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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준성 May 08. 2018

가족에도 인연이 있다|삿포로 마루야마 동물원

홋카이도 한 달 살기

“왜, 벌써 가려고요? 불편했어요?”


“아니요. 전혀요. 정말 좋은데 서온이가 ‘비에이’의 꽃밭을 꼭 보고 싶다고 해서 어쩔 수가 없네요. 미안해요.”


원래 일주일 정도를 같이 있기로 했었는데, 서온이가 여행 책자에서 꽃이 가득한 비에이-후라노 투어를 보고는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단다. 하루 늦게 온 것도 모자라 계획보다 먼저 떠나겠다니……. 


서운한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가 하고 싶다는데 말릴 수가 없다. 게다가 삿포로에서도 북쪽으로 4시간은 족히 올라가야 하는 곳이라 니세코에서 바로 가기는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계획보다 하루도 아니고 이틀을 먼저 삿포로로 가서 다음날 비에이-후라노 버스투어를 한단다. 



“짝꿍, 우리도 삿포로로 따라갔다 올까?”

“자기 친구도 아니면서 정말 서운한가 보네.”

“아니, 뭐…… 겸사겸사.”

“난 좋아. 안 그래도 여행 기간에 한국 가지고 갈 선물들도 사고 삿포로 동물원도 구경할 겸 한번 가려고 했었어.”

“우와! 아빠, 그럼 우리 언니 따라가는 거야? 우와!”


서운한 마음에 입이 툭 튀어나와서는 괜스레 투정 부리던 윤정이도 얼굴에 꽃이 피었다. 미안해하던 서온이도 한시름 놓고 다시 둘이 하나가 되었다. 


홋카이도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인기 관광지 중 하나인 아사히카와 시 아사히야마 동물원(Asahiyama zoological park, 旭山動物園)이 눈에 띄었었다. 남쪽에 있는 니세코에서는 적어도 5시간은 운전해야 갈 수 있는 북쪽에 있어 포기했었는데 서온이네와 함께 삿포로에서 동물원에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차가 작아서 서온이네를 먼저 굿찬 시내 근처 버스 정류장으로 데려다주고 우리도 서둘러 삿포로로 향했다. 며칠 동안 운전을 해봐서 무리가 없을 것 같았는데, 삿포로가 점차 가까워지자 신호도 많아지고 일방통행도 제법 보인다. 땀으로 손이 젖을 때쯤 삿포로 ‘마루야마 동물원(Maruyama zoo, 円山動物園)’에 도착했다. 


어른들만 600엔씩 내고 들어갔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1,000엔이면 연간 회원이 될 수 있단다. 365일과 1일의 차이는 단 400엔이라는 것을 알고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물론 1년 이내에 다시 올 일도 없지만 말이다.



준비해 온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고 동물원 산책을 시작했다(동물원 가운데에 있는 원숭이관에는 휴게소가 있어 가지고 간 음식을 먹고 쉴 수 있다). 규모가 크지 않은 동물원이지만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은 동물들이 많아서 아이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처음 본 스라소니는 의외로 놀라웠다. 얼굴은 고양이처럼 생겨서는 생각보다 덩치가 무척이나 컸다. 게다가 눈앞에서 생고기를 바로 먹는 모습은 오싹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이외에도 불곰, 에조 사슴 등 처음 접하는 동물과 각종 원숭이와 침팬지 같은 유인원류가 많았다. 역시 원숭이를 좋아하는 일본답다.



관람을 시작할 때부터 날씨가 끄물끄물하더니 기어이 비가 오기 시작했다. 급하게 출발하면서 우산도 챙기지 못했는데 다행히 같은 동물을 실내와 실외에서 동시에 볼 수 있게 되어 있고 실내가 상당히 깨끗해서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다만, 오후 4시쯤 곧 영업이 종료된다는 방송이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비 때문에 삿포로 시내 관광은 힘들 듯하고 그렇다고 이대로 헤어지기는 아쉽고. 좁은 차에 일곱 명이 구겨 타고도 하나 불편함 없이 삿포로 역으로 향했다. 


40년 넘게 살면서 많은 친구가 옆에 있다가 사라지고 다시 만나기를 이어 가고 있다. 30대까지만 해도 나와 뜻이 잘 맞는 친구가 최고였다. 나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관심 분야가 같거나 하면 쉽게 친해지고, 그중에 몇몇과는 죽고 못 사는 사이로 발전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좋았던, 영원할 것만 같았던 친구들과도 내가 결혼하고 가족을 이루면서 서서히 만나기가 힘들어졌다. 


나의 관심은 오직 가족으로 향하고 공통 관심사도 아이의 일상으로 수렴되다 보니 지인들과의 대화 주제는 가족과의 일상이 대부분. 그러면서 비슷한 시기에 가족을 이루지 못하거나 또래의 아이가 없는 경우는 점점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가끔 생기는 모임에 나가서도 혼자 홀가분한 기분이 들기는커녕, 집에서 아이들과 씨름할 아내가 걱정되고, 아이들 자기 전에 들어가야 ‘아빠~~’하며 뛰어나올 아이들을 한 번이라도 더 안아 줄 텐데 하며 마음이 바빠지기 일쑤였다. 


반면, 가족과 가족끼리의 만남, 또래의 아이들이 함께하는 가족 모임은 그런 미안한 감정 없이 점점 편하게 느껴졌다. 나만의 인연이 아니라 가족의 인연으로 자연스럽게 변화되는 과정이리라.  


나는 ‘인연’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사전적 의미에서 인연(因緣)은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다. 인(因, 인할 인)은 원인과 그에 따른 결과를 직접 만든 힘이고 연(緣, 인연 연)은 우연히 이루어진 간접적인 힘이다. 그러니깐 사람과 사람 사이가 맺어지는 것은 인위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이 모두 포함된다.  


결혼은 해야 할 시기에 옆에 있는 사람과 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아해도 너무 어릴 적 만남은 장기간 이어지기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인연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적당한 시기에 내 옆에 있었기에 함께할 수 있고, 필요한 시기에 우연히 함께 했기에 인연이 된 것이다.


가족을 이루면서 ‘인(필요한 시기)’의 영향을 특히나 받는다. 쉽게 약속을 잡고 전처럼 홀가분하게 다닐 수 없다. 언제나 가족이 먼저이고 가족과 함께하게 된다. 부모만 뜻이 맞는 가족이라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서로 성향이 맞지 않아 만날 때마다 싸운다든지, 아니면 성(性)이 달라 부담스러운 나이가 된다든지 하면 함께하기 쉽지 않다. 가족에도 인연이 있고 그것이 잘 맞아야 오래간다. 그런 점에서 서온이네 가족은 ‘인연’이다.

만남과 떠남에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다. 


먼 타국, 며칠 같이한 시간 속에서 그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Travel Tip>

마루야마 동물원

운영시간: 09:00~16:30(겨울철 16:00 종료)

입장료: 성인 1회권 600엔, 연간회원권 1,000엔, 소인 무료

주차: 700엔(온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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