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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쥰 Mar 30. 2021

쉬어가기-'반지의 제왕'에서 발견한 기생(寄生)(3)

기생충 옴니버스 VOL.1 (9)

시리즈의 3편입니다. 앞의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쉬어가기-'반지의 제왕'에서 발견한 기생(寄生)(1)

쉬어가기-'반지의 제왕'에서 발견한 기생(寄生)(2)


숙주 행동의 변화 [스미골(골룸)을 통해 바라본 절대반지 1]

바로 그다음으로 살펴볼 등장인물은 바로 스미골 (골룸)이다. 선과 악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특징을 갖고 있으며, 그 때문인지 가장 '인간'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되는 등장인물이다. 반지의 제왕 팬들에게는 어쩌면 '프로도'보다 존재감이 큰, 숨겨진 주인공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호빗족이었던 스미골은 어느 날 낚시를 하던 도중 강바닥에서 '절대반지'를 우연히 찾게 되고, 이걸 차지하려는 과정에서 친구였던 '데아골'을 죽음으로 몰아넣게 된다. 이후 스미골은 절대반지의 탐욕 속으로 점점 빠져들게 되면서 이중인격의 괴물(골룸)로 차차 변모해가게 된다. 이때 스미골은 원래 자기 본연의 인격과 '골룸'이라는 또 다른 자아로 분열되게 되는데, 선택과 결정의 순간마다 이 둘은 첨예한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특히 이 장면은 골룸이라는 캐릭터 스스로의 독백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연기가 정말로 일품이다.)


스미골은 우연히 절대반지를 갖게되고, 서서히 괴물(골룸)로 변모해간다 (Copyrightⓒ New Line Cinema)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절대반지에 대한 욕망과 탐욕으로 망가진 골룸을 보면서, 절대반지가 골룸을 숙주로 기생하는 '살아있는' 기생충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할 수 있었다. 절대반지의 탐욕에 잠식당한 골룸은, 정상적인 사고와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절대반지를 갈망한다. 이 과정에서 골룸은 어떤 위험도 무릅쓰게 되는데, 이 과정이 꼭 '톡소포자충'이라는 기생충에 감염된 쥐가 자신의 천적인 고양이에게 오히려 강하게 이끌리게 되는 현상과 비슷하다고 생각되었다. 자신을 파멸시키고 분열시키고, 끝내 죽음으로까지 내몰 수 있는 절대반지를 목숨을 걸고 차지하려는 골룸의 모습 속엔 어떤 두려움과 절제도 보이지 않는다. (탐욕에 잠식당한 인간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 이리라)


죽음의 목전에서도 절대반지를 갈망하는, 탐욕에 사로잡힌 골룸의 모습 (Copyrightⓒ New Line Cinema)


보고된 논문에 따르면 쥐들은 선천적으로 (천적인) 고양이의 냄새에 두려움으로 반응하지만, 톡소포자충이라는 기생충에 감염된 쥐는 오히려 그것에 성적으로 끌리는 것과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1]. 이것이 재미있고도 놀라운 이유는, 톡소포자충이 자손을 번식할 수 있는 종숙주 (final host)가 바로 고양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마치 톡소포자충이 종숙주인 고양이에게 도달하려고 중간숙주인 쥐의 뇌를 조종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인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원충인 톡소포자충은 쥐의 뇌를 조종하여 고양이에게 전파된다 (CDC)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유심히 보고 있노라면, 절대반지는 끊임없이 원래의 주인인 사우론의 손으로 옮겨가려고 반지를 소유한 이들 안에서 몸부림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을 가진이(인간, 호빗)로 하여금 스스로 파멸해가도록 이끈다든지,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분열을 조장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다만 반지가 안전히 사우론의 손에 들어갈 수 있도록, 반지는 소유한 자들을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잠식해간다. 중간숙주에서 종숙주로 어떻게든 넘어가 보려 애쓰는 기생충처럼, 절대반지는 중간숙주의 파멸을 통해 종숙주인 사우론에게로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 쓴다.




한 걸음 더

기생충에 의한 정신질환 [골룸을 통해 바라본 절대반지 2]

절대반지를 차지한 스미골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또 다른 자아인 '골룸'으로 분열되어가며 여러 정신질환의 모습(이중인격, 망상)을 보이게 된다. 이는 '탐욕'이 가져오는 여러 가지 병적인 상태에 대한 통찰로 이해할 수 있겠으나, 필자는 그 안에서 숙주로 하여금 정신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기생충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골룸의 정신상태와 관련하여 영국의학저널(BMJ)에 2004년, University College of London 의과대학 학생들이 직접 골룸의 증례(case)를 나름 전문적인 소견으로 진단한 재미있는 논문을 출판하였던 적이 있다  [4].   

2004년에 BMJ에 출판된 골룸의 진단례 (Bashir et al., 2011 [2])


위 논문에서 저자들은 가상의 인물인 골룸이 정신분열 (schizophrenia)과 함께 다중인격장애 (multiple personality disorder)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하였다. 뿐만 아니라 골룸의 신체적인 결핍 상태에 대해서도 함께 감별 진단하였는데 영화 속 스토리를 근거로 하여 전문적으로 진단하였다. (전체 내용이 궁금한 분은 꼭 찾아서 읽어보길 바란다 [2]. 관련 기사 링크도 함께 첨부한다. '현장박치기' 골룸 증상 진단 "망상적 정신상태·인격 장애")

                                                                        

기생충도 숙주로 하여금 정신질환을 겪게 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사람은, 뇌를 침범하여 감염하는 톡소포자충의 특성 때문인지 정신질환(정신분열[3], 간질[4]) 겪을 확률이 높은 것으로 여러 논문들을 통해 보고되었다. 아직까지 직접적인 병리기전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톡소포자충을 앓았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 정신질환의 유병률을 조사한 결과, 톡소포자충의 감염 이력이 정신질환의 발생에 영향을 주는 소인  것으로 많은 문헌들이 주장하고 있다. 특히 톡소포자충과 정신분열 (조현병) 발생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수많은 논문과 문헌들이 보고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중간숙주에 감염되어있는 톡소포자충이 다음 종숙주로 이동하기 위하여 숙주의 취약성 (vulnerability)을 증가시키는 전략일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반지에 불과한 '절대반지'가, 소유한 누군가로 하여금 병적으로 집착하게 만들고, 나아가 개인과 집단의 파멸을 이끌어 자기의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겉으로 보기에 미미한) 기생충도 다양한 전략을 통해 중간숙주를 취약하게 만들어 종숙주로 이동하려고 한다.


'악의 기생성'으로 시작하여 '절대반지'에게서 엿볼 수 있는 기생충들의 모습을 하나씩 알아보고 있다. 다음 마지막 편에서는 '프로도를 통해 바라본 절대반지'로 시리즈의 끝을 맺으려고 한다.


마지막 4편에 계속...


참고문헌

[1] House, P. K., Vyas, A., & Sapolsky, R. (2011). Predator cat odors activate sexual arousal pathways in brains of Toxoplasma gondii infected rats. PloS one, 6(8), e23277.

[2]  Bashir, N., Ahmed, N., Singh, A., Tang, Y. Z., Young, M., Abba, A., & Sampson, E. L. (2004). A precious case from Middle Earth. Bmj, 329(7480), 1435-1436.

[3] Torrey, E. F., & Yolken, R. H. (2003). Toxoplasma gondii and schizophrenia. Emerging infectious diseases, 9(11), 1375.

[4] Flegr, J. (2015). Neurological and neuropsychiatric consequences of chronic Toxoplasma infection. Current Clinical Microbiology Reports, 2(4), 163-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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