도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강해서 좋다. 이곳 우유 아이스크림을 맛보고 나면 그동안 먹어 본 우유 아이스크림은 그냥 이름만 ‘우유 맛’이었구나 하는 허탈감이 들 정도다. 동시에 여길 떠나고 나면 이제 어디서 이런 맛을 보지? 하는 걱정까지 먼저 들 정도다.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뿐만 아니라 빵 종류도 인기 메뉴. 한층 한층 벗겨 먹는 케이크인 ‘미루쿠헨’이 인기인데 개인적으로는 단맛이 강해서 호불호가 갈릴 것 같았다. 대신 슈크림과 치즈 타르트는 진한 치즈의 맛이 고소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아서 좋았다. 또 아이스크림 말고도 요거트는 꼭 먹어 봐야 한다. 단맛이 약하게 나면서도 뻑뻑하지 않고 우유처럼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이 빵과 아주 잘 어울린다. 



이후에도 주변 여행을 다녀오면서 밀크공방에 수시로 들렸다. 니세코를 떠나면서 이제 더는 밀크공방의 요거트와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아쉬웠었다. 차도 생겼으니 본격적으로 냉장고를 채워야지. 밀크공방을 나와 간단히(?) 마트를 털고 숙소로 들어왔다. 


일상을 떠나 여행을 나섰지만 마냥 놀 수만은 없다. 내년에 초등학생이 되는 윤정이는 다른 것은 몰라도 한글 정도는 익히고 가야 한다. 아빠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거실 탁자를 책상 삼아 엄마와 딸이 마주 앉았다. 


전쟁의 시작이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보통은 끝이 좋지 않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했다. 운전도 부부간에 가르치지 말라던데 공부도 그와 같은 것 같다. 더 놀고 싶어 뭉그적거리고 피해 갈 궁리만 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차라리 빨리하고 놀지 그걸 못 한다고 뭐라고 한다. 



뭐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책상 앞에 앉으면 갑자기 목이 마르고 배가 아픈 것 같았다. 연필은 딱! 원하는 만큼 뾰족하게 깎아야 공부가 되었다. 지우개와 연필을 대충 아무 데나 두고는 어디 있느냐고 엄마한테 물어보면, ‘네가 둔 걸 네가 알지!’라는 뻔한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맨날 혼나면서도 지우개 가루는 대충 손으로 책상 아래로 쓸어버리기 선수였고, 공부 그만하고 잠을 자라고 할 때는 고집 피우며 더 한다고 난리 쳤었다. 


오늘도 역시나 전쟁은 길어지고 나에게는 살얼음판이 이어진다. 딸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엄마의 심정도 이해가 되니 누구의 편을 들 수도 없다. 도와주지 못할 거라 훈수도 마른침과 함께 삼켜버린다. 



‘짝꿍, 근데 그거 알아? 사실 내가 그랬어. 가끔 윤정이 공부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왜 웃냐고 물었지? 크크 예전의 날 보는 것 같아서. 엄마한테 혼나도 돌아서면 바로 잊고 장난감 가지고 ‘피웅, 피웅’ 놀았지. 엄마도 그런 날 보며 어처구니가 없으셨을 거야. 짝꿍이 지금 윤정이를 보는 것처럼 말이야. 왜 그걸 이야기 안 했냐고? 그랬다가는 ‘이게 다 당신 유전자 때문이야!’라는 놀림을 계속 받을까 봐. 공부시킬 때마다 미안해해야 하니까.’




<Travel Tip>

홋카이도 운전


도심을 벗어나면 고속도로를 제외하고는 50~60㎞ 도로가 대부분이다. 소도시 간을 이동할 때 양쪽 차선을 통틀어 30분 동안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경우도 많은 한적한 도로에서 규정 속도를 지키는 것은 눈앞에 초콜릿 퐁듀를 가져다 놓고는 손을 묶어 놓은 격이다. 나도 모르게 속도가 오르게 된다. 이곳에서 운전하다 보면 낮은 속도를 계속 유지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조금씩(?) 속도를 내기도 했는데 한 달 내내 과속 단속 카메라는 본 적 없었다. 그만큼 일본인들은 알아서 규정을 잘 지키는 편이라는 뜻이다. 뭐 과속을 하라는 뜻은 아니고 마음이 바쁘지 않도록 일정을 빠듯하지 않게 짠다면 운전이 어렵지 않다는 뜻이다. 나 아니면 앞지르기하는 차도 없었으니까. 


혹시 모르니 국제운전면허증과 여권은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한다. 또한 낮에는 차가 가끔 다니기에 헷갈릴 일이 없는데 밤에는 역주행하는 듯한 자신을 보며 놀랄지 모른다. 밤 운전은 특히 조심하는 게 좋다. 그리고 마지막! 깜빡이 스위치와 와이퍼 스위치가 서로 반대인 것은 한 달이 지나서도 결국 적응 안 되었다. 틀려도 사고 나지는 않으니 그냥 웃고 넘길 여유를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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