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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쥰 Sep 29. 2020

우린 모두 기생충? - 기생의 개념에 대하여

 기생충 옴니버스 VOL. 1 (1)

본격! 기생충학 전공자가 들려주는 기생충 이야기


기생충?


기생 (Parasitism) 이란?

한 생물체가 다른 생물체의 체내, 체표에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서식하면서
영양물을 탈취하는 생활양식을 말하며,
서식처 및 영양물을 탈취해가는 생물을
기생체 (parasite), 이를 제공하는 생물을
숙주 (host)라 한다.

                                                                                      

위는 의대 기생충학 교과서에 나오는 '기생 생활'에 대한 정의이다 [1].


기생 생활을 이야기 함에 있어 필수적인 두 가지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기생체 (parasite)숙주 (host)이다!


기생체는 말 그대로 숙주로부터 서식처와 영양물을 얻어가는 생물! 숙주는 그를 제공해주는 생물이다! 따라서 숙주는 기생체에게 ‘먹을 것’과 동시에 ‘묵을 곳’도 제공(?) 해주는 입장이다보니, 아무래도 개체의 크기에 있어서 (숙주에 기생하는) 기생체보다는 큰 것이 일반이다.


그리고 기생체 가운데에서도 동물계에 속하는 것들을 일컬어 우리가 흔히 부르는 '기생충 (寄生蟲)' 이라 한다. 한자로는 ‘벌레 충 (蟲)’자를 써서 간혹 '기생충은 전부 곤충에 속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기생충 안에는 (우리가 흔히 곤충이라 부르는) 절지동물에 속하는 곤충들도 있고 곤충이 아닌 다른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기생충'은 자신보다 큰 '숙주'로부터 서식처와 영양물을 얻어간다




공생과 기생


많은 이들이 '공생 (共生, symbiosis)'과 '기생 (寄生, parasitism)' 이 둘을 헷갈려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공생'은 엄밀히 말하면 서로 다른 종의 생물이, 상대방 생물이 없이는 존재하기 힘든, 상호 의존도가 높은 관계를 말한다.


예를 들면 흰개미와 (흰개미의) 장내 공생 미생물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흰개미는 나무를 주로 섭취하며 살아가는데 흰개미의 장내에 서식하는 미생물이, 섭취되어 장내에 들어온 단단한 섬유질을 영양분으로 소화시켜준다.

장내 미생물 또한 흰개미의 장 내에서 섬유질을 영양분 삼아,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풍족히 살아간다. 이 둘은 어느 하나 없인 결코 살아갈 수 없는 '공생 (정확하게는 상리공생[2])'을 영위해나간다. 장내 미생물이 흰개미의 둘도없는 소화효소의 역할을 하고 흰개미는 장내 세균의 안전한 거처가 되어준다. 이처럼 ‘공생’은 둘 간의 특수한 환경 또는 외부의 압력이 작용할 때에만 이루어진다.


이에 반해 '기생'은 기생충의 일방적인 필요에 의해 그 관계가 이루어진다. 기생충은 자손 번식을 위한 생식 (reproduction), 성장 (growth), 다른 숙주로의 이동 (transportation), 그리고 잠복감염 (latent infection) 등의 필요를 얻기 위해 숙주에게로 간다.


그러나 숙주는 기생충 없이 살아가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아니 어쩌면 아주 작은 손해도 보지 않고 살아감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별안간 감염된 기생충에 의해 숙주는 영양분을 빼앗기기도 하고, 난데없는 염증반응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경우엔 숙주를 잘못 찾아 들어간 기생충이, 숙주를 괴롭게 하거나 더 나아가 죽게하기도 한다. 숙주의 입장에선 여간 억울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기생의 예로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모기의 흡혈'이다. 모기는 절지동물문 (Arthropoda)에 속하는 대표적인 흡혈곤충으로서, 사람 혹은 가축을 흡혈하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숙주에 '기생'한다. 모기에게 있어 척추동물의 혈액은 알을 성숙시키고 산란하는 데에 필요한 양분을 제공해주는 아주 중요한 영양원이다. 따라서 모기는 산란을 위해 숙주의 혈액을 필요로 하는 기생충이다. 하지만 동물들에게 있어 모기는 하등 유익이 없다.


백과사전에서는 기생충을 '자기의 삶을 위하여 다른 생물에 붙어살이하는 벌레' 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는 어쩌면 조금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기생’의 의미와 뉘양스를 아주 잘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기생'은 기생충의 일방적인 필요에 의해 그 관계가 이루어진다




우린 모두 기생충


이제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철학적인 관점으로 조금 시선을 돌려서 우리 스스로를 한 번 바라보자.


"어쩌면 인간이야말로 (넓은 의미의) 제대로 된 기생충이 아닐까?"


앞선 문장은 문자적으로 보면 오해의 소지가 충분히 있을법한 문장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부터해서 섭취하고 있는 모든 음식들까지, 우리는 우리가 지금 딛고 살아가는 '지구'의 도움 없인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지구가 거대한 숙주라면 인간은 작은 기생충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작금의 산업화된 시대를 지나는 지구에게는 인간이 별다른 도움이 되거나 하지 않아 보이고, 도리어 해가 되기에 이를 ‘공생관계’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또한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부모님을 비롯한 많은 이웃, 친구들, 그리고 다른 이웃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자라 간다. 부모의 도움 없인 밥을 먹을 수도 이동할 수도 없는 갓난아이에서부터, 노인이 되기까지 우린 많은 이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 속에서 ‘공생’을 닮은 이상적인 관계 혹은 순간들도 없진 않겠으나 대개의 경우, 우린 ‘기생’에 가까운 방식으로 (누군가의 수고와 희생을 통해) 받고, 누리고, 제공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지구가 거대한 숙주라면 인간은 작은 기생충이다




우리 인간에겐 다른 생명체들보다 조금 더 두드러지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결단코 ‘사랑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아직도 살아가고 있다면,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그것은 우리가 반드시 ‘누군가로부터의 사랑과 돌봄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에겐 누군가로부터 받는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랑과 돌봄이 아이의 두뇌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논문 하나가 2012년에 발표되었다 [3]. 논문에서 말하기를 일찍이 돌봄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 비해 (기억을 담당하는 중추인) 뇌 해마의 크기가 크게 발달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했다. 이는 어릴 때 받는 사랑이 인간의 학습 및 기억능력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서는 우울증의 심각도도 함께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잘 뒷받침해주는 사진이 바로 아래에 있다.


돌봄을 받고 자란 아이와 방치된 아이의 뇌 사진 (Bruce D Perry [4])


2012년, 영국 텔레그래프 지에 "These two brains both belong to three-year-olds, so why is one so much bigger?" 라는 제목의 기사로 한 장의 사진이 실렸고 이 사진은 각 종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다 [5]. 무관심과 방치, 그리고 학대 속에서 자란 3살 아이의 X-ray 뇌 사진과 일반적인 돌봄과 충만한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의 뇌 사진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 나타난 뇌의 모습을 대조해보면 온전한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의 뇌는 충분한 돌봄을 받으며 자란 아이의 뇌에 비해 크기도 작고 검게 표현되는 곳도 많아보인다. 이 사진으로 보았을 때, 뇌의 정상적인 발달에 있어서 누군가로부터 받는 돌봄과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다른 동물들보다 (개인의 정체성과 자아가 확립되는 과정을 겪는) 우리 인간에게 훨씬 중요해보인다. 근데 생각해보면 비단 사랑뿐일까? 우린 누군가의 도움 없이 결코 건강한 삶을 영위해나갈 수 없다.


우린 반드시 ‘기생’해야만 한다. 아니 서로가 서로에게 ‘기생’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아직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치는 과정 중에 있다.


나야말로 독립된 연구자가 되기까지, 지금의 학교로부터 다른 연구소, 혹은 또 어딘가로의 '기생'을 이어나갈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들 (연구결과, 경력, 논문)을 그곳으로부터 취하기 위해 그곳에 갖추어져 있는 실험기기들과 인프라를 사용해야만 한다. ‘기생’이다.


그런데 기생충 중에서도 무조건적인 기생이 아닌 홀로 독립적으로 생존해나갈 수 있는 기생충이 있다. 일례로 ‘자유생활’을 할 수 있는 아메바라 하여 ‘자유생활 아메바’라 명명되는 기생충들이다. 이들은 숙주 안에서 필요한 것들을 얻음과 동시에 숙주의 바깥인 외계에서도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나이가 들고, 연륜이 쌓이고, 누군가에게 그늘을 드리울 수 있는 나무같은 어른이 된다면...

그때쯤이면 나는 '자유생활을 할 수 있는 기생충'이라 말할 수 있을까? 기생을 하며 살다가도, 홀로 독립된 자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유생활 기생충.


여전히 나는 숙주가 필요한 기생충이다.




참고문헌 및 각주

[1] 이순형, 채종일, & 홍성태. (1996). 임상기생충학 개요. 서울, 고려의학, p.9

[2] 공생은 크게 양쪽의 생물 모두가 서로 이익을 얻는 상리공생과 한쪽의 생물만 이익을 얻는 편리공생으로 나누어진다

[3] Luby, J. L., Barch, D. M., Belden, A., Gaffrey, M. S., Tillman, R., Babb, C., ... & Botteron, K. N. (2012). Maternal support in early childhood predicts larger hippocampal volumes at school ag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9(8), 2854-2859.

[4] Perry, B. D. (2002). Childhood experience and the expression of genetic potential: What childhood neglect tells us about nature and nurture. Brain and mind, 3(1), 79-100.

[5] https://www.telegraph.co.uk/news/0/two-brains-belong-three-year-olds-one-much-big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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