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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준성 May 22. 2018

지금도 눈을 감으면 은하수 한 줄기가 찾아온다|도야호

홋카이도 한 달 살기

홋카이도 남부 ‘시코츠 도야 국립공원(Shikotsu-Toya National Park)’은 도야호, 요테이산, 노보리베츠, 시코츠호를 포함하고 있다. 그중 도야호(토야호, 토우야호)는 약 11만 년 전 분화로 인해 생긴 칼데라 호수이다. 


원형에 가까운 모양으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시코츠호에 이어 홋카이도에서 2번째, 일본에서 9번째로 큰 호수이다. 이후 7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도야호 중앙에 나카지마섬이 생겼다. 나카지마섬은 오지마섬, 간논섬, 만쥬섬, 벤텐섬을 묶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홋카이도라는 섬, 그 속의 호수, 그리고 다시 그곳에 생긴 섬.



도야호와 나카지마섬을 돌아보는 관광 유람선은 주간과 야간으로 운영된다. 주간에는 나카지마섬을 왕복하고 야간에는 불꽃놀이 관람이 주가 된다.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주간과 야간 중 하나만 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도 언제든 볼 수 있는 불꽃놀이보다는 나카지마섬을 둘러보는 것으로 정했다. 지금은 여름철이라 나카지마섬에 내려서 트래킹을 할 수도 있는데, 겨울에는 섬에 내릴 수 없다. 여름철에는 주간이 좋고 겨울철에는 야간 유람선이 좋은 선택이겠다. 


“아빠. 여기 바다야?” 

차에서 졸던 윤정이가 깨면서 하는 말이다. 


“아니~. 여기는 도야호라는 호수야.” 

“엄청 커서 바다인 줄 알았어. 바다 같은데 왜 파도가 없나 했지.”



선착장 앞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먹고 유람선에 올랐다. 사람들이 승선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갈매기 떼가 모여들었다.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게 없군. 심지어 선내 방송에서는 매점에 새우깡이 있으니 사라고 연신 외쳐댔다. 친절하게 한국어로 새우깡을 사라고 까지 하는 덕분에 우리도 한 봉지 샀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갈매기 먹이를 들고 유람선의 뒤편으로 모여들었다. 공중으로 던져진 새우깡은 호수에 닿기도 전에 갈매기들이 잽싸게 낚아챈다. 역시 하루 이틀 해본 솜씨가 아니다. 게다가 제법 무리에서 ‘짬밥’이 높은 놈들은 배 난간에 턱 하니 올라서서 받아먹는다. 노력 없이 먹는 모습이 못마땅하여 안 주려 하면 ‘꽥꽥’ 요상한 소리까지 지른다.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둘째 아이는 갈매기에게 그냥 던져주긴 아까운지 꼭 자기가 한 입을 베어 물고 준다. 아이들과 갈매기 먹이(?)를 거의 다 나눠 먹었었을 때쯤 나카지마섬에 도착했다.


도야호에는 4개의 섬이 있는데 그중 가장 크고 사람이 내릴 수 있는 섬이 오지마섬이다. 오지마섬에 내려도 되고 내리지 않고 바로 다시 타고 나가도 된다. 안내에는 30분 후 다음 배를 타라고 하지만, 섬을 충분히 즐기고 오후 5시 마지막 배가 떠나기 전에만 나가면 된다.



나카지마섬에는 두 가지 코스가 있다. ‘아카에조 소나무 코스’는 나카지마섬의 중앙까지 가는 코스로 왕복 4km 코스이다. ‘주유 코스’는 입구에서 약 700m 정도 이동 후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천천히 걸으면 30분 정도 걸린다.


나카지마섬 산책로는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동안 켜켜이 쌓인 낙엽송 잎으로 발걸음이 푹신푹신했다. 나무 냄새, 풀냄새, 흙냄새로 천천히 걷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힐링이 되는 듯하다. 같이 배를 탔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를 갔는지 나카지마섬 산책로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우리 발걸음 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아이들 웃음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는 것이 없다. 


“사슴아~~ 어디 있니~~. 아빠 사슴이 안 보여.” 

“그러게. 운이 좋으면 에조 사슴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오늘은 안 오나 보다.” 

“에조 사슴아~. 다음에 다시 오면 낯 가리지 말고 나오렴. 근데 아빠 여기 또 올 수 있을까?”



30분 정도의 짧은 코스를 1시간이 넘게 쉬엄쉬엄 산책을 즐겼다. 아이들과 함께 걸으면 보통 시간이 두 배 이상 걸린다. 시계는 이미 3시를 가리키고 있다. 지금 배를 타고 나가도 다음 여행지로 가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홋카이도에서 4~5시면 모두 마감을 하기 때문에 일정을 잘 짜야한다. 대신 오늘은 도야호 주변을 돌아보며 시간을 보내고 야간 유람선 불꽃놀이를 호숫가에서 보고 집에 가는 것으로 정했다.   


저녁 8시 30분에 출발하는 야간 유람선을 기다리기에는 아직 시간이 있어 도야호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 같았으면 그 시간까지 다른 관광지 하나라도 더 들르기 위해 아등바등 했겠지만,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일상 같은 여유로운 여행’이 이미 몸에 베여버렸다. 땅거미가 지는 호수를 멍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놀이터와 호수 주변 무료 족욕탕을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호수 너머로 해가 지는 것을 보며 유람선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불꽃놀이를 보기 위에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주변 호텔에서도 창문을 열고 하나둘 밖을 내다보았다. 도야호 야간 불꽃놀이는 하계 기간인 5월부터 10월까지 매일 밤하늘을 수놓는다. 


유람선 선착장에서 출발한 지 5분 정도 지났을까? 유람선 주변에서 연신 불꽃이 터졌다. 유람선 주변으로 2대의 보트가 크고 작은 불꽃을 계속 쏘아 올렸다. 유람선을 타고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도야호 주변에서 보는 불꽃놀이도 꽤 볼만했다. 



보통은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저녁은 집에서 먹도록 일정을 짠다. 돈도 돈이고 홋카이도의 관광지가 일찍 문 닫기에 달리 방법도 없다. 도야호 불꽃놀이를 보는 덕분에 처음으로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향했다. 도야호 근처를 벗어나면서 집들도 가로등도 띄엄띄엄 보인다. 차량 전조등 하나에 의지해 가로등도 없는 시골길을 달렸다. 아이들은 출발하자마자 타임머신을 탔다. 세상 부럽다. 눈뜨면 집일 테니 말이다. 


“우와~ 오빠, 저기 하늘 좀 봐봐.” 

속도를 줄이고 전조등을 살짝 껐다. 


“우와~ 저게 다 별이구나” 

광해가 없는 홋카이도 하늘. 빽빽하게 흩뿌려 놓은 별들이 말 그대로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차선도 없는 외길이라 혹시 마주 달려올 차가 걱정이긴 했지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차를 세우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촘촘히 박힌 별들이 손을 휘휘 저으면 닿을 듯 보였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별을 본 적이 없었다. 숨이 턱 하니 막혀 온다는 말이 이해가 됐다. 


“은하수다!!” 


차의 시동을 완전히 꺼 버렸다. 내 손 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다시 눈을 들어 하늘을 보는 순간. 하늘에는 한 줄기 은하수가 빛나고 있었다.   


“보여?” “응. 보여” 

... 

“우와. 보여?” “응~. 보여” 

... 

“아이들 깨울까?” 


“아니. 아마 꿈에서 더 많은 별을 새겨 넣고 있을 거야.”   





Travel Tip. 나카지마섬 유람선

http://www.toyakokisen.com  홈페이지에서 미리 탑승 할인권을 출력해가면 10% 할인을 해준다. 꼭 종이로 출력을 해가야 인정해준다. 

주간운항시간 :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여름철 기준, 30분 간격) 

야간운항시간 : 오후 8시 30분 1회 운행(선상 불꽃놀이 관람) 

탑승료 : 어른 1,42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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