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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쥰 Mar 25. 2021

쉬어가기-'반지의 제왕'에서 발견한 기생(寄生) (2)

기생충 옴니버스 VOL.1 (8)

나에게 남아 있는 힘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몸에 기생하는 마법이었다

나는 때때로 동물의 몸에 기생하기도 했다
물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뱀이었지

내가 기생하는 동물들은 생명이 단축되었다
어느 놈도 오랫동안 버티지 못했지

        - 해리포터와 불의 잔 中 , 볼드모트의 대사



들어가는 말

글머리에 인용한 대사는 '해리포터와 불의 잔'에 나오는 악당 볼드모트의 대사이다. 가히 기생충의 현현 (顯現)이라 볼 수 있다. 태고의 (숙주를 찾아 떠난) 기생충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아마 저 대사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볼드모트'가 기생충이라고 가정하였을 때, 소설 속 대사를 통해 추측한 볼드모트의 종숙주는 아마도 '뱀'이었을 것이다. 또한 마지막 줄에서 '생명이 단축된 동물'을 통해, 볼드모트가 숙주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공생'을 한 것이 아닌 '기생'을 하였음을 명백히 알 수 있다. 다만 기생충처럼 자손을 번식하고 개체를 늘리지 않았을 뿐이지, 볼드모트는 '기생'을 통해 살아갔던 것이 분명하다.


'볼드모트'가 기생충이었다면 종숙주는 아마 '뱀'이었을 것이다 (Warner Bros.ⓒ)


전편에서 문학작품, 성서에까지 나타난 '악의 기생성 (寄生性)' 대해 잠깐 다루어보았다. 영화 '반지의 제왕' 나타나는 악의 모습 이전 편에 다룬 고전과 성서  악의 모습, 그리고 해리포터  '볼드모트'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반지의 제왕'  '절대반지'에게서 보이는 기생충의 모습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절대반지와 기생충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기 전에,  가지  '기생충의 전략' 대해 함께 알아보자.


중간숙주의 행동을 조절하는 기생충의 전략

기생충이 숙주에게 감염되어 들어갔을 때 숙주에게 미치는 여러 가지 영향들이 있다. 예를 들면, 숙주의 외양 (appearance) 변화, 생식능력과 성결정 (sex determination)의 조절, 숙주의 수명과 체력의 조절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기생충이 다음 숙주동물에 쉽게 전파되게 하는데에 그 목적을 갖는다 [1]. 특히 포식자-피식자 (천적-먹이) 관계를 통해 전파되는 많은 기생충들은 포식성 종숙주 (천적)에 대한 취약성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중간숙주 (먹이)의 행동을 조절한다 [2]. 다시 말해 중간숙주에 감염된 기생충이 숙주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여 종숙주에게 쉽게 잡아먹히도록 조절하는 것이다.


가령 창형흡충 (Dicrocoelium dendriticum)이라는 기생충은 중간숙주인 개미의 신경계를 조정하여 한밤 중 개미가 풀잎 끝에 올라가 머물도록 한다. 이후 풀잎 끝의 개미들은 풀을 뜯어먹으러 온 초식동물 (종숙주)에게 풀과 함께 섭취되고, 개미 속 기생충은 종숙주인 초식동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여 자손번식의 꿈을 이루게 된다.

창형흡충의 유충에 감염되어 풀 끝에 올라간 개미의 모습 (Copyright ⓒ 2011 Charley Eiseman)


또한 톡소포자충 (Toxoplasma gondii)이라는 기생충에 감염된 쥐는 중추신경계 내의 교란이 일어나, 고양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망가거나 피하지 않게 되어 종숙주인 고양이에게 쉽게 잡아먹히게 된다. 이는 고양이의 체내에서만 유성생식을 통해 자손을 번식할 수 있는 톡소포자충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생존 전략이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는 고양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Copyright ⓒ Wendy Ingram and Adrienne Greene)


이밖에도 많은 다양한 기생충들이 감염된 중간숙주의 행동변화와 외관상 변화, 운동능력 소실 등을 통하여 종숙주로의 이동을 꾀하는 전략을 취한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보기엔 미미해 보이는 기생충이, 먹이사슬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모습처럼 비치기도 한다. (기생충의 숙주 행동조절과 관련된 아주 훌륭한 영상이 있어서 링크를 첨부한다. 꼭 한번 보기를 추천한다. 영상 링크: 기생생물이 숙주의 행동을 바꾸는 방법 (TED-Ed))


영화 '반지의 제왕' 속 '절대반지' 또한 자신만의 기생 전략을 통해 숙주와 숙주를 이동해 나간다. 특히 각 사람에게 소유될 때마다 저마다 다르게 비치는 절대반지의 모습은 감염된 숙주에 따라서 다르게 반응하는 기생충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함께 영화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 세 명을 통해 바라본 절대반지의 모습들로 기생충의 특성을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숙주특이성 [사우론을 통해 바라본 절대반지]

'절대반지'가 기생충이라면 가장 적합한 숙주는 사우론 (Copyrightⓒ New Line Cinema)

가장 먼저 살펴볼 등장인물은 암흑의 군주 '사우론'이다. '절대반지'를 직접 제작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때문에 절대반지는 사우론에게 가장 적합하게 만들어졌으며, 사우론의 손에 끼워져 있을 때만이 진정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혹시 전편의 '숙주특이성' 이라는 개념이 기억나는가?

기생충이 일정한 종류의 숙주에서만 발육, 성장 및 번식할 수 있는 성질을 일컬어 '숙주 특이성'이라 한다.


특히 숙주특이성이 높은 기생충은 해당 숙주 내에서만 생식과 성장이 가능한데, '절대반지'는 사우론만을 적합한 숙주로 삼는 '숙주특이성'이 매우 높은 기생충인 셈이다. 숙주특이성이 높은 기생충은 (적합숙주가 아닌) 다른 숙주에 감염되었을 때, 기생부위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든지 하면서 숙주 내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게 된다. 이는 '절대반지'가 사우론이 아닌 다른 이로 하여금 소유되어졌을 때, 인간성을 파괴하고 분열을 조장하고 결국엔 스스로가 무너지는 결말이나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와 같은 '절대반지'의 숙주특이성은 가장 악명 높은 기생충 중 하나인 '말라리아 열원충(Plasmodium spp.)'을 생각나게 한다. 말라리아는 종숙주인 모기의 체내에서만 유성생식을 통해 자손을 번식할 수 있다. 모기는 말라리아에 감염되어도 어떠한 증상도 나타내지 않지만, 모기를 통해 말라리아에 감염된 사람은 발열, 두통, 오한, 심지어 쇼크와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다. 또한 말라리아는 약제에 대한 내성을 갖고 있기도 해서, 아직까지 완벽히 구충할 수 있는 확실한 치료제가 없다. 보고에 따르면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감염병 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것이 바로 이 말라리아라고 하며 매년 2억 명 이상이 말라리라를 앓고 4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사우론에게 있을 때에만 안전하고 비로소 '존재가치'를 드러내며, 다른 이의 소유가 되었을 때엔 그들로 하여금 파멸로 이끄는 '절대반지'는 기생충의 숙주특이성말라리아 열원충을 생각나게 한다.


숙주특이성과 말라리아에 대한 통찰을 주는 '사우론'과 '말라리아'의 관계 (CDC)


다음 편에서는 스미골(골룸)을 통해 바라본, 그리고 프로도를 통해 바라본 절대반지를 통해 기생충의 면모를 엿보고자 한다.


3편에 계속...




참고문헌

[1] 채종일, 박윤규, 서민, 고원규, 유재란, 홍성종, ... & 손운목. (2011). 임상 기생충학.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 Thomas, F., Adamo, S., & Moore, J. (2005). Parasitic manipulation: where are we and where should we go?. Behavioural processes, 68(3), 185-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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