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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쥰 Mar 19. 2021

쉬어가기-'반지의 제왕'에서 발견한 기생(寄生) (1)

기생충 옴니버스 VOL.1 (7)

Evils, therefore, have their source in the good, and unless they are parasitic on something good,  they are not anything  at all.

    그러므로 악은 선한 존재에 그들 자신의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선한 것에 기생(寄生) 하지 않는 한 그들은 아무것도 될 수 없다.

      - The Enchiridion on Faith, Hope and Love (St. Augustine)


다양한 방식으로 '기생'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는 악당 볼드모트 (영화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 2부', Warner Bros.ⓒ)


악의 기생성 (寄生性)

많은 영화와 이야기 속에서 '악'은 선한 존재에 기생 (寄生)하며 그들의 존재를 유지시키는 방식으로 자주 등장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소설이자 영화로도 만들어진 '해리포터 시리즈' 속, '악'의 대명사인 볼드모트는 다양한 방식으로 선한 존재의 연약함을 비집고 들어가 기생하고, 또 그들을 파괴시켜가며 마법세계를 정복하려 든다.


또한 필자가 재미있게 읽었던 만화책인 '몬스터 (우라사와 나오키 作)'에서도, '악'은 인간의 마음에 분노와 원한, 슬픔으로 생겨난 균열에 기생하며 그 모습을 감춘 채 주변 등장인물들을 하나, 둘씩 죽음으로 몰고 간다.




이밖에도 많은 작품들 속에서 '불완전함'을 타고난 '악'은 유형(有形)의 무언가로 존재하기 위해 '선한 존재'에 기생하는 방식으로 그들 나름의 생존 방식을 택한다. 이러한 '악의 기생성'은 비단 문학 또는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성서 (聖書)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마태복음 8장 31절에 보면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귀신들은 예수님께 '우리를 내어 쫓으시려거든 저 돼지 떼 속에라도 들여보내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상황인즉슨, '가다라'라 이름하는 지방에 귀신 들린 두 명의 사람이 무덤 사이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들은 매우 사나워 어떤 이도 (해를 입을까 염려하여) 그 주변 길로 지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덤 사이에서 나오던 그들과 그들 안에 '기생'하던 귀신의 무리는 길을 지나던 예수님을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들 안에 '기생'하던 귀신의 무리가 예수님으로 하여금 쫓겨날 것을 직감하여 주변의 돼지 떼에게라도 들여보내어 달라고 간청하는 장면이다.


위 성서 속 기록은 유형으로 '존재'하기 위해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게 '기생'해야만 하는 악의 '불완전성'을 잘 이야기해주고 있다. 어쩌면 '악'이란 빛이 없다면 생길 수조차 없는 '그림자'와 같은 셈이다. 글의 도입에 인용한 '성 어거스틴'의 악에 대한 표현은 이러한 '악의 기생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다른 고전들을 모두 찾아보고 나열하지는 못하였지만) 위의 성서와 성어거스틴의 고전에서 그려진 '악'의 모습만 보아도,  많은 문학작품들 속에서 '악'의 생존 방식을 기생을 통해 표현하고 다루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겠다.


이처럼 많은 문헌들을 통해 그려져 온 '악'의 모습은 숙주가 없는 그 자체로는 생식과 성장이 불가능한 '기생충'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특별히 많은 작품 중에서, '악'에 대한 묘사로 단순한 '기생 방식'을 넘어 '중간숙주와 종숙주'의 관계까지 고찰할 수 있게 만들었던 명작 중에 명작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듣기만 해도 가슴이 웅장 해지는) '반지의 제왕'이다.


(들어가기 전에) '반지의 제왕' 간략한 줄거리 

'반지의 제왕' 하나를 이야기하기 위하여 긴 글머리를 할애하였다.


지금부터 나누게 될 이야기는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본 사람이라면 훨씬 이해가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반지의 제왕'을 보지 못한 이들을 위해 정말로 간추리고 또 간추려서 '반지의 제왕'의 배경 이야기를 짧게 요약해보겠다. 이 이야기를 대충이라도 알아야만, '절대반지' 속에 감추어진 기생충의 면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소설 '반지의 제왕'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세계 '아르다'의 지도 (출처: tolkien-online.fandom.com)
'반지의 제왕' 배경 스토리

반지의 제왕은 '아르다' (3개의 대륙으로 이루어진)라고 이름하는 가상의 세계, 그중에서도 중간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인간, 엘프, 드워프  종족을 다스리는  왕에게 '힘의 반지' 주어지는데, 어둠의 군주인 사우론은 모든 반지를 다스릴  있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절대반지' 손에 넣고 중간계를 지배하려 한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인간과 엘프는 함께 연합군을 결성하여 사우론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고, '절대반지' 끼고 있던 사우론의 손가락을 자른다. 절대반지를 잃은 사우론이 본래의 외형을 잃고 사라지면서 중간계에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 인간 (이실두르) 새롭게 절대반지의 주인이 되지만, 절대반지의 힘에 유혹된 인간은 반지를 빼돌리고, 훗날 '오크'라고 이름하는 괴물의 손에 죽는다.  

절대반지는 2,500년의 세월 동안 잊혀 있다가 '스미골(골룸)'이라는 이름을 가진 호빗(반인족) 손에 들어가지만  또한 재차 반지를 잃어버리고 만다.  때, 반지가 스미골(골룸)에게서 떨어지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던 '빌보 배긴스'라는 호빗이 동굴에서 우연히 반지를 줍게 되고, 반지의 매력에 강하게 이끌려 결국  자신이 반지를 갖기로 한다. 이후 시간이 흘러 반지의 원래 주인이었던 사우론은 강력한 힘의 절대반지를 다시 되찾으려 하고 중간계를 지배할 야심을 품기 시작한다. '절대반지' 갖고서 '중간계' 지배할 사우론의 야욕을 물리치기 위해, '간달프' 이름하는 마법사가 반지 주인인 빌보의 조카 '프로도', 그리고 그의 친구인 '' 함께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게 되는데...


어떤가! 배경 스토리만 보아도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배경을 읽고서 눈치챘겠지만 소설, 그리고 영화 '반지의 제왕'은 어찌 보면 '절대반지의 여정', '절대반지의 이야기'라고 이해해도 무리가 없다.


오랜 세월에 걸쳐,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갖고 있지만 짧게 혹은 길게 그 반지를 소유한 이들의 이야기가 바로 '반지의 제왕'이다.


절대반지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투영되겠지만, 나에겐 '탐욕(욕심)'의 이미지로 가장 먼저 다가왔다. 절대반지는 사우론이 중간계를 지배할 야심을 담아 강력한 힘으로 만든 욕망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그 반지를 소유하는 누구든 탐욕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 절대반지는 자신을 소유하는 여럿의 주인에 기생하며 진짜 주인인 사우론의 손에 끼워지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어찌 보면 '반지의 제왕'을 집필한 JRR 톨킨 또한 '악의 기생성'으로 절대반지를 그린 셈이다.)


정말로 영화를 수차례 보다 보니, 기생충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의 관점에서 절대반지가 입체적인 '기생충'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절대반지가 기생충이라니... 무려 '반지의 제왕' 속 나타나는 절대반지를 통해 '숙주 특이성', '중간숙주, 연장숙주와 종숙주', '기생충의 숙주 행동조절'과 같은 다양한 기생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절대반지와 기생충의 상관관계가 궁금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다음 2편에서 다룰 절대반지를 통해 엿본 '기생'에 대해 기대해주길 바란다.


아참. 다음 편을 읽기 전에 '기생과 숙주' 그리고 '중간숙주와 종숙주 (생활사)'에 대해 다룬 이전 편을 읽고 오면 훨씬 좋다. 아직 그 개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더더욱 전편을 꼭 읽고 다음 글로 넘어가길 추천한다.


(1) 우린 모두 기생충? - 기생의 개념에 대하여

(2) "여기가 인간의 소장(小腸)이 맞나요?" - 숙주특이성

(3) 숙주를 알면 생활사가 보인다 - 기생충의 생활사


그럼 2편에 계속...



참고문헌

Augustine, S. (1961). The enchiridion on faith, hope and love (Vol. 6065). Henry Regnery Company.

James, K., Wire, N., Bradfield, J. D., & Moore, S. (1979). The Holy Bible. World Publishing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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